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객잔을 뛰쳐나왔을 때, 익숙한 가마가 강청서의 눈에 들어왔다.
여섯 필의 준마가 끌고 있던 금으로 장식된 화려한 가마는 비단으로 수를 놓은 듯했고, 열두 명의 금란위가 호위하고 있었다.
신하들의 마차는 선무문 밖에서 멈춰야 했지만, 섭정왕 이현익의 마차는 금란전까지 진입할 수 있었다.
태어나자마자 등극한 황제는 이제 겨우 열두 살에 불과하여 섭정왕 이현익이 황제를 대신하여 섭정하였다.
강청서가 의장대 쪽으로 뛰어 들어가려 했으나 접근하기도 전에 등을 한 대 얻어맞고 말았다.
그리고 다음 순간, 살의가 담긴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건 대군마마의 가마이니 가까이 다가온다면 네 목을 치겠다.”
강청서는 등에서 전해지는 고통을 참으며 간신히 고개를 들었다.
“저… 대군마마께 할 말이 있습니다.”
몽둥이를 들고 있던 금란위가 차갑게 웃으며 비아냥거렸다.
“대군께서 너 따위 년을 만나줄 것 같으냐?”
‘또 이 군림하는 자세와 경멸 어린 말투네. 전생에 왕부의 뒤채에 있을 때 이런 말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는데.’
천한 계집 주제에 왕부에 들어왔다며 사람들은 그녀를 증오하였으나 그렇다고 죽일 수는 없다 보니 매일 학대를 일삼았던 것이었다.
두 주먹을 불끈 쥔 강청서의 눈썹 아래로 차가운 빛이 번뜩였다.
섭정왕부에서 지냈을 때 사랑과 증오, 그리고 고통과 절망은 모두 이경원의 무덤 속에 묻혀버렸다.
‘나는 정정당당하게 따지러 온 것이야. 아무 잘못도 없는데 두려워할 것이 없지 않은가?’
눈빛이 점차 단호해진 그녀는 이번 생에는 다른 길을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녀는 품 안에서 옥패를 꺼내 금란위에게 건넸다.
“대군마마 생명의 은인이 누구인지 알고 있습니다.”
금란위는 옥패를 걷어차려 하다가 갑자기 무슨 생각이 났는지 동작을 멈췄다.
‘최근 몇 년간 대군은 확실히 어렸을 적에 자신을 구해준 은인에게 준 옥패를 찾고 있지 않았던가? 하나 대군의 명성이 높아지니 수많은 사람들이 불순한 마음을 품고 각양각색의 옥패를 들고 찾아왔지. 평소라면 이런 사기꾼들은 모조리 죽였겠지만 지나치게 살생하면 생명의 은인을 찾지 못할 것 같아서 대군께서는 자비를 베풀었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옥패를 섭정왕부에 가져오면 예를 갖추어 대접하면서 말이야.’
강청서를 뚫어지게 쏘아보며 금란위가 차갑게 말했다.
“네가 내뱉은 말에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
금과 옥으로 장식된 넓은 가마 안.
이현익은 침향을 맡으며 찌푸렸던 눈살을 서서히 폈었다.
금란위가 옥패를 들고 들어오는 것을 무심코 흘끗 쳐다본 순간, 그의 얼굴빛이 변했다.
“이자가 지금 어디에 있느냐?”
…
마차 가까이에 다가왔을 때 전에 들어본 적이 없던 온화한 목소리가 강청서의 귓가에 들려왔다.
“고개를 들라.”
‘하!’
그것은 전생에서 이현익을 딱 한 번 보았던 이경원이 유일하게 들었던 말이기도 했다.
그 순간, 그녀는 마음이 쓰라려 눈물을 흘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지만 어째서인지 눈물은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어느 겨울, 그녀는 하인들에게 괴롭힘을 당해 빨래방에서 쫓겨났다.
빨래하지 않으면 자신과 이경원이 쫄쫄 굶어야 해서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왕부 뒤채에 있는 얼어붙은 호수로 가서 얼음을 깨고 물을 길어다 동상 걸린 손으로 빨래했다.
어려서 철이 없었던 이경원이 호숫가에서 놀다 산책 나온 이현익과 부딪치자, 이현익이 차가운 눈빛으로 내려다보며 말했다.
“고개를 들라.”
자신과 닮은 이경원을 보고 화가 난 이현익은 그를 한 발짝도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했다.
그래서인지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이경원은 폐병에 걸렸다.
한밤중에 자주 기침하다가 깨어나서는 그녀의 소매를 잡아당기며 묻곤 했었다.
“어머니, 아버지는 원이가 못생겨서 싫어하시나요?”
…
하나둘씩 되살아난 과거의 기억들이 그녀의 가슴을 찢어놓았다.
눈물을 삼킨 후, 강청서는 고개를 들어 이현익을 쳐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