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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배청아의 상태가 급격히 나빠졌다. 배청아는 한참씩 멍하니 앉아 창밖만 바라봤고, 가끔은 캔버스 위에 숨 막히는 짙은 어둠을 넓게 문질러 놓기만 했다. 배청아는 베개 밑에 숨겨 둔 일기장을 일부러 서기백에게 들키게 했다. 서기백은 페이지를 넘기며, 글자마다 피가 배어 있는 듯한 고통과 분노를 읽어 내려갔다. [왜 하필 나야?] [내 그림... 그건 전부 내 아이들이었는데...] [사는 게 너무 힘들어. 어쩌면 사라지는 게 해방일지도...] 서기백은 일기장을 덮었다. 눈동자에 남아 있던 마지막 의심이 완전히 사라졌다. 서기백이 빚어낸 배청아가 드디어 완성되어 가고 있었다. 도하윤은 더 노골적으로 들떠 있었다. 배청아가 정신이 흐릿한 얼굴로 거실에 앉아 있을 때도, 도하윤은 참지 못하고 서기백과 바로 이야기를 꺼냈다. “배청아가 죽으면 그림 저작권은 완전히 내 거 되는 거지?” 도하윤은 술잔을 흔들며 웃었다. “그럼 나는 언니를 추모한다면서 은퇴 선언하고, 패션 쪽으로 갈아탈 거야. 모델도 벌써 정해 놨어!” 서기백은 소파 구석에 웅크린 배청아를 바라봤다. 배청아는 무릎을 끌어안은 채, 이 모든 말에 아무 반응도 없는 사람처럼 굳어 있었다. 서기백의 마음 한구석에는 아주 미세한 불편함이 스쳤지만, 계획이 순조롭게 굴러간다는 안도감에 금세 묻혔다. “걱정하지 마.” 서기백은 스스로도 놀랄 만큼 차갑게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전부 계획대로 진행될 거야. 배청아의 자살 장소는 화실로 하자. 시작과 끝이 같은 곳이면 깔끔하잖아.” 그날 밤, 화실은 정교하게 꾸며졌다. 빈 약병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고, 찢긴 스케치들이 바닥에 널렸다. 창문은 활짝 열려 있었고, 차가운 바람이 휘몰아치며 방 안으로 들이쳤다. 책상 위에는 글씨가 삐뚤빼뚤한 유서가 놓였다. 내용은 창작이 빼앗겼다는 고통, 그리고 정신적으로 조종당했다는 괴로움을 가리키고 있었지만, 결정적인 부분은 일부러 흐릿했다. 누군가를 끌어들이는 미끼처럼 말이다. 배청아가 늘 들고 다니던, 최면 대화 일부가 담긴 녹음기는 구석에 깜빡 잊은 것처럼 놓아두었다. 서기백과 도하윤은 현장을 마지막으로 점검했다. 흠잡을 곳이 없다는 걸 확인한 뒤, 만족한 얼굴로 화실을 나가 문을 잠갔다. 서기백과 도하윤은 확신했다. 내일 아침이면, 병에 지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시신이 이곳에서 발견될 것이다. 문 안쪽. 바닥에 기절한 채 널브러져 있던 배청아가 천천히 눈을 떴다. 저 사람들은 배청아가 죽기를 바랐다. 배청아는 저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죽어 주기로 했다. 하지만 조용히, 흔적도 없이 죽는 것은 아니었다. 배청아는 요란하게, 누구도 외면할 수 없게 죽을 생각이었다. 배청아는 소리 없이 일어나 도시 반대편으로 향했다. 바닷가 절벽 위에 서자 매서운 해풍이 배청아를 칼처럼 베었다. 배청아는 생방송을 켰다. 카메라를 아래에서 몰아치는 검은 파도에 맞췄다. 방송 제목은 노골적이고도 자극적이었다. [도하윤의 언니, 자살 생중계] 사람들이 순식간에 몰려들었다. [역시 정신병자네.] [뛰려면 빨리 뛰어. 시간 낭비하지 말고.] [또 하윤이 욕먹이려는 거네.] 배청아는 빠르게 쏟아지는 악플을 보며 마음을 얼음처럼 가라앉혔다. ‘그래 욕해. 마음껏 욕해.’ 지금 더 잔인하게 욕할수록, 배청아가 죽은 뒤 그 죄책감과 분노의 반동은 더 거세질 것이고, 도하윤의 결말은 더 처참해질 터였다. 