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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0화

윤라희는 비틀거리며 몇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러다가 발밑으로 밟히는 무언가가 느껴졌다. 마치 뱀이 발등 위를 스치고 지나가는 것 같았다. 이어서 종아리가 물린 듯 따끔했지만, 온몸의 감각은 이미 무뎌진 상태였다. 독이 온몸으로 퍼지고 두 다리는 점점 마비되어 갔다. 오랫동안 고인 물처럼 텅 빈 시선이 천천히 다른 쪽으로 옮겨지다가 텐트 밖으로 버려진 휴대전화 위로 멈췄다. 그건 윤라희의 휴대폰이었다. 아까 숲속에서 소하은을 업고 뛰느라, 그녀의 손에 쥐여줬던 자신의 휴대폰이 지금 텐트 밖에 버려져 있었다. 그 휴대폰이 꼭 자기 모습처럼 느껴졌다. ‘아이러니하네.’ 모두가 그녀의 성모마리아 같은 성정을 비웃는 것 같았다. 윤라희는 씁쓸하게 두어 번 정도 웃음을 터뜨리더니 눈앞이 뿌옇게 흐려졌다. 코가 시큰해졌고, 쓰라린 서러움이 한꺼번에 차올랐다. ‘울고 싶은 건가?’ ‘아니, 나는 안 울어. 그럴 가치도 없는 일이니까.’ ‘더 심한 일들도 겪었는데, 이 정도쯤이야.’ 윤라희는 고개를 숙여 눈가에 고인 눈물을 억지로 닦아내고는 다시 자조적인 미소를 지었다. ‘아빠...’ ‘아빠는 언제나 나한테 정직하게 살라고 했죠? 기꺼이 남 도와줘 놓고 보답을 바라서는 안 된다고. 그저 하늘을 우러러 한 점의 부끄러움도 없으면 된다고 그랬잖아요. 나는 늘 아빠의 가르침대로 살아왔어요. 그런데 어쩌죠? 방금 아빠의 가르침이 틀렸다는 걸 알아버렸어요.’ ‘나는 선의를 베풀어서 다른 사람을 구해줬는데, 나한테 돌아온 게 뭐인 줄 알아요?’ ‘라희야, 윤라희... 너 그동안 정말 우습게 살아왔구나!’ ‘그렇게 많은 일을 겪었는데, 그토록 많은 사람들의 어두운 면을 봐놓고 왜 아직도 깨닫는 바가 없는 거야. 세상에서 제일 어두운 게 바로 사람의 마음인 건데.’ 윤라희는 손등으로 눈물을 닦아냈다. 감정을 잃은 그녀의 눈빛은 이제 차갑게 굳어 있었다. ‘빌어먹을 성모 마리아 따위는 더 이상 안 해! 앞으로는 무슨 일이 있어도 이런 짐승 같은 인간들 앞에서 절대 마음 안 약해질 거야.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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