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화
“꺅!”
안신혜는 사색이 된 채 별안간 들리는 소리에 깜짝 놀라 뒷걸음질 쳤다.
당황한 나머지 의자에 부딪히면서 그대로 중심을 잃고 뒤로 넘어졌다.
순간, 커다란 손이 불쑥 나타나 그녀의 허리를 단단히 붙잡더니 넓은 품으로 끌어당겼다.
콧대가 가슴에 정통으로 부딪히자 코끝이 찡했다.
이때 머리 위 센서 등이 켜졌다.
“윽!”
코를 감싸 쥐고 고개를 들자마자 마주친 건 어두운 눈동자 속에 고스란히 비친 자기 모습이었다.
강준혁의 날렵한 입술이 일자로 닫혀 있었다.
마치 중생을 내려다보는 신처럼 눈을 내리깐 채 안신혜를 바라보며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그는 또다시 익숙한 그 향기를 느꼈다.
은근히 퍼지는 달콤하고 포근한 냄새.
조금 전 스쳐 지나갈 때보다 훨씬 더 강렬했다. 또한, 그의 마음 깊은 곳에 거센 파도를 일으키며 기억 속 가장 은밀한 곳을 건드렸다.
그녀의 숨결이 왜 이렇게 익숙한 거지?
강준혁의 짙은 눈썹이 꿈틀했다. 곧이어 허리를 감싸고 있던 손에 무의식적으로 더 힘을 주었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안신혜는 그제야 눈앞의 상황을 제대로 인식했다.
셔츠 단추를 완전히 풀어 헤친 남자는 식탁에 느긋하게 기대어 있었다.
낮에 보았던 절제되고 쌀쌀맞은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묘하게 위험한 분위기를 풍겨 괜히 등골이 오싹했다.
근육질 몸매는 잡지 표지 모델을 연상케 했고, 허리까지 이어지는 치골 라인은 가히 치명적이다.
강렬한 수컷 향기가 그녀를 덮쳤다.
안신혜의 시선은 남자의 몸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러고는 문득 방금 만졌던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민망해진 그녀는 귓불까지 빨개졌고 어떻게든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이거 놔요.”
강준혁은 눈을 가늘게 떴다. 하지만 놓아주기는커녕 오히려 허리를 더 세게 조여 안신혜를 품으로 끌어당겨 완전히 가둬버렸다.
이내 허리를 숙여 바짝 다가갔다. 그녀의 몸에서 풍기는 익숙한 향기에 사로잡혀 어찌 된 영문인지 알고 싶었다.
두 사람은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에 있었다.
안신혜는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양손으로 후끈거리는 남자의 가슴을 밀어냈고 목소리마저 떨렸다.
“뭐... 뭐 하는 거예요? 가까이 오지 마요!”
강준혁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예쁘장한 얼굴을 내려다보며 무심하게 입을 열었다.
“왜? 처음부터 당신이 먼저 안긴 거 아니었어?”
안신혜는 눈살을 찌푸리더니 횡설수설 변명했다.
“불도 안 켜고 숨어 있을 줄 누가 알았겠어요? 그냥 실수로 만졌을 뿐이에요. 그러니까 얼른 놔줘요.”
자세가 너무 야릇했다.
안신혜는 왠지 모르게 불안감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강준혁의 눈썹이 까딱했다. 누가 봐도 그런 해명 따위 믿지 않는 눈치였다.
복부와 가슴을 만지던 손길은 실수라기보다 의도적으로 유혹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강준혁은 안신혜의 잘록한 허리를 끌어안으며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이게 네가 준비한 밀당 작전이야?”
오늘 밤 그가 도착했을 때 입고 있던 잠옷부터 시작해서 한밤중에 인기척을 엿듣고 몰래 따라 나와 품에 안긴 것까지.
이런 얕은 계략과 술수는 수없이 봐왔다.
지난 5년 동안 얼마나 많은 여자가 비슷한 방식으로 그에게 접근하려 했는가.
결코 참신한 수법은 아니었다.
안신혜는 어리둥절했다. 당최 무슨 얘기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밀당이요? 지금 무슨 말 하는 거예요?”
강준혁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이 여자, 계속 모르는 척할 셈인가?
결국 짜증이 나서 안신혜의 허리에서 손을 떼었다.
“충고 하나 하지. 괜히 잔머리 굴리지 마. 오늘 밤 여기 머무는 이유는 단지 내 딸이 당신을 좋아해서야. 그러니까 그런 유치한 수작은 집어치워. 난 당신이 연예계에서 쉽게 꼬실 수 있는 그런 남자가 아니거든.”
그녀가 차주한과 지저분한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는 얘기는 이미 전해 들었다.
심지어 해외에도 스폰서가 여럿이 된다는 소문도 무성했다.
강준혁은 남자에게 빌붙어 여기저기 들이대는 여자에게는 1도 관심 없었다.
안신혜의 눈이 살짝 커졌다.
그제야 강준혁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밑도 끝도 없이 비하하고 모욕하는 남자 때문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이내 넓은 가슴을 세게 밀치며 씩씩거렸다.
“강준혁 씨, 자아도취가 너무 심한 거 아니에요? 제가 왜 당신을 유혹해요? 착각 좀 그만하시죠?”
그리고 강준혁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콧방귀를 뀌었다.
“설령 스폰서가 필요하다고 해도 절대 당신 같은 사람은 고르지 않을 거예요. 제 스타일 아니라서!”
말을 마치고 도도하게 뒤돌아서 방으로 들어가려 했다.
이때, 가느다란 손목이 커다란 손에 붙잡혔고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몸이 확 끌려갔다.
강준혁은 그녀를 벽 쪽으로 거칠게 몰아세웠다.
이내 크고 단단한 몸집이 바짝 밀착되었다.
눈빛은 싸늘하기 그지없었고, 목소리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나 같은 사람이라...”
비아냥거리는 표정과 경멸 어린 말투에 그는 자존심이 제대로 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