배청아는 이 세계의 규칙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증거를 그대로 내밀면, 서기백과 최미경, 도명석은 돈과 인맥으로 덮어버릴 것이다. 배청아의 증거를 정신병자의 망상으로 깔끔하게 정리해 버릴 것이다. 자본조차 쉽게 꿰매지 못할 틈은, 피와 목숨으로만 낼 수 있었다. 배청아는 그 틈을 찢어 놓을 생각이었다. 배청아가 뛰어내리는 이 순간부터, 사람들의 의심이 미친 듯이 번져 나가게 만들 것이다. 배청아를 욕했던 모든 사람이, 사후에 배청아를 몰아붙였다는 공범 의식을 떠안게 만들 것이다. 속았다는 분노와 죄책감이 뒤섞인 그 감정이 도하윤을 찢어발기게 만들 것이다. 배청아가 카메라를 똑바로 바라봤다. “도하윤.” 배청아 목소리가 화면을 뚫고 나갔다. “도하윤이 〈허허벌판〉을 훔쳐 갔을 때, 새벽 세 시에 달빛이 특정 각도로 비치면 내가 특수 물감으로 남겨 둔 내 이니셜이 드러난다는 걸 알고 있었어? 그게 내 표식이야.” 배청아는 숨도 고르지 않고 이어서 물었다. “도하윤은 ‘베네치아 레드’랑 ‘딥 매더 레드’의 본질적인 차이를 구분할 수 있어? 하나는 오래된 광물에서 나온 색이라 땅이 가라앉혀 둔 따뜻함이 남아 있고, 하나는 식물 뿌리에서 뽑아낸 색이라 살아 있는 투명함이 있지.” 배청아의 눈빛이 더 차갑게 가라앉았다. “도하윤의 수상작 〈치염〉, 그 그림은 저 두 붉은색이 중심이었지. 도하윤은 그 색을 캔버스에 각각 몇 겹이나 올렸는지, 어떤 순서로 깔았는지 말할 수 있어?” 배청아는 카메라를 향해, 마치 누군가의 얼굴을 겨누듯 말했다. “오늘 난 죽을 거야. 전 세계가 똑똑히 지켜봐. 도하윤이라는 천재 화가가... 내가 죽고 나서도, 정말로 도하윤의 것인 붓질을 한 번이라도 할 수 있는지.” 배청아는 문득 뭔가 떠올린 듯 입꼬리를 비틀었고 비웃음 같은 미소를 지었다. “아, 그리고. 내가 죽으면 도하윤은 또 지난번처럼, 밖에는 언니가 불쌍해서 너무 슬프다고 하면서 은퇴 선언하겠지? 그런 다음 내 그림 저작권을 들고 멀쩡하게 패션계로 넘어가려는 거 아니야?” 배청아는 목소리가 갑자기 얼음처럼 차가워졌다. “도하윤, 우리 사이에 그런 애틋한 자매애는 애초에 없었어. 도하윤이 정말로 은퇴하면, 그건 도하윤이 스스로 베껴 그렸다고 인정하는 거야.” 배청아는 숨을 한 번 들이켰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못 박았다. “내가 살아 있을 때 도하윤은 나를 발판으로 삼았지. 내가 죽으면 내가 댖도하윤의 앞길을 깔아줄 수 있는지 두고 보자고.” 말이 끝난 순간, 배청아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차가운 바닷물이 수천 개의 바늘처럼 피부를 찔렀다. 짠물이 입과 코로 미친 듯이 밀려 들어왔다. 배청아는 본능적으로 발버둥치고 싶었지만, 스스로를 억눌렀다. 팔다리에 힘을 풀어 버린 채, 무거운 몸이 어둠 아래로 가라앉게 내버려뒀다. 의식이 흐려지는 마지막 순간, 배청아는 마치 다시 그 장면들을 보는 것 같았다. 서기백이 다정하게 약을 먹여 놓고는, 돌아서서 도하윤에게 달콤한 말을 건네던 얼굴, 최미경과 도명석이 차갑게 서명을 강요하던 순간, 기자들이 배청아가 무너지는 모습을 미친 듯이 찍어대던 플래시, 그리고 도하윤이 할머니 사진을 짓밟으며 웃던 표정... 처음부터 끝까지 배청아는 늘 혼자였다. 바닷물이 완전히 배청아의 의식을 덮어 버렸다. 마지막 생각이 스치듯 떠올랐다. “이렇게라도... 좋네. 이제야... 정말로 쉴 수 있으니까.” 그 순간, 생방송 신호가 완전히 끊겼다. 화면은 숨소리조차 없는 검은 어둠으로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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