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3화

만약 이 모든 일이 벌어지지 않았고, 남민우와 하준혁의 날 선 대립도, 남민우가 또다시 떠나는 일도 없었더라면 여수민은 아마 하준혁의 제안을 받아들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지쳐버린 여수민은 그저 혼자 집에서 이 부정적인 감정들을 해소하고 싶을 뿐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습관처럼 책상 위의 종이와 펜을 집어 들고 써 내려갔다. [안 돼요...] 겨우 세 글자를 썼을 뿐인데 하준혁이 펜을 낚아챘다. 갑작스러운 하준혁의 행동에 여수민은 고개를 들어 그의 평온한 얼굴을 쳐다보았다. 아무런 감정도 읽히지 않았지만 여수민은 하준혁이 화가 났음을 알 수 있었다. 더불어 그 화가 진심에서 우러나온 것이라는 것도 어렵지 않게 눈치챌 수 있었다. 하준혁은 한참 동안 말없이 여수민을 지켜보다가 갑자기 손을 뻗어 그녀의 손목을 움켜쥐었다. 그리고는 곧장 문밖으로 여수민을 잡아끌었다. 어찌나 성급하게 끌어당기는지 여수민은 휴대폰을 챙길 겨를도 없었다. 결국 그녀가 간신히 챙긴 거라곤 현관 신발장 위에 놓인 열쇠뿐이었다. 하준혁은 문이 닫히기 바쁘게 여수민을 한쪽 팔로 안아 올려 계단을 내려갔다. 여수민은 저항할 생각 따위는 하지도 못하고 대화의 의지를 완전히 상실한 채 하준혁이 이끄는 대로 따라갔다. 불안감과 당혹감을 가득 안은 채 비틀거리며 복도를 빠져나왔고 정신을 차리니 어느새 아파트 단지도 벗어나고 있었다. 하준혁이 뒷좌석에 억지로 밀어 넣으며 강압적으로 굴자 그 유순한 여수민도 결국엔 성질을 부리며 반항을 했다. 여수민은 하준혁을 째려보았다. 억울함과 무력감, 그리고 원망과 분노가 뒤섞인 그녀의 눈동자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마음이 아프게 만들었다. 하준혁은 여수민의 작은 머리통을 살짝 눌러 차 안으로 밀어 넣었다. 차 문을 잠근 하준혁은 반대편으로 돌아가 차에 올라탔다. 여수민은 속으로 화를 삭이며 고개를 돌려 침묵했다. 하준혁의 강압에 대한 그녀 나름의 저항방식이었다. 하준혁은 여수민의 고집스러운 모습에 자연스레 미간이 찌푸려졌다. 여수민은 하준혁이 살면서 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