제7화
“누나, 농담하지 마. 내 신부는 누나 하나뿐이야. 다른 사람 있을 리 없잖아.”
심도윤의 얼굴에 잠시 불안한 기색이 스쳤다.
“지유가 대신 드레스 입는 게 싫다면, 안 시키면 돼.”
그는 끝까지 오수아의 기분을 맞추려 했다.
오수아는 담담하게 말했다.
“그냥 한마디 해본 거야. 윤지유 체형이 나랑 비슷하니까, 대신 입혀봐.”
심도윤의 표정에 안도감이 스쳤다.
“결혼식 끝나면 루네벨 시티로 보내줄게. 거긴 의료기술이 좋아. 거기서 치료받으면 혹시 나을 수도 있을 거야. 결혼식 끝나면 일도 그만두고, 내가 평생 책임질게.”
오수아는 그를 바라보았다.
상처 준 것도 그였는데, 왜 다시 구원의 손을 내미는 걸까.
하지만 이제 그런 말에 속을 자신이 아니었다.
“응, 알겠어.”
그녀는 짧게 대답했다.
그날 하루 종일 심도윤은 오수아 곁을 떠나지 않았다. 마치 다시는 잃고 싶지 않은 사람처럼, 그림자처럼 붙어 있었다.
심지어 병원 간호사도 말했다.
“오수아 씨, 이렇게 사랑받는 여자도 드물어요. 정말 복 받으셨네요.”
해가 질 무렵, 그의 친구들이 병문안을 왔다며 심도윤은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오수아는 그제야 자리에서 일어나 간호사에게 물었다.
“저기요, 저를 병원에 데려온 사람이 누구였는지 알 수 있을까요?”
그녀는 마지막으로 기억나는 장면을 떠올렸다.
비 속에서 우산을 들고 다가오던 박이현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는 다리를 다친 사람 아닌가?
그럴 리가 없었다.
“남자분이셨는데요, 이름은 남기지 않으셨어요.”
간호사의 말에 오수아는 잠시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감사 인사 한마디조차 할 기회가 없었다.
그때, 뒤쪽 복도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윤아, 며칠 뒤면 결혼식이잖아. 그날 네가 오수아를 버리려면, 확실한 명분이 필요하지 않겠어?”
심도윤의 친구들이었다.
“다들 네가 오수아랑 오래 만난 거 아는데, 결혼식 당일에 버리면 욕먹는 건 뻔하지. 그래서 내가 좋은 방법 하나 생각했어.”
그 남자의 목소리가 낮게 흘렀다.
“그 여자가 받은 HIV 검사 결과랑, 전에 다른 남자들이랑 어울렸다는 식으로 만든 영상을 편집해서 만들어. 그거 결혼식장에서 틀면 돼. 그러면 네 이미지는 깎이지 않고, 오히려 불쌍하단 소리 들을걸?”
심도윤의 표정이 굳었다.
“그건 너무 잔인하잖아. 내가 미워하긴 해도, 그래도 사람인데 그렇게까지 해야 해?”
친구가 비웃으며 말했다.
“지금 와서 무슨 자비야. 그 여자가 널 어떻게 배신했는지 잊었어?”
“맞아, 도윤아. 설마 아직 그 여자한테 마음 남았냐?
그런 유흥계 여자를 집에 들이면, 조상님들 기절하겠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심도윤의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알았어. 너희가 알아서 해.”
“좋아. 그런데 전에 찍은 영상이 없으니까, 결혼식 전에 다시 한 번 찍자. 그래야 쓸 수 있잖아.”
그 끔찍한 대화가 오가는 동안, 복도 끝에 있던 오수아의 얼굴은 점점 하얘졌다.
심장이 터질 듯 뛰었다.
그녀는 뛰쳐나와 계단 쪽으로 몸을 숨겼다.
벽 구석에 웅크린 채, 두 손으로 입을 막았다.
몸이 떨리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제야 알았다. 심도윤은 단 한 번도 자신을 믿은 적이 없다는 걸.
그에게 ‘유흥계 여자’는 그저 더럽고 이용가치 있는 도구일 뿐이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몰랐다.
그녀가 사라진 걸 안 심도윤이 미친 사람처럼 병원 구석구석을 헤맸다.
계단참에 웅크린 그녀를 발견했을 때, 그의 눈은 벌겋게 충혈돼 있었다.
“누나, 왜 여기 있어? 사라진 줄 알고 미칠 뻔했잖아. 나 정말 누나 없으면 안 돼.”
그는 그녀를 끌어안고 놓지 않았다.
오수아는 아무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냥... 엄마 생각이 나서.”
심도윤은 안도한 듯 숨을 내쉬었다.
“괜찮아. 이제 나 있잖아. 내가 옆에 있을게.”
오수아는 눈을 감았다. 눈물이 턱선을 따라 천천히 떨어졌다.
며칠 뒤, 웨딩드레스 피팅 날을 제외하고 심도윤은 단 하루도 그녀 곁을 비우지 않았다.
결혼식 전날, 그의 친구들이 결혼식 전날엔 신랑 신부가 만나면 안 된다며 그를 억지로 데리고 나갔다.
그날 밤, 별장에는 오수아와 윤지유 둘뿐이었다.
윤지유가 우유 한 잔을 들고 와서 말했다.
“수아 언니, 내일 결혼식이라 잠 못 주무실까 봐 도윤이가 우유 한 잔 준비하래요. 숙면에 좋대요.”
이미 알고 있었는데도, 직접 마주하니 심장이 또 흔들렸다.
마지막조차도 손을 더럽히기 싫었던 걸까.
그래서 이번엔 윤지유를 시킨 걸까.
오수아는 천천히 잔을 내려다보다가 입가에 비웃음을 띠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