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서현우의 눈동자에 살기가 번쩍였다.
“수표 들고 꺼져요.”
윤소율은 시선을 들어 올리며 핸드백에 넣었다.
“대표님께선 정말 대인배이시네요.”
“윤소율 씨, 현국에서 누구와 놀든 상관없지만 나랑은 놀지 마요.”
윤소율은 붉은 입술을 살짝 비틀며 말했다.
“왜요? “
“나랑 놀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서현우는 갑자기 여자의 얼굴을 움켜쥐고 손가락 끝으로 그녀의 입술을 가볍게 문지르며 말했다.
“그쪽이 첫 번째네요.”
윤소율은 남자의 손을 가볍게 낚아챈 뒤 시선을 돌리자 그의 손가락 끝에 입술에 발랐던 립스틱이 묻어 있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시선을 내린 채 남자의 손가락 끝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도발이자 화끈한 초대였다.
“서현우 씨.”
윤소율이 매혹적인 눈동자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우리 게임 하나 해요.”
남자는 날카로운 눈썹을 살짝 올리며 물었다.
“어떤 게임?”
“그쪽이 날 사랑하게 할 거예요. 헤어 나올 수 없을 정도로.”
말을 마친 윤소율은 가방을 든 채 미소를 지으며 뒤돌아 나갔다.
서현우는 위험한 눈빛을 내비쳤다.
‘저런... 미친 여자.’
...
연우 엔터테인먼트 본사.
임채은이 회사에 들어서자마자 매니저 이수진이 서둘러 다가왔다.
“채은아, 큰일 났어!”
“뭐가 그렇게 급해?”
임채은이 경계하며 물었다.
“무슨 일이야?”
이수진은 망설이다 말했다.
“윤소율이... 연우에 와 있어.”
임채은은 경악했다.
“그 여자가 연우에는 왜?”
“소문에 현국으로 돌아와 활동할 거라고 했잖아. 국내 활동은 연우에서 담당할 거야. 계약금만 수백억이라고 하더라...”
‘연우...’
임채은이 눈을 가늘게 뜨며 차가운 숨을 들이켰다.
연우는 현국 최고의 엔터테인먼트 회사로 오션 그룹과 임상 그룹이 모두 지분을 보유하고 있어 임채은을 챙겨주고 있었다.
두 재벌가의 지원을 받아 임채은은 단연 연우 최고의 지원을 독점하는 주연 배우로 성장했고 이를 통해 할리우드 진출의 기회를 잡았다.
[종말 2076] 이 SF 영화는 그녀가 윤소율로부터 빼앗은 것이었다.
임채은은 현국 최고의 스타이지만 윤소율이 국제 영화계에서 가진 영향력을 부러워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는 꿈에서도 국제 시장에 진출하고 싶었다.
‘윤소율은 왜 해외 활동을 포기하고 현국으로 돌아와 하필 연우와 계약했을까?’
임채은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여자 어디 있어?”
“이사님 사무실에서 계약 중이야. 계약 조건에 불만이 있대.”
임채은은 짜증스럽게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계약금이 수백억인데 무슨 불만이 있대?”
이수진은 씩씩거리며 말했다.
“수백억 계약금 말고도 연우 최고의 매니지먼트 팀을 원한대. 그리고... 앞으로 연우의 모든 지원은 자기에게 우선으로 배정해달라고 요구했어.”
임채은의 눈빛이 살벌하게 번뜩였다.
“나랑 연우 톱 자리를 놓고 다투겠다는 거야?”
이수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 연우에서 그 여자를 부처님처럼 떠받들면 우리도 모든 스케줄 다 빼앗길 거야.”
임채은이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왔으니까 얼굴이나 보자. 연우에서 내 위치는 아무도 넘볼 수 없다는 걸 보여줄 거야!”
말하며 임채은은 총괄 이사 사무실 앞에 도착했다.
수많은 사람이 통유리창 앞에 모여 속삭이고 있었다.
누군가 소문을 흘렸는지 윤소율이 연우와 계약했다는 소식이 회사 전체에 빠르게 퍼졌다.
“역시 국제 영화제 여왕이야... 실물이 화면보다 더 아름다워!”
“저러니 첫 작품부터 할리우드 대스타와 협업해 데뷔부터 정점을 찍었지! 이번에 계약하면 연우도 여왕님 덕을 볼 거야. 어쩌면 연우도 할리우드 진출 기회가 생길지도 몰라!”
“그게 아니면 왜 회사가 이렇게 큰돈을 들여 계약했겠어?”
