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화
안신혜는 노블 엔터테인먼트를 떠나 다른 촬영 일정을 소화하러 이동했고 모든 일을 마쳤을 때는 이미 늦은 저녁이었다.
송하영이 차로 그녀를 아파트까지 바래다주는 길에, 두 사람은 앞으로의 연예계 발전 계획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이때 안신혜의 핸드폰이 울렸고 전화를 걸어온 사람은 노블 엔터테인먼트의 고위층 인사였다.
발신 번호를 보던 안신혜가 송하영에게 물었다.
“[천궁]에 관련된 모든 일은 송승현이 직접 우리와 소통하기로 하지 않았어? 노블 엔터테인먼트의 권 대표가 왜 나한테 전화를 한 거지?”
송하영이 손을 내밀며 말했다.
“내가 받을게.”
안신혜가 핸드폰을 건네주자, 송하영은 바로 스피커폰을 눌렀다.
“여보세요. 권 대표님, 저 송하영입니다. 무슨 일이시죠?”
핸드폰 너머에서 중년 남성이 약간 어색해하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안신혜 씨 옆에 없어요? 지금 몇 가지 일을 그분과 상의하고 싶은데요.”
서로를 마주 보던 송하영과 안신혜는 권 대표의 말투에서 이상함을 느꼈다,
“신혜는 지금 전화 받기가 불편합니다. 권 대표님, 하실 말씀이 있으면 저에게 해주셔도 됩니다.”
송하영의 말에 그제야 권도준은 헛기침을 두어 번 한 뒤 말하기 난감하다는 태도로 입을 열었다.
“에헴, 그게 말이죠... 저도 송승현이 이미 안신혜 씨를 이번 새 영화의 여주인공으로 정한 것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후에 회사 내부에서 논의를 거친 후, 저희는 안신혜 씨가 이 역할에 별로 어울리지 않는다고 판단했고 다른 여배우를 주인공으로 결정하기로 했어요. 아쉽게도 이번 영화는 안신혜 씨와 인연이 없을 것 같네요.”
갑작스러운 변고에 송하영은 즉시 얼굴빛이 어두워졌고 안신혜도 의아한 마음이 들었다.
늘 직설적이었던 송하영은 즉시 어두운 목소리로 말했다.
“애당초 노블 엔터테인먼트에서 송승현을 보내 신혜에게 출연을 요청했었잖아요. 그런데 이제 와서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율로 여주인공을 교체했다고요? 권 대표님, 이런 이유라면 저희가 이해를 못 하죠.”
권도준은 송하영의 불쾌한 마음을 알아차리고는 멋쩍게 웃으며 사과했다.
“정말 죄송해요. 하지만 저희도 언젠가는 안신혜 씨와 함께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어요.”
송하영은 냉랭하게 말했다,
“권 대표님, 신혜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는 이해할 수 없어요. 최소한 제대로 된 이유는 알려주셔야죠.”
송하영의 완강한 태도에 권도준은 잠시 침묵하더니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송하영 씨와 송승현의 사이도 있으니 숨길 필요는 없을 것 같네요. 사실 저희도 이 영화의 여주인공이 안신혜 씨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하지만 어떤 압력 때문에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게 되었고, 또 감히 함께 할 수도 없게 되었네요.”
압력이라는 말에 안신혜는 눈살을 찌푸렸다.
송하영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대체 누가 감히 노블 엔터테인먼트에 압력을 가할 수 있다는 거예요?”
권도준은 조심스러운 태도로 말했다.
“강산 그룹이라고 송하영 씨도 들어보셨을 거예요. 오늘 오후 강씨 가문의 둘째인 강준혁의 비서 양진성이 직접 전화를 걸어 여주인공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라고 지시했어요. 송하영 씨, 강산 그룹은 저희가 감히 건드릴 수 없는 그룹이에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이런 결정을 내리게 되었네요. 정말 미안해요.”
‘강산 그룹? 강씨 가문 둘째 강준혁?’
당혹스러운 마음에 안신혜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녀의 여주인공을 빼앗은 사람이 강준혁이라니.
오후에 금방 송승현한테서 강씨 가문에 대해 전해 들었는데, 실제로 이렇게 엮일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송하영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권도준이 말을 이었다.
“어느 누가 글쎄 이 영화에 강씨 가문 둘째 도련님이 끼어들 거라고 예상했겠어요.”
송하영은 감정을 가라앉히고 차분하게 물었다.
“그러면 여주인공을 누구로 바꿨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송하영 씨도 아는 사람이에요. 아까도 만났던 안성 그룹의 안재희예요.”
“네? 뭐라고요!”
송하영은 놀라서 목소리가 살짝 높아졌다.
안재희라는 이름에 어깨에 힘이 들어갈 정도로 안신혜는 두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늘 밝기만 하던 그녀의 맑은 눈동자 깊은 곳에 미세하게 차가운 빛이 스쳐 지나갔다.
안신혜는 강준혁과 안재희가 어떻게 연락이 닿은 건지 의문스러웠다.
‘강준혁이 안재희를 위해 나서줬다는 건 아마도 둘의 관계가 얕지 않다는 뜻이겠지.’
참았던 분노가 치밀어 오른 안신혜는 가슴속에 불길이 이는 것 같았다.
안재희는 그녀에게 골수에 사무칠 만큼 미운 원수였고, 그렇다면 안재희의 편에 선 강준혁 역시 자연스럽게 그녀의 적이 되어 버린 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