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화
강청서는 감히 고개를 들지 못하자, 옆에 있던 박복선이 서둘러 상황 수습에 나섰다.
“쇤네는 방화각의 주인으로, 자수공을 데리고 수 놓으러 왔습니다.”
섭정왕부에서는 태후의 생일잔치에 바칠 양면자수를 준비 중이었다.
앞면에는 만리강산도를, 뒷면에는 번화한 거리 백성들의 모습을 금실과 은실로 수놓을 계획을 섭정왕이 반년 전부터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거의 끝나갈 때 몇 명의 자수공들이 안질에 걸려 더는 일을 할 수 없게 되자 임시로 사람을 구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양면자수를 할 줄 아는 자수공이 드문 데다 그 기술 또한 단기간에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 상황을 자수방 측에서 여러 번 집사에게 보고한 바람에 조 집사도 이 일에 관해 잘 알고 있었다.
소란을 일으킨 이가 급히 찾던 자수공인지라 조 집사는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무슨 일인가?”
이현익이 차가운 목소리로 묻자, 조 집사는 서둘러 양면자수의 일에 관해 설명했다.
이현익은 눈을 가늘게 뜬 채 무표정으로 박복선와 강청서를 쏘아본 후, 시선을 강청서의 등에 멈췄다.
그러자 머리 위에 칼이 있는 느낌이 들었던 강청서는 온몸에 한기가 느껴졌다.
“궁 안의 일이니 당연히 중시해야겠지.”
그 말을 듣고 박복선이 살짝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강청서는 그리 낙관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이현익이 옹졸하고 까다로운 인간이라고 전생의 기억이 그녀에게 알려주었으니.
아니나 다를까 그는 뜸을 들인 후 담담하게 말했다.
“손을 쓰는 일이니 그 손을 잘 건사하도록 하시오. 곤장 열 대를 때린 후 자수방으로 보내라.”
조금 전과 정반대로 박복선은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지만, 강청서는 오히려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섭정왕부에 발을 들이면 좋은 일은 없구나. 하루에 열다섯 냥을 벌기가 쉽지 않네.’
그래도 전생보다는 나았다.
전생에서는 곤장을 맞고 난 후 피투성이가 된 채 냉원에 버려져 사흘을 굶어야 했다.
조 집사가 눈짓을 보내자, 강청서는 바닥에 엎드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쇤네… 대군마마의 너그러우심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굳어진 눈빛으로 그녀의 수척한 등을 쳐다보고 있던 이현익은 어쩐지 낯익은 느낌이 들었지만 급한 일이 있어서 더 이상 머물지 않고 서둘러 자리를 떴다.
…
형장으로 끌려갈 때 집행관이 강청서를 위로했다.
“그냥 형식적으로 칠 것이니 안심하시오.”
강청서는 이해하지 못했다.
‘곤장을 형식적으로 때린다고?’
아니나 다를까 고문용 의자에 엎드려 매를 맞기 시작했을 때 그저 약간 부어오르는 듯한 느낌이 든 것이 전부였다.
전생에서의 뼈에 금이 갈 정도로 아팠던 고통과 비교해 보고 나서야 비로소 형식이란 의미를 알 것 같았다.
곤장 소리가 요란했으나, 별로 아프지가 않아서 그녀는 고문용 의자에서 내려와도 평소처럼 걸을 수 있었다.
집행관은 형구를 정리하며 낮은 소리로 그녀를 위로했다.
“왕부로 잠시 일하러 온 그대를 가볍게 벌하라는 조 집사님의 분부가 있어서 형식적으로 친 것이오. 물론 하인들도 실수한다면 가볍게 때리곤 하지. 어찌 되었든 서로 돌봐야 이 바닥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걸 명심하시구려.”
웃으며 말한 뒤, 그는 뒤에 있던 합자에서 상처약 한 병을 꺼내 강청서에게 건넸다.
“이걸 등에 바르면 금방 나을 거요.”
강청서는 상처약을 받아 든 후에 무릎 꿇으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그녀가 고개를 숙였을 때의 눈썹 아래에 있던 서글픈 눈빛을 그 누구도 보지 못했다.
같은 사람, 같은 장소, 같은 형벌.
전생에서는 매번 피투성이가 되어 의식을 잃기 직전까지 가서 이경원이 집행관의 다리를 붙잡으며 애원했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오히려 집행관의 발길질을 당해 울던 이경원의 소리가 그녀의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다.
신분 때문에 운명을 바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왕부에 발을 들이기 전까지는… 누구나 다 양가녀가 아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