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화
연민주의 묘비 앞에 선 최재율은 빗물이 얼굴에 떨어져 그의 턱선을 따라 묘비 위로 굴러내렸다.
기다란 손가락으로 묘비에 새겨진 ‘연민주’ 세 글자를 한 번 또 한 번 만졌다. 거친 돌면 때문에 손바닥이 피가 날 정도로 갈라졌지만 전혀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
“민주야...”
낮고 갈라진 목소리로 연민주의 이름을 불렀다. 목소리가 너무 갈라져 뭐라고 말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였다.
그 모습에 비서도 감히 가까이 오지 못했다.
최재율은 사흘 동안이나 먹지도 마시지도 않은 채 여기에서 차가운 비석만 응시하고 있었다. 정장은 이미 비에 흠뻑 젖었고 머리카락은 젖어 이마에 들러붙었다. 최재율은 마치 넋이 나가 빈 껍데기만 남은 것 같았다.
그러더니 갑자기 정장 안주머니에서 스위스 나이프 한 자루를 꺼냈다. 빗속에서 차가운 빛을 발산하는 칼날을 들고는 망설임 없이 자기 손목을 그었다.
“대표님!”
비서가 공포에 질린 얼굴로 달려왔지만 최재율은 그를 확 밀쳐 냈다.
“오지 마!”
낮은 소리로 웃는 목소리는 마치 지옥에서 기어 나온 악귀 같았다.
“민주가 아픈 걸 얼마나 무서워하는데, 나도 같은 고통을 겪어 봐야지... 그래야 얼마나 아팠는지 알지.”
피가 최재율의 손끝을 따라 묘비 앞의 백장미 위로 떨어져 꽃잎을 붉게 물들였다. 눈을 찌르는 듯한 붉은색을 깊이 응시하던 최재율은 연민주가 97번째 자살을 시도했던 때를 떠올렸다. 시스템에 의해 얼음 동굴에 버려졌을 때 피가 얼어붙는 소리는 마치 깨진 유리 같았다는 말이 너무나도 선명하게 떠올랐다.
“아프지 않아...”
최재율은 중얼거리며 팔 전체가 피투성이가 될 때까지 한 번 또 한 번 칼질을 이어갔다.
겁에 질려 얼굴이 창백해진 비서는 최재율을 억지로 잡아당겼다.
“대표님! 이렇게 하신다고 사모님이 돌아오지 않아요!”
“꺼져!”
비서를 확 밀친 최재율은 비틀거리며 몇 걸음 뒤로 물러났다. 눈빛은 마치 미친 사람 같았다.
“민정이는 죽었어! 내가 죽인 거야! 나는 민정이와 함께 죽을 자격조차 없는 거야?”
진흙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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