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화
황궁 북쪽에 자리 잡고 있던 섭정왕부, 구불구불한 복도를 조성하고 있던 누각들이 하늘을 가릴 정도로 웅장하게 솟아있었고, 정원에는 꽃향기가 가득했다.
박복선이 왕부 하인들에게 아첨하는 모습을 보니 그녀의 뒤를 따라가던 강청서는 이곳이 차가운 감옥처럼 느껴졌다.
경성의 장사꾼들 사이에서 존경받던 박복선도 이곳에서는 사람들의 비위를 맞춰주어야 했다.
“대감, 자수방은 어느 쪽에 있습니까? 저는 왕부 밖에 있는 옷 가게 주인입니다. 자수방에서 급히 사람을 구한다고 해서 자수공을 데리고 왔습니다만.”
…
박복선이 하인들과 이야기하는 사이, 복도 끝에서 갑자기 소란스럽게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대군마마께서 돌아오셨습니다.”
그 말에 조금 전까지 건방진 태도를 보였던 왕부의 하인들은 당황한 표정으로 강청서 일행을 재촉했다.
“어서 피하셔야 합니다! 어서요! 요즘 대군마마께서 기분이 좋지 않으셔서 그분의 심기를 건드리시면 아니 됩니다.”
강청서와 박복선은 급히 하인을 따라 복도 구석에 엎드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타박타박 걷는 발걸음 소리가 등만 내민 채 바닥에 엎드리고 있던 그녀의 귀에 들려왔다.
한 사람을 중심으로 한 일행이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걸음이 안정적이었던 그가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두꺼운 옷자락에 있던 자수가 펄럭이며 차가운 바람을 일으켰다.
그가 지나가는 곳마다 모든 이가 공포에 질려 감히 숨소리도 내지 못했다.
전생의 절망과 지금의 두려움이 느껴져서 바닥의 틈새를 꽉 움켜쥔 채 자기 심장 소리를 듣고 있던 강청서는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풀숲 사이에는 벌레와 개미가 기어다니고 있었는데, 그때 지렁이 한 마리가 그녀의 손가락을 타고 소매 속으로 파고들었다.
끈적끈적한 감촉은 그녀로 하여금 전생에 있었던 절망적인 밤을 떠올리게 했다.
…
이경원이 문을 지키는 마마의 심기를 건드렸을 때였다.
마마는 그를 혼내주기 위해 한밤중에 경성의 교외에서 독이 없는 뱀을 두 바구니에 가득 채워 가져왔다.
잠이 덜 깬 이경원이 방 안에서 기어다니던 뱀들을 보더니 울부짖으며 강청서의 품속으로 파고들었지만, 너무 놀란 나머지 기절하고 말았다.
그녀도 무서웠으나 이경원이 품에 있어서 두려운 기색을 표출할 수 없었다.
두려움과 무력함, 그리고 절망에 휩싸였으나 그녀는 몸을 휘감고 있던 뱀들을 떨쳐내고는 끈적끈적한 뱀의 몸통을 밟으며 겨우 방에서 빠져나왔다.
그 후로 살아있는 것이든 죽은 것이든 길쭉한 물체를 볼 때마다 그녀는 공포에 치를 떨었다.
…
식은땀이 이마를 타고 흘러내렸고, 아랫입술은 꽉 깨문 탓에 피투성이가 되어있었다.
소매 안의 미끈한 감촉으로 인해 그녀는 눈앞이 하얘졌지만, 강청서는 조금만 더 참자고 다짐했다.
지렁이가 옷자락을 타고 명치까지 올라오고 이현익의 발이 다음 누각으로 들어서던 순간, 그녀는 질식할 것 같은 공포를 참지 못하고 비명을 지르더니 가슴 속에 있던 지렁이를 내던졌다.
그러고는 두 눈을 꼭 감고 차가운 바닥에 엎드린 채 마음의 준비를 했다.
‘이제 끝났구나. 곤장에 맞아 죽는 것인가? 하나 오라버니만은… 오라버니한테만은 피해가 가지 말아야 할 텐데…’
…
그녀의 예상대로 이현익이 발걸음을 멈추자, 쥐 죽은 듯이 고요하던 복도는 더욱 고요해져서 숨 쉬는 것조차 그녀는 죄처럼 느껴졌다.
이현익은 몸을 약간 돌리고 나서 온기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눈빛으로 강청서를 흘끗 쏘아보았다.
등골이 오싹했던 강청서가 입을 열기도 전에, 옆에 있던 집사가 호통쳤다.
“어느 소속의 계집년인지 바른대로 고하지 못할까! 어딜 감히 숨으려고! 고개를 썩 들지 못하겠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