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fic
더 많은 컨텐츠를 읽으려면 웹픽 앱을 여세요.

제2화

부엌문 밖에 서 있는 연민주는 반쯤 열린 문틈 사이로 최재율이 조리대 앞에서 요리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긴 손으로 국자를 쥐고 냄비의 보신탕을 천천히 저었다. 뿌연 김에 최재율의 옆얼굴이 흐릿해졌지만 얼마나 집중하는지 눈빛은 확실히 볼 수 있었다. 최재율의 이런 표정은 연민주에게 더없이 익숙했다. 과거 오로지 연민주에게만 집중할 때 늘 이런 표정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3년 전 최재열 곁으로 막 돌아왔을 때 연민주는 장기간 불규칙한 식습관으로 위병이 심각해 피를 토할 정도였다. 최재율은 밤낮 가리지 않고 연민주를 데리고 명의들을 찾아다녔다. 하지만 위병은 여전히 호전되지 않았다. 그 후 열흘 동안 사라져 보이지 않던 최재율은 다시 나타났을 때 무릎 살점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고 손에는 화상으로 생긴 물집이 가득했지만 쌀죽 한 그릇을 조심스럽게 들고 들어와 연민주 입가에 갖다 대며 말했다. “민주야, 이거 마시면 안 아플 거야.” 그리고 꽤 시간이 지난 후에야 그때 왜 그랬는지 알게 되었다. 그때 깊은 산속 한의사 집으로 찾아간 최재율은 7일 밤낮을 꿇어앉아 간청한 끝에 결국 한의사의 제자가 되었다. 60년 동안 의술을 행해 온 그 어르신은 한참 후에야 연민주를 보고 한마디 했다. “살면서 이렇게 미친 제자를 본 적이 없어... 자기 아내 위병을 완전히 고치기 위해 나를 따라 반년 동안 수천 가지 약재를 배웠어. 약을 달일 때 쌀죽 한 그릇을 위해 3일 밤낮을 뜬눈으로 새웠어.” 그 후 연민주가 아무리 늦게 집에 돌아와도 냉장고에는 항상 최재율이 직접 준비한 약선 요리들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 최재율 핸드폰 메모장에는 [민주 식사 노트] 파일이 있었다. 그 안에 연민주가 먹으면 안 되는 식재료, 매번 위가 아프기 시작한 시간, 심지어 기분이 안 좋을 때 심신을 안정시키기 위해 어떤 약재를 추가해야 하는지까지 상세히 기록되어 있었다. “네 위병, 내가 책임지고 고쳐줄게.” 말을 하는 최재율은 눈빛이 밤하늘의 별보다 더 반짝였다. 뚝. 물방울 한 방울이 연민주의 손등에 떨어졌다. 그제야 연민주는 자신이 울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부엌 안에 있던 최재율의 핸드폰이 갑자기 울렸다. 그러자 손을 닦고 전화를 받은 최재율은 아주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은희야, 약 거의 다 됐어... 응, 그것도 넣었으니까 쓰지 않을 거야.” 연민주는 순간 누군가 위를 쥐어짜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전화기 너머로 정은희의 나긋나긋한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재율 씨, 아기가 방금 깨어났어. 아빠가 많이 보고 싶나 봐... 바쁘면 오지 않아도 돼, 나랑 아기 둘이 있어도 괜찮으니까...” 최재율은 즉시 어조를 더욱 부드럽게 했다. “함부로 움직이지 마, 금방 갈게.” 가스 불을 끈 후 바로 연민주에게 전화를 걸었다. “자기야, 오늘 아주 급한 글로벌 회의가 잡혔어, 클라이언트가 면담을 요청해서 바로 가봐야 할 것 같아. 오늘은 집에 가서 자기와 밥 못 먹을 것 같아...어제 내가 준비한 재료로 아주머니더러 자기가 좋아하는 삼계탕을 끓이라고 했으니까 자기는 절대 부엌에 가지 마, 가스 불 함부로 건드리지 말고... 설거지도 절대 하지 마, 우리 자기 고생하는 모습 보고 싶지 않아... 