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화
순식간에 묘하게 뒤틀린 분위기와 코앞에서 느껴지는 강준혁의 숨결에 불안해진 안신혜는 잡힌 손목을 잡아빼려 버둥대며 말했다.
“이거 좀 놓으시죠!”
강준혁은 어두운 눈빛으로 그녀의 붉은 입술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했다.
“아까 했던 말, 다시 한번 해 봐.”
안신혜는 고개를 돌려 강준혁이 내뿜고 있는 뜨거운 숨결을 피하며 냉랭하게 코웃음을 쳤다.
“왜요? 제대로 못 들으셨어요? 그러면 다시 한번 말해줄게요. 강준혁 씨, 자신감이 너무 지나치다고요. 모든 여자가 다 당신을 좋아하는 줄 아나 본데, 전 조금도 관심 없...”
안신혜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강준혁은 그녀의 턱을 움켜쥐더니 자기 입술을 그녀의 입술에 가져다 댔다.
“읍!”
갑작스러운 키스에 깜짝 놀란 안신혜는 저항하는 것도 잊은 채 멍하니 그를 받아들였다.
차가운 그의 향기가 입안 깊숙이 파고들었다.
강준혁은 일방적으로 그녀의 입술을 탐했고 노골적으로 자신의 분노를 담아내며 그녀가 감히 저항할 여지도 주지 않았다.
왠지 모르게 빨리 뛰는 심장에 안신혜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려왔다.
안신혜는 어쩐지 아주 오래전 강준혁과 이런 접촉을 한 적이 있는 것처럼 이 남자의 향기와 키스의 느낌이 익숙하게 느껴졌다.
‘뭐지? 왜 이렇게 익숙한 느낌이 드는 거지?’
갑작스럽게 느껴지는 익숙한 상황에 안신혜는 벼락이라도 맞은 듯 머리가 멍해졌다.
거칠던 강준혁의 호흡은 점점 가라앉았고 그녀의 허리를 잡은 큰손은 점점 더 뜨거워졌다.
벌을 주기 위해 시작했던 키스였지만, 그는 오히려 점점 더 빠져들고 있었다.
이성을 잃기 직전 강준혁은 미친 듯이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억누른 채 그녀의 붉고 매혹적인 입술에서 떨어졌다.
안신혜는 여전히 멍하니 그를 바라보며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녀의 반응에 흐뭇해진 강준혁은 방금 구겨졌던 자존심을 되찾기라도 한 듯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그녀의 아랫입술을 문지르며 승리의 표정을 지은 채 그녀를 조롱했다.
“왜 이렇게 빠져든 거지? 네가 말한 관심이 없다는 게 이런 거였어?”
그제야 정신을 차린 안신혜는 강준혁의 가슴을 힘껏 밀어내 그의 품에서 벗어났다.
예쁘장하기만 하던 그녀의 얼굴은 분노로 인해 붉어져 있었다.
“전혀 아니거든요!”
당황해진 안신혜는 다급하게 부정한 뒤 몸을 돌려 도망치듯 방으로 걸어갔다.
눈을 가늘게 뜬 채 허둥지둥 도망치는 안신혜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강준혁은 알 듯 말 듯한 미소를 지었다.
...
다음 날 아침 안신혜가 강아름의 손을 잡고 침실에서 나오자, 그녀를 반나절 잠 못 이루게 한 장본인이 아이보리색으로 되어 있는 식탁에 마주 앉아 재정 일간지를 보고 있었다.
짙은 색 정장 차림에 허리를 곧게 펴고 앉아 있는 그의 넓은 어깨와 등에서는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의 존귀함이 배어 나왔고, 차분하면서도 강인하며 절제적인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아빠!”
강아름의 귀여운 목소리에 강준혁은 이내 들고 있던 신문을 내려놓고 고개를 돌렸다.
잠깐 안신혜를 스치듯 바라보던 그의 눈빛은 약간 복잡하고 미묘해 보였다.
순간, 어젯밤 강제로 키스를 당했던 일이 떠오른 안신혜는 화가 치밀어 시선을 홱 돌렸다.
강준혁은 모른 척 피식 웃더니 이내 강아름을 향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깼어?”
강아름은 짧은 다리로 달려가 강준혁의 다리를 잡으며 말했다.
“네. 아빠, 아름이 너무 잘 잤어요.”
“그래.”
강준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아이를 안아 올렸다.
사실 어젯밤 강준혁 역시 오랜만에 깊게 잠들 수 있었다.
안신혜와 키스를 나눈 뒤, 그녀 몸에서 퍼지는 은은한 향기가 코끝에 맴돌아 매우 드물게 밤새 편안한 잠을 잤다.
안신혜는 일부러 강준혁을 무시하고 식탁 대각선에 자리를 잡았다.
이때, 송하영한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안신혜가 통화 버튼을 누르자, 전화기 너머에서 송하영의 초조하면서도 분노가 섞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신혜야, 안 좋은 소식이 있어. 네가 송씨 가문 어르신의 생신에 드리려고 귀국하기 전에 준비했던 그 주얼리 세트를 누군가 강제로 가로챘어.”
송하영의 말에 안신혜는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언제?”
“오늘 아침에 가지러 갔었는데 10분 전에 팔렸대. 누가 사간 건지 너는 상상도 못 할 거야.”
“누군데? 말해 봐.”
“안성 그룹의 아가씨 안재희. 그러고 보니 넌 줄곧 해외에서 활동해서 안재희가 누군지 잘 모르지?”
송하영의 말에 안신혜는 놀라운 기색 하나 없이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안재희? 나한테 잔인하기 그지없었던 내 의붓언니? 모를 리가 없지.’
송하영의 말과 반대로 안신혜는 안재희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