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7화
그날 밤.
청색 도포를 입은 내시가 혼인을 알리는 성지를 품고 장춘부원군 댁 대문 앞에 도착했다.
문지기는 금빛 비단에 싸인 성지를 보자 그 앞을 막을 엄두조차 내지 못한 채 황급히 대문을 활짝 열어 궁중의 내시를 안으로 들이며 잠든 본채 식구들을 다급히 깨워 불러 모았다.
순식간에 등불이 하나둘 켜졌고 각기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어르신 박순영을 비롯하여 아이인 민하에 이르기까지 향이 반도 타지 않아 모두 본채로 모여들었다.
본채는 등불로 환히 밝아졌다.
모두가 숨죽인 가운데 청색 도포 차림의 내시는 성지를 펼쳐 들고 또렷하고 힘찬 목소리로 낭독하기 시작했다.
“봉천승운, 전하의 조서이시니라. 장춘부원군 댁이 잘 가르친 덕에 여식이 단정하고 순하여...”
사람들 뒤에서 무릎 꿇고 있던 김민서의 눈빛에 뿌듯함이 서렸다.
‘역시 어머니의 말씀대로 전하께서 나를 섭정왕부로 시집보내려고 하시는 거구나.’
비록 성지엔 단지 김씨 가문의 아씨라 되어 있으나 그중에서도 장녀인 자신이 아직 시집가지 않았으니 다른 아랫동생들이 감히 먼저 시집갈 수는 없을 터였다.
“특명으로 김씨 가문 김연희 아씨를 섭정왕의 측실로 책봉하며 석 달 후 태묘에서 혼례를 치를지니라...”
미소를 짓고 있던 김민서는 얼굴이 굳어져서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옆자리에 앉은 김연희를 바라보았다.
‘저 천한 계집이, 어찌 그럴 수가!’
김민서는 벌떡 일어나 날 선 목소리로 외쳤다.
“내관 나으리, 잘 좀 보시지요! 혹 이름을 잘못 읽으신 것이 아니 아닌지요?”
“제가 바로 장춘부원군 댁의 적장녀 김민서이올시다!”
내시는 코웃음을 치며 귀찮다는 듯 말했다.
“전하께서 친히 붓을 들어 쓰신 성지이온데, 어찌 하잘것없는 소인이 이를 잘못 읽었겠습니까? 이미 성지가 내려졌고 혼사가 정해졌으니 아씨께선 공연히 경망한 언행으로 후부의 체통을 깎는 일이 없도록 하시지요.”
김 대감 또한 노하여 그녀를 노려보며 꾸짖었다.
“입 다물 거라!”
“어딜 감히 함부로 언성을 높이느냐! 사리를 분간치 못하고 경거망동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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