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5년 후, 그랑제 호텔.
“신혜야, 스타 엔터의 차주한이 널 향한 마음은 진심인가 봐. 네가 귀국한 지 하루 만에 벌써 직원을 보내왔더라. 400억을 제시하면서 계약하고 싶다고, 스타의 간판 배우로 밀어줄 생각이래.”
매니저 송하영이 안신혜의 귀에 대고 승승장구 중인 엔터테인먼트 회사 ‘스타’와 대표인 차주한에 대해 칭찬을 늘어놓았다.
“영화제에서 처음 보고 반해버렸다잖아. 언론 앞에서도 네 연기를 극찬했지. 그런 사람도 너한테 푹 빠졌으니, 진짜 대견하네. 국내외 가릴 것 없이 인기 대폭발이군. 내일 밤 파티에 널 초대했다던데, 고민 좀 해봐.”
안신혜는 그 말을 듣고도 무덤덤하게 반응했다. 입가에는 차가운 미소를 살짝 띠며 말했다.
“물론이지. 곰곰이 생각해볼게.”
매끈한 엘리베이터 거울 속에 한 여자의 얼굴이 비쳤다.
깨끗하고 매혹적인 이목구비, 흠잡을 데 없이 정교한 눈 코 입은 세련미를 물씬 풍겼다.
그녀는 더 이상 예전의 안신혜가 아니었다.
당시 성형 수술은 매우 성공적이었다.
얼마나 완벽했는지, 똑같은 이름을 사용하고도 이 세계적인 톱스타가 5년 전의 안신혜라고 의심하는 사람이 없었다.
다들 안씨 가문 딸이 이미 죽은 지 5년이 되었다고 믿었다.
안신혜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눈썹을 치켜올렸다. 눈빛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차주한, 안재희, 안성 그룹...
그녀가 돌아왔다.
...
띵.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안신혜는 송하영과 함께 걸어 나왔다.
“비켜!”
앞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급히 뛰어갔고 자칫 안신혜와 부딪칠 뻔했다.
정장 차림의 건장한 사내들은 온몸으로 날카롭고 살벌한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선두에 선 남자는 차가운 얼굴로 호통쳤다.
“현장을 봉쇄해! 그리고 흩어져서 찾아. 일대를 샅샅이 뒤져서 반드시 찾아내! 아니면 다 죽는 줄 알아.”
송하영은 서둘러 안신혜를 부축하며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무슨 일이 터진 건가?”
안신혜는 무심하게 대답했다.
“어차피 우리랑 상관없어. 가자.”
송하영은 호텔 정문 쪽을 바라보았다.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 있어 시끌벅적했다.
“어? 밖이 왜 이렇게 어수선하지? 기자들이나 팬들이 모인 거 아냐? 네 귀국 소식이 새 나간 건가? 내가 먼저 가서 상황 좀 볼게.”
안신혜가 말했다.
“운전기사한테 호텔 뒷문으로 차 돌리라고 해. 난 비상구 쪽에서 기다릴게.”
송하영은 급히 상황을 확인하러 나갔다.
호텔 복도는 금세 조용해졌다.
외투를 여며 입고 막 발걸음을 떼려던 순간, 호텔의 커다란 화분 뒤편에서 무언가 꿈틀거리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우뚝 멈추고 경계심 가득한 목소리로 외쳤다.
“거기 누구야!”
자그마한 그림자가 움찔하더니 뒤로 바짝 숨었고 흐느끼는 소리가 들릴 듯말 듯 했다.
안신혜는 의아한 마음에 조심조심 화분 뒤로 걸어갔다.
그리고 뜻밖의 광경을 보게 되었다. 한 여자아이가 바닥에 앉아 무릎을 끌어안고 있었다.
안신혜는 어리둥절했다.
“꼬마야, 왜 혼자 여기 숨어 있니?”
아이는 낯선 목소리에 놀란 듯 훌쩍이며 고개를 들었다.
네댓 살쯤 되어 보이는 꼬마는 커다란 눈에 인형처럼 사랑스러운 외모를 가졌다.
얼굴은 눈물로 범벅이 되었고, 입술을 삐죽이며 울먹거렸다. 온몸은 더럽고 초라해 보였으며 무언가 큰 상처를 받은 듯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애처롭고 가엾던지...
쿵!
안신혜의 시선이 아이로 향하는 순간, 마음 깊은 곳에서 무언가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듯한 충격과 함께 알 수 없는 날카로운 통증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머릿속으로는 5년 전 잃어버렸던 아기가 떠올랐다.
그 아이가 살아 있었다면 아마 눈앞의 꼬마처럼 자라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