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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연이어 도착한 세 메시지는 간결하게 명령하는 어투였다. 서현우는 미간을 찌푸리며 이내 머릿속으로 윤소율의 아름답고도 오만한 모습을 떠올렸다. 그녀는 문자를 보내면 남자가 반드시 올 거라고 확신하는 듯했다. 임채은은 차에서 내린 뒤 서현우가 여전히 차에서 내리지 않자 의아해하며 말했다. “현우 오빠, 도착했어.” “응, 먼저 올라가.” “같이 안 가?” “일이 있어서. 나중에 다시 올게.” “언제 돌아올 거야...” “만약 늦게 돌아오면 기사님께 집까지 데려다주라고 할게.” 임채은은 놀라며 더 물어보려 했지만 주도윤은 이미 차 문을 닫았다. 그녀는 차가 지하 주차장을 떠나가는 것을 지켜보며 화가 나서 얼굴이 하얗게 변했고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어디로 가는 거지? 회사로 가는 건가? 얼마나 바쁘면 날 혼자 지하 주차장에 두고 가지?’ 임채은은 씩씩거리며 엘리베이터가 있는 복도로 향했다. 오늘 밤 용기를 내 모든 걸 남자에게 맡기기로 했으니 무슨 일이 있어도 그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릴 거다! ... 소피 클럽. 서현우가 문에 들어서자마자 귀를 찢는 듯한 소음이 몰아쳤다. 무대 위에서 사람들은 몸을 흔들며 춤을 추고 있었다. 혼잡한 소음 속에서 서현우는 1층 단독 좌석을 한눈에 발견했다. 몇 명의 재벌 2세들이 윤소율을 둘러싸고 있었다. 그들이 윤소율에게 던지는 시선은 숨길 수 없는 음탕함을 담고 있었고 이 순간은 옷을 입지 않은 거나 마찬가지로 보였다. 서현우는 좌석 대신 거기서 벌어지는 모든 걸 볼 수 있는 2층으로 올라갔다. “대스타님, 우리와 술 마시는 건 그쪽 영광이지. 우리를 우습게 알고 술 안 마시는 거야?” “아직도 할리우드에 있는 줄 알아? 여기는 현국이야. 같은 하늘 아래 엄연히 다른 곳이니까 주제넘게 굴지 마!” “술이 아니라 옷을 벗으라고 해도 군말 없이 벗어야지!” “...” 몇 명의 방탕한 재벌 2세들이 경호원을 좌석 입구에 배치했다. 윤소율을 이곳에 가둬두려는 의도가 분명해졌다. 윤소율은 소파에 앉아 주변을 둘러보다가 하나같이 음침한 그들의 얼굴을 마주했다. 열세에 처했어도 두려운 기색 없이 당당하게 대꾸했다. “본인들 입으로 엄연히 다른 곳이라고 말하네. 안 그럼 경진이 고작 당신 같은 인간들 천지라고 생각했을 거야.” “너!” 한 남자가 그녀의 말에 얼굴이 퍼렇게 질렸다. “이 망할 년이 주제도 모르고! 내가 누구인지 알아? 영화 몇 편 찍었다고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다른 누군가 거들었다. “여기 다 우리 사람들이야. 여기가 어딘 줄 알아? 좋게 말할 때 순순히 따라.” 소피 클럽 배후의 사장은 제법 내로라하는 인물이라고 들었다. 이곳을 드나드는 사람은 대부분 권력자나 유명 인사였는데 아무리 대단한 연예인도 여기서는 고작 춤추는 여자들처럼 한낱 딴따라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어떤 연예인이든 순순히 말을 듣는 게 대부분인데 윤소율은 아무리 술을 권해도 마시지 않았다. 윤소율은 그들을 안중에도 두지 않는 듯 차갑게 웃었다. “이 술 마시면 어떻고 안 마시면 어떤데? 좋게 말할 때 들으라고? 대체 누구한테 하는 말이지?” “다시 한번 말해봐!” “내가 뻔뻔하게 엉겨 붙은 게 아니라 당신들이 날 불렀어. 술을 사는 건 당신들이고 마시는 건 내 선택이지. 내가 안 마시겠다면 안 마시는 거야.” 