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2화
하준혁은 자신의 말에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든 여수민과 눈이 마주쳤다. 그는 순간 멈칫했지만 오늘 하루 동안 여수민이 자신을 화나게 한 게 괘씸해서라도 절대 마음이 약해지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네 동생은 연경체대에 특례 입학까지 시켜줬는데, 넌 이 일도 모르고 있었지?”
여수민의 얼굴은 이미 하얗다 못해 창백하게 질려버렸다. 여수민은 그제야 그날 아버지가 자신에게 보낸 문자 속에 교수님의 도움과 선물에 대한 감사를 표하라고 했던 것이 떠올랐다.
여수민은 충격에 휘청거리다가 책상에 기댔다.
하준혁은 그런 그녀를 덤덤하게 훑어보다가 말을 이어갔다.
“그러니까 1억 1540만 원이야. 반올림해서 1억 2천만 원, 이 정도면 충분하지?”
이는 하준혁이 평생 보아온 것 중에서 가장 터무니없는 차용증이었다.
자질구레한 금액까지 따져가며 하루라도 빨리 계산을 끝내고 싶어 하는 구질구질하기 그지없는 것이었다.
하준혁은 아직 새파랗게 어린 애가 대체 평소에는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사는지 기억 하나는 또 끝내주게 잘해서 더 기가 찼다.
하준혁은 그 종이를 여수민에게 던지고는 비웃었다.
“네가 돈으로 갚겠다고 하면 내가 넙죽 받아줄 것 같았니?”
한없이 가벼운 종잇장이었지만 여수민에게는 치명상이나 다름없었다. 허공에서 나풀거리는 종잇장과 함께 그녀의 자존심과 존엄도 산산조각이 났기 때문이다.
비참하고 서러웠지만 이미 파편이 되어 흩어진 자존심은 다시 이어 붙일 수도 없을 것 같았다.
1억 2천만도 여수민에게는 숨이 막히는 아득한 금액인데 하준혁이 가족에게 베푼 추가적인 것들은 또 다른 엄청난 짐이었다.
정말이지 산 넘어 산이라는 말이 딱 맞았다.
이대로라면 이번 생은 산만 영원히 넘고 또 넘다가 죽어버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았다.
오랜 침묵이 흘렀다. 하준혁이 이쯤이면 여수민도 모든 것을 깨달았으리라 생각할 때 즈음, 여수민은 묵묵히 몸을 숙여 그 종이를 주웠다. 그리고는 새로운 한 줄을 또 썼다.
[가게, 일자리, 보장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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