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fic
더 많은 컨텐츠를 읽으려면 웹픽 앱을 여세요.
비운의 그녀비운의 그녀
에:: Webfic

제7화

강희천이 이리 말하지 않아도 강청서는 이현익과 거리를 둘 생각이었다. 다음 날 해가 뜨자, 이들은 성남 운하 근처에 있는 방을 구했다. 평소라면 달포에 세 냥이면 충분했지만, 향시가 다가온 탓에 물가가 치솟아 집주인 부부는 다섯 냥을 요구했다. 그것도 강희천이 진사 신분이라는 점을 감안한 가격이었다. 오랜 흥정 끝에 반 냥을 더 깎아내긴 했으나 이들 남매는 시세가 이렇다는 걸 알기에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방을 정리한 후, 강청서는 남은 열 냥의 은자를 바라보며 걱정에 휩싸였다. ‘이 정도로 향시 볼 때 필요한 시권을 살 수 없는 것은 물론 우리 남매가 경성에서 생활하기도 턱없이 부족하잖아.’ 은자를 꽉 쥔 채 눈살 찌푸린 그녀를 강희천이 웃으며 위로했다. “은자 걱정이라면 하지 않아도 된다. 내가 책을 몇 권 더 베껴 쓰면 되니까.” 책 한 권을 베끼면 은자 석 냥을 받을 수 있어서 글을 잘 쓰는 그로서는 불행 중 다행이 아닐 수 없었다. “아니 될 말!” 은자를 움켜쥐고 있던 강청서가 그를 노려보았다. “향시가 코앞이니 오라버니는 이런 일에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시면 아니 됩니다. 은자는 내가 어떻게든 마련해 볼 테니 오라버니는 향시 준비에 매진하세요.” 말을 마치고 그녀는 은자를 품에 안은 채 문을 박차고 나갔다.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강희천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오늘은 밤을 새워서라도 책 2권은 베껴야겠구나.’ … 강청서는 저잣거리로 나갔다. 경성은 오랜 평화가 이어진 데다 운하가 남북으로 갈라져서 매우 번화했다. 남쪽에는 주막과 객잔들이 있었고, 북쪽에는 책방과 자수방이 늘어서 있었다. 다리를 건너 북쪽으로 가보자, 3층 높이의 화려한 자수방 앞에 걸려 있는 간판이 강청서의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열 명이 넘는 아낙네들이 간판을 둘러싼 채 수군거리고 있었다. “양면자수는 소항지역에서 전해져 내려오던 비법이 아닌가요? 그런 사람을 어찌 구한단 말입니까?” “저기 쓰여 있지 않습니까. 조금만 알아도 된다고. 수 놓을 줄 아는 사부님이 계신다네요.” “하루에 열 냥을 준다고? 장난 아니네. 역시 방화각답게 통이 크구먼.” 방화각은 경성 최대의 옷 가게로, 옷감 종류가 다양하고 공예가 뛰어난 만큼 가격 또한 가장 비쌌다. 사람들 속을 헤집고 간판 앞으로 다가간 강청서는 모집 공고를 보고 마음이 설렜다. ‘하루에 열 냥이면 한 달에 삼백 냥이야. 이 정도 은자면 당분간은 생활고에 시달릴 필요가 없는데.’ 게다가 전생에 왕부에 있을 때 그녀는 우연찮게 구한 손수건을 연구하여 수놓은 경험도 있어서 다행이었지만 방화각이 섭정왕부의 산업이라서 그녀는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붉은색 요염한 옷을 입은 방화각의 주인인 박복선이 엉덩이를 흔들며 걸어 나오더니 간판의 종이를 떼어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구경꾼들이 그녀를 막아 나서며 물었다. “박 주인장님, 왜 떼어내는 겁니까? 사람을 벌써 구하셨습니까?” 박복선이 허리에 손을 얹으며 눈꼬리를 치켜올렸다. “그러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위에서는 세 명을 원하지만, 열흘째 붙여놓았는데도 이제 겨우 한 명 구했습니다. 아무래도 강남으로 직접 가서 구해야 할 듯싶군요.” 그녀가 말을 마치고 돌아서려는 순간, 강청서가 심호흡을 한 번 하고는 앞으로 나아가 떨리는 목소리로 불렀다. “주인장님, 제가 한번 도전해 보겠습니다.” … 한 시진 후, 박복선은 손에 든 손수건을 바라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손수건의 앞면에는 마치 살아 숨 쉬는 듯한 채색 나비 두 마리가, 뒷면에는 물 위를 노니는 원앙새가 수놓아져 있었다. 바느질이 안정적이고 구상이 독특했다. “참으로 훌륭하시구려.” 박복선은 손수건을 집어넣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얼굴도 이쁘장하고 솜씨도 뛰어나군. 집에 가서 짐을 싸고 내일 함께 섭정왕부로 갑시다.”

© Webfic, 판권 소유

DIANZHONG TECHNOLOGY SINGAPORE PTE. LT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