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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박태형은 냉정한 목소리로 말을 마치자마자 뒤돌아섰다. 강지영은 발소리가 멀어질 때까지 기다리고서야 벽을 짚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 후 사흘 동안, 강지영은 방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않았다. 식사가 들어오면 몇 숟갈만 뜨고 창밖으로 햇살이 쏟아져도 커튼을 걷지 않았다. 이제 더 이상 배시우에게 자신을 끌어들일 구실조차 주지 않으려 했다. 다행히도 박태형은 약속을 지켰다. 사흘 내내 배시우 곁에 머물며 단 한 번도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강지영은 뉴스 속 연예면을 통해 그들의 모습을 보았다. 배시우는 그와 팔짱을 낀 채 환하게 웃고 있었고 박태형은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한없이 부드러운 눈빛을 보냈다. 결혼식 전날, 강지영은 테이블 앞에 앉아 한 자 한 자 정성스레 적어 내려갔다. [고수 싫어함, 매운 음식 금지. 커피는 무조건 아메리카노, 설탕은 넣지 말 것. 셔츠는 다림질 필수. 잘 때 조금의 불빛도 용납 못 함...] 그녀는 메모지를 곱게 접은 뒤 가정부를 불렀다. “이걸 부탁할게요.” 강지영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결혼식 끝나고 나한테 다시 줘요.” 가정부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사모님, 이게 뭐예요?” “혹시 내가 잊을까 봐요.” 강지영은 조용히 웃었다. “알잖아요, 나 요즘 건망증이 심한 거.” 가정부는 의아해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 마세요. 잘 간직하고 있을게요.” 가정부가 나가자 강지영은 옷장 깊숙한 곳에서 미리 싸둔 캐리어를 꺼냈다. 그녀는 3년 동안 머물렀던 방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시선이 벽에 걸린 웨딩사진 위에서 멈췄다. 사진 속 박태형은 단정한 슈트 차림으로 눈부시게 잘생겼고 그 옆에 값비싼 웨딩드레스를 입은 강지영은 온화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강지영은 조심스레 액자를 내려 테이블 위에 엎어두고 아무 말 없이 방을 나섰다. 공항 대기실에는 임우희가 이미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강지영에게 카드와 비행기표를 한 장씩 내밀었다. “60억, 약속대로다. 오늘부로 넌 강씨 가문과 아무 상관 없는 사람이다.” 카드를 받는 강지영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어머니를 바라봤지만 임우희는 단 한 번도 그녀와 눈을 마주치려 하지 않았다. “감사합니다.” 강지영이 낮은 목소리로 인사를 건네자 임우희는 냉정하게 말했다. “지난 3년 동안 잘 버텼어. 두 집안의 협력에 문제 하나 없었지.” 그녀는 흠칫하더니 말을 덧붙였다. “이제 가. 네가 원하는 삶을 살아.” 강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뒤돌아 보안검색장으로 향했다. 들어가기 전, 그녀는 마지막으로 뒤를 돌아봤지만 임우희는 이미 떠난 뒤였다. 그 뒷모습에는 단 한 점의 미련도 없었다. 강지영이라는 딸이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그래도 강지영은 그렇게 속상하지 않았다. 비행기표를 꼭 쥐며 차오르는 눈물을 꾹 참았다. 이번에는 그 누구를 위해서도 아닌 자신을 위해 살아갈 것이다. 강지영은 고개를 들고 발걸음을 옮겼다. 단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았다. 그리고 같은 시각. 박씨 가문 저택 안에서는 강지영과 똑같이 생긴 한 여자가 웨딩드레스를 입은 채 내일 있을 결혼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강지윤이 돌아온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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