자리에 있던 재벌 2세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윤소율이 이토록 무너뜨리기 어려운 상대일 줄은 다들 예상 못 했다. 그중 한 남자가 콧방귀를 뀌었다. “윤소율, 네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오늘 이 술은 반드시 마셔야 해. 어쭙잖게 도발하는 수작 따위 부리지 마. 그냥 얘기할게. 우리 도련님이 네가 마음에 든다니까 값을 불러. 할리우드 대스타라 도련님이 맛 좀 보고 싶다네. 하룻밤은 얼마야? 돈은 얼마든지 줄 테니까 원하는 만큼 말해!” “이 자리까지 올라왔으면 그렇게 깨끗하지도 않을 텐데 우리 도련님같이 술 마시는 게 어때서? 그게 그렇게 힘들어?” 송씨 가문 송진수는 유명한 인물이었다. 송씨 가문 아들로 평소 별다른 취미도 없이 어중이떠중이 친구들과 여자 연예인을 희롱하곤 했다. 윤소율이 귀국하자 송진수는 서둘러 그녀를 불러냈다. 이 바닥 전체에서 아무리 든든한 뒷배를 지녀도 그가 데리고 놀고 싶으면 얼마든지 놀 수 있었다. 그런데 하필 윤소율같이 까다로운 상대를 만날 줄이야. 오긴 했는데 여기 앉아서 꼼짝도 하지 않으니 자리에 있는 도련님들은 화가 치밀어 오늘 밤 어떻게든 그녀를 손에 넣을 작정이었다. 하지만 윤소율의 영향력이 워낙 대단하니 일을 크게 부풀리고 싶지 않아 지나친 수단을 쓸 수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말했는데도 윤소율이 안중에도 두지 않고 술을 한 모금도 마시지 않자 송진수는 체면이 제대로 구겨졌다. 술에는 이미 손을 댔다. 데뷔한 지 수년이 지난 지금 윤소율은 술에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 너무 잘 알았다. 하지만 그녀가 마시지 않을수록 송진수는 더욱 몰아붙였고 윤소율은 차갑게 말했다. “송진수 씨, 데뷔하고 지금까지 날 탐내는 남자는 수없이 많았어요. 같이 식사 한번 하겠다는 사람만 줄을 섰어요. 오늘 여기로 온 것만 해도 충분히 그쪽 체면 배려한 것 같은데 술까지 강요하면 나도 가만히 있지 않아요.” “우리 도련님은 여자를 아끼는 거야. 이름 좀 있다고 우리 도련님 우습게 보지 마.” “송씨 가문이 아니라 서씨 가문 서현우가 여기 와서 술 마시라고 해도 내가 마시기 싫으면 안 마시는 거예요.” 말을 마친 윤소율이 우아하게 다리를 꼬았다. “당신들이 서현우보다 대단해요?” 2층에서 서현우는 좌석에서 벌어지는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특히 서씨 가문 서현우가 와서 술 마시라고 해도 마시기 싫으면 안 마신다는 여자의 말은 안하무인이 따로 없었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화가 나지 않았다. “허, 허풍이 심하네.” “서 대표도 눈에 차지 않아?” 송진수는 갑자기 손을 흔들며 그들을 입 다물게 했다. 그는 윤소율을 바라보며 입꼬리를 살짝 올리더니 마침내 입을 열었다. “이곳 소피는 내 영역이야. 서현우가 와도 순순히 내 말에 따라야 해.” 윤소율은 눈가에 미소를 머금었지만 차가움과 경멸이 섞여 있었다. 화려한 화장을 하지 않아도 눈꼬리가 살짝 올라간 모습이 정말로 매혹적이었다. 눈빛 한 번으로 사람의 마음을 홀리는 여자라 그 많은 권력자가 그녀의 발아래에 무릎을 꿇는 것도 당연했다. 명불허전 연예계 마녀다웠다. 보기만 해도 안달나는데 이렇듯 매력적인 여자가 쉽게 넘어오지도 않으니 오히려 그의 승부욕을 자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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