그냥 집에 가만히 있어, 밥 다 먹고 빈 그릇 찍어서 나에게 보내줘...” 전화기 너머의 최재율은 연민주를 여전히 어린 아이처럼 대하며 사소한 것까지 일일이 챙겼다. 끊임없는 최재율의 잔소리에 연민주는 핸드폰을 쥔 채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 한참 후 속으로 코웃음을 치며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알았어, 네 말대로 할게.” 최재율의 말에 연민주는 순종하는 어린 강아지처럼 조용히 대답했다. “역시 우리 자기가 최고라니까. 회의 끝나자마자 바로 우리 자기 보러 올게. 우리 자기, 나 돌아온 다음 뭐 해줄까?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케이크 사다 줄까?” 전화를 끊은 후 연민주는 싸늘한 눈빛으로 어두워진 화면을 바라봤다. 거짓말할 때조차 말투가 이렇게 부드러울 수 있다는 게 그저 놀랍기만 했다. 전화를 끊은 최재율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침대 옆에 앉아 따뜻한 보신탕을 손에 들고는 조심스럽게 한 숟가락 떠서 호호 불어 식힌 후 정은희의 입가로 가져갔다. “천천히 마셔, 뜨거우니까 조심하고.” 최재율의 목소리는 물방울이 떨어지는 것처럼 아주 부드러웠다. 정은희는 연약한 모습으로 베개에 기대었지만 얼굴에는 만족스러운 미소가 가득했다. 그러더니 최재율의 손목을 잡으며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재율 씨, 안 피곤해? 좀 쉬지 않을래?” “안 피곤해.” 최재율은 고개를 숙여 또 한 숟가락 떠올렸다. “너 방금 아이 낳았잖아, 그러니까 건강 잘 챙겨야 해.” 연민주는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 정도로 주먹을 꽉 쥐었지만 통증 따위 느껴지지 않았다. 최재율은 인내심 있게 보신탕 한 그릇을 정은희에게 다 먹여 준 뒤 세심하게 정은희의 입가를 닦아주었다. 최재율의 손길은 보물을 대하듯 아주 부드러웠다. 연민주는 이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과거 최재율은 오직 연민주만을 이렇게 부드럽게 대했다. 바로 그때 정은희가 갑자기 한숨을 쉬며 차분히 말했다. “재율 씨, 오늘 밤은 그냥 민주 씨 곁에 가봐. 민주 씨 옆에 있어 줘... 민주 씨 혼자 집에 있으면 외롭잖아.” 잠시 멈칫한 최재율은 갑자기 정은희 곁으로 다가가 깊은 눈빛으로 말했다. “정말로 내가 민주 곁으로 돌아가길 바라는 거야?” 눈빛에 당황스러움이 스친 정은희는 이내 약간 서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민주 씨가 눈물 흘리는 모습 보면 제일 가슴 아파하는 사람이 재율 씨잖아...” 그러자 최재율은 갑자기 정은희를 확 끌어안았다. “앞으로 다른 여자에게 나 보내려 하지 마, 네가 더 중요하다는 것만 기억해.” 문밖에 서서 그들의 모습을 본 연민주는 누군가 심장을 쥐어짜는 것처럼 가슴이 아팠다. ‘다른 여자?’ 이제 보니 최재율의 눈에 연민주는 어느새 다른 여자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창밖에 갑자기 장대비가 내리기 시작했지만 연민주는 비를 맞으며 거리를 걸었다. 굵은 비가 온몸을 때리듯 강타했지만 아픔 같은 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마음이 빗방울보다 더 차가웠기 때문이다. 무려 두 시간 동안이나 비를 맞으며 병원에서 집까지 걸어갔다. 식탁 위의 삼계탕은 이미 식어 있었다. 음식에 눈길조차 주지 않은 연민주는 비를 많이 맞아 머리가 심하게 아팠다. 삼계탕을 버리려고 할 때 도어락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밖에서 들어온 최재율은 연민주를 보자 안타까운 얼굴로 다가와 그녀를 끌어안았다. “왜 아직 안 자?” 