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4화

하준혁은 무슨 일인지 묻으려 고개를 숙이던 참이었다. 그 순간, 뒤에서 누군가 성큼 다가오더니 그의 팔을 거칠게 잡아 끌고 옆으로 밀쳐냈다. 그는 따로 반응하지도 않았다. 그대로 밀려나면서도 느긋하게 눈을 들었는데 그의 시선엔 차가운 무시와 우월감만 서려 있었다. 남민우는 다시 한 번 확신했다. 이 남자의 적의는 분명 이성에게서 오는 그것이었다. 여수민의 눈가는 벌써 벌겋게 물들어 있었다. 오랜 시간 알고 지낸 연인로서 여수민이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이 어떤지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하준혁이 뭔가 했다고 생각한 순간, 남민우는 충동적으로 주먹을 휘둘렀다. 여수민은 눈이 크게 흔들렸지만 막을 틈도 없이 그 주먹은 정확하게 하준혁의 입가에 꽂혔다. ‘미쳤어!’ 여수민은 분노에 휩싸여 달려가 하준혁 앞을 막아섰다. 그리고 있는 힘껏 남민우를 밀어냈다. 남민우의 눈에 상처받은 듯한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수민아, 두 사람 방금 뭐 한 거야? 그 자식이 너 괴롭힌 거 맞지?” 남민우가 낮게 윽박질렀다. 여수민은 손으로 빠르게 수어를 쳤다. [무슨 소리예요! 그냥 얘기하고 있었어요.] [오빠, 사람 때리면 어떡해요! 얼른 사과해요.] 하준혁은 여수민이 이렇게 많은 말을 수어로 하는 모습을 처음 봤다. 동작이 너무 빨라 그는 따라잡을 수 없었지만 남민우는 전부 알아본 듯했다. 남민우가 굳은 얼굴로 그녀를 끌어안으려 손을 뻗는 순간 하준혁이 여수민의 손목을 붙잡았다. “우리가 그저 정상적으로 대화한 것 때문에 언짢았던 거라면 설명하겠습니다. 그러니 여수민 씨에게 상처 주지 마세요.” 하준혁이 차갑게 말했다. 남민우는 하루 종일 불안에 시달린 끝에 결국 하준혁의 속내를 눈앞에서 확인했다고 생각하자 더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다. 다시 손을 올리려 했지만 여수민이 앞을 막아섰다. 그녀의 눈빛에는 깊은 실망이 어려 있었다. [이분은 나를 도와줬어요. 그런데 때리면 어떡해요? 나 정말 오빠한테 실망이에요.] 여수민의 시선을 마주한 남민우는 조금씩 진정되면서도 가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