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9화

안신혜가 귀국하기 전, 고준서는 그녀와 몇 차례 깊은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그는 애초에 안신혜가 해성으로 돌아오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녀가 하고 싶은 일이라면 무엇이든 대신해 줄 수 있었다. 복수와 잃어버린 모든 것을 되찾는 일도, 그리고 안씨 가문 사람들이 무릎 꿇고 빌게 만드는 일도 다 할 수 있었다. 고준서는 자기 곁에 늘 안신혜만 서 있다면 나머지는 다 처리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하지만 결국, 고준서는 그녀를 막아내지 못했다. 겉보기엔 작고 여린 몸이었지만 그녀는 결코 나약하거나 겁에 질린 사람이 아니었다. 이건 지난 5년 동안 대화를 하면서 누구보다도 잘 알게 된 사실이었다. 한 번 마음을 정하면 물러서는 법이 없는 안신혜, 그건 심지어 고준서조차 꺾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는 자유를 허락했고 대신 1년이라는 기한을 약속받았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자신의 손바닥 안에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지금, 고준서는 더 이상 확신할 수 없었다. 강씨 가문에 들어간 지 고작 며칠이지만 그는 알 수 없는 불안에 사로잡혔다. 마치 손아귀 속 모래가 서서히 빠져나가듯, 더 이상 안신혜를 붙잡을 수 없을 것만 같은 느낌이 초조함이 되어 그를 집어삼켰다. 고준서는 담배를 세게 빨아들이며 연기를 삼켰다. 진한 니코틴이 폐를 파고들자 거친 기침이 터져 나와 저도 모르게 미간이 찌푸려지고 입술이 떨렸다. 안신혜는 한숨을 내쉬며 고준서의 손에서 담배를 빼앗아 바닥에 던졌다. “그만 피워.” 고준서는 반사적으로 그녀의 손을 붙잡았고 별빛 같은 눈동자는 마치 빛을 잃은 우물처럼 깊고 어두웠다. 곧 불안함이 가득 담긴 목소리가 안신혜의 귓가에 낮게 울렸다. “신혜야, 나 후회돼.” 안신혜는 그 말에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고준서는 입을 꽉 다물고 있었지만 목소리는 어린아이가 우는 것처럼 덜덜 떨렸다. “널 돌아오게 둔 게 후회돼. 신혜야, 이제 그만하자. 강씨 가문에서 뭘 꾸미든, 다 나한테 맡겨.” 다른 남자의 곁에 머무는 것과 다른 가문의 이름을 쓰게 된 것, 모든 게 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