외투를 벗으며 한마디 한 최재율은 목소리에 피로가 가득 묻어 있었지만 여전히 잊지 않고 연민주를 챙겼다. “국 다 식었네, 마시지 마. 내가 따뜻한 우유 타다 줄게.” 최재율을 올려다본 연민주는 어지러운 머리를 부여잡고 조용히 물었다. “미팅은 잘 됐어?” 최재율은 동작이 살짝 멈칫했지만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응, 잘 해결했어.” 연민주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그저 조용히 최재율이 부엌으로 들어가 우유를 데우고 꿀통을 꺼내 꿀을 한 숟가락 떠내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연민주가 자기 전에 단것을 조금 마시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을 최재율은 알고 있었다. 오늘 큰비를 맞은 탓에 미열이 있는 듯 머리가 너무 어지러웠다. 평소라면 최재율은 바로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안타까워하며 연민주를 안아 침대에 눕힌 뒤 곁에서 그녀의 체온이 조금씩 내려가는 것을 지켜봤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온 신경이 핸드폰에만 가 있었다. 정은희가 메시지를 보냈기 때문이다. [아기가 깼는데 계속 울고 있어, 아빠 생각 나나 봐...] 최재율은 타던 우유를 즉시 내려놓고 재빨리 답장했다. [금방 갈게.] 최재율이 다급히 외투를 입는 모습을 본 연민주는 참지 못하고 피식 웃었다. “또 미팅 가는 거야?” 순간 흠칫 놀란 최재율은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지 연민주에게 다가가 입술을 맞추려 했다. 하지만 연민주가 고개를 돌린 탓에 입술이 그녀의 머리카락에만 스쳤지만 이것만으로도 연민주는 무척이나 불쾌하게 했다. “미안해, 이번 프로젝트 회사에 너무 중요한 거야. 이거 다 끝나면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몰디브 가자... 밤 케이크 먹고 싶지 않아? 내일 올 때 재료 사다가 해 줄게...” 연민주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조용히 말했다. “조심히 가.” 연민주의 기분이 이상한 것을 알아챈 최재율은 뭔가 더 말하려 했지만 연민주가 머리를 짚으며 한마디 했다. “재율 씨, 나 좀 피곤해서 쉬고 싶어.” 이 말을 들은 최재율은 바로 방으로 가서 침대 이불을 폈다. 심지어 이불 속에 따뜻한 손난로도 몇 개 넣어줬지만 연민주가 열이 나는 것은 발견하지는 못했다. 문이 닫히는 순간 연민주는 조금 전 최재율이 데웠던 우유를 들어 천천히 싱크대에 부어 버렸다. ‘우습네, 마지막까지 가식적으로 행동하네.’ 시스템 소리가 연민주 귓가에서 울렸다. [주인님, 감정 파동 지수 오버, 심리적 방어 시작하시겠습니까?] 고개를 저은 연민주는 책상 앞으로 걸어가 [민주 식사 노트]를 펼쳤다. 오늘 날짜가 적혀 있는 가장 최근 페이지에는 작은 글씨가 한 줄 적혀 있었다. [민주 위가 안 좋음. 삼계탕에 생강 세 조각 추가 후 두 시간 정도 충분히 끓일 것.] 글자를 응시하던 연민주는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시스템.” 그러고는 조용히 말했다. “아픔이 선명할수록 이전의 내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를 더 확실히 알게 돼.”

© Webfic, 판권 소유

DIANZHONG TECHNOLOGY SINGAPORE PTE. LT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