“하지만... 윤소율이 정말 연우와 계약한다면 앞으로 임채은 자리가... 위태롭겠네.”
“서 대표가 없었으면 무슨 능력으로 윤소율 작품을 뺏겠어.”
임채은은 화가 나서 폐부가 터질 것 같았지만 겨우 표정 관리를 유지하며 목을 가다듬었다.
고개를 돌린 사람들은 임채은을 보고 놀라서 입을 다물었다.
임채은이 조롱하듯 말했다.
“왜, 윤소율이 왔다고 나를 무시하는 거야?”
“채은 씨... 그럴 리가요. 채은 씨는 영원한 우리 마음속 톱스타예요.”
임채은이 짜증스럽게 말했다.
“업무 시간인데 일은 다 했어? 홍보는 했고? 대본 가져왔어? 다 여기 모여서 뭐 하는 거야! 그렇게 한가하면 내가 이사님께 업무 지시 내려달라고 말할까?”
그녀의 협박 한 마디에 문 앞에 있던 사람들이 빠르게 흩어졌다.
임채은은 기분을 달래고 문 앞으로 걸어가서 유리문 안쪽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시야에 윤소율의 아름다운 옆모습이 보였다.
검은 머리가 부드럽게 어깨에 흘러내리고 눈매는 정교했으며 코는 오뚝하고 피부는 하얗고 투명했다. 차가우면서도 유혹적인 얼굴이라니, 많은 사람이 모여드는 이유를 알겠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속으로 질투가 치밀어 기분이 좋지 않았다.
만약 윤소율이 정말로 연우와 계약을 맺는다면 앞으로 임채은은 영원히 뒤로 밀려나지 않을까.
‘절대 안 돼!’
...
총괄 이사 사무실 안.
윤소율이 힐끗 시선을 돌리자 임채은이 문가에 서 있는 모습이 보였지만 못 본 척 이사를 향해 천천히 말했다.
“권 이사님께서 매니저를 배정해 주신다고 했으니 분명하게 얘기할게요. 전 매니저에 대한 요구가 많아요. 아래 몇 가지는 꼭 기억했으면 좋겠어요.”
권우림은 즉시 비서를 불러들였고 비서는 신속히 메모장을 꺼냈다.
“첫째, 내 매니저는 24시간 대기 상태여야 해요. 난 기다리는 걸 싫어하니까 한 번이라도 늦으면 즉시 해고에요.”
“둘째, 나는 심각한 결벽증이 있어서 출장이나 촬영이 있을 때 나랑 같은 방을 쓸 수 없어요.”
“셋째, 난 매일 아침 일어나면 반드시 커피 한 잔, 설탕 한 봉지, 우유 두 팩을 마셔야 해요. 가능하면 즉석에서 갈아낸 커피로요. 몸매 유지를 위해 매일 식사는 야채 세 가지와 고기 한 가지로 준비해 줘요. 소고기나 닭가슴살만 가능해요...”
“...”
“여섯째, 업무상 스트레스가 심하니까 퉁명스럽게 말해도 말대꾸하면 안 돼요.”
문이 벌컥 열리고 임채은이 걸어 들어오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세계적인 여배우가 사실은 이렇게 갑질하는 사람이었네요.”
윤소율이 무시하며 말을 이어갔다.
“우선 이 정도만 얘기하고 더 있으면 나중에 말하죠.”
임채은은 윤소율이 자신을 무시하자 더욱 화가 났다.
“윤소율 씨, 내가 안 보여요?”
“보아하니 임채은 씨가 저와 이야기하고 싶은 것 같은데 권 이사님, 자리 좀 피해주실래요?”
권우림은 미간을 찌푸리며 일어나 임채은에게 말했다.
“채은 씨, 윤소율 씨는 우리 연우와 새로 계약한 분이야. 앞으로 같은 회사 동료니까 서로 도와야지.”
“윤소율 씨, 오늘 밤에 파티도 있어요. 연우 이사회에서 소율 씨 환영식으로 준비했으니 꼭 참석하길 바라요.”
말을 마친 그가 사무실을 나갔다.
윤소율은 차갑게 웃으며 마침내 임채은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갑질이요? 임채은 씨, 갑질도 할 수 있는 사람이 하는 거예요.”
말하며 그녀는 천천히 일어나 임채은 앞으로 걸어갔다.
“위치만 따지고 볼 때 내가 갑질할 자격이 없으면 누가 있는데요? 그쪽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