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화
이에 심유준이 고민 없이 고개를 내저었다.
“안돼! 이년 또 무슨 수작 부려서 널 괴롭히면 어떡해?”
그는 악의에 찬 눈길로 가정부를 째려봤다.
가정부가 심하윤과 짜고 쳐서 거짓말을 한 바람에 다인이랑 함께 여기까지 찾아왔으니까.
“아줌마 오늘부터 해고예요.”
가정부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이 인간 눈멀었어? 하윤 씨가 이마에 식은땀을 줄줄 흘리는데 안 보이냐고?’
이때 ‘마침’ 집사가 들어오며 또 ‘마침’ 심유준의 말을 듣고 가정부를 끌어냈다.
임다인은 금세 심유준을 바라보며 다정한 미소를 지었다.
“오빠, 여긴 나한테 맡겨. 언니랑 얘기 좀 나눌게.”
심유준은 당연히 그녀의 요구를 거절할 리 없었고 떠나기 전에 심하윤에게 잊지 않고 경고장을 날렸다.
“얌전히 있어! 다인이 괴롭히기만 하면 확 죽여버릴 거야.”
심유준이 나간 후 임다인의 얼굴에 띤 미소가 싹 사라지고 험상궂은 표정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비난 조로 쏘아붙였다.
“너랑 강우 무조건 이혼시킬 거야.”
심하윤은 그 순간 불길한 예감이 들었지만 임다인이 별말 없이 휴대폰으로 어디론가 메시지를 보냈다.
평소의 임다인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곧이어 그녀가 아무 말 없이 자리를 떠났다.
또 무슨 수작인 걸까?
심하윤은 너무 지친 나머지 눈을 질끈 감았다. 그저 배를 움켜쥐고 괴이한 정적에 빠져있었다.
임다인이 무슨 짓을 벌이든 절대 그 꾀에 넘어가면 안 된다.
다음날 이른 아침.
임다인이 덩치 큰 체구의 가정부들을 몇 명 데리고 다시 별장에 나타났다.
험상궂은 얼굴들을 바라보며 심하윤은 경계하는 눈빛으로 돌변했다.
“뭐 하는 짓이야?”
이때 임다인이 사악한 미소를 날리더니 카메라를 흔들어 보였다.
“그거야 당연히 너한테 이쁜 사진 몇 장 찍어주려고 그러지.”
말을 마친 그녀가 집사에게 곁눈질하자 집사가 눈치껏 자리를 떠났다.
심하윤은 또다시 임다인에게 쏘아붙였다.
“감히 찍기만 해봐. 약점 잡혀서 심씨 일가에 의심 살까 봐 두렵지도 않아? 지후 오빠는 누가 집안에 먹칠하는 거 절대 두고 보지만은 않을 텐데.”
“닥쳐!”
임다인이 날카롭게 쏘아붙이고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날렸다.
“넌 이제 곧 심씨 일가 사람이 아니야. 내가 그렇게 만들 거거든.”
그녀가 가정부에게 명령했다.
“다들 뭐 하고 있어? 당장 저년 옷 벗겨!”
옷까지 벗긴다고?
가정부들 중에 남자도 있었고 이에 심하윤은 멘탈이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임다인, 너 미쳤어?”
이건 단순히 사진 찍는 문제가 아니라 그녀의 인생을 망치는 노릇이었다.
한편 임다인은 아무렇지 않은 듯 어깨를 들썩였다.
“어머, 들켰네?”
맨 뒤에 있던 남자가 앞으로 다가오며 짜증 섞인 목소리로 재촉했다.
“임다인 씨, 이제 시작해도 되죠?”
곧이어 음흉한 눈빛으로 심하윤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많은 여자를 놀아봤지만 심하윤 같은 일품은 접해본 적이 없다. 게다가 도강우의 여자라니, 생각만 해도 짜릿했다.
임다인은 안달이 난 그 남자를 힐끗 째려봤다.
“대성아, 뭐가 그렇게 급해? 저년 이제 네 거야. 마음껏 놀아봐.”
그녀는 또다시 가정부들에게 심하윤의 옷을 벗기라고 지시했다.
“당신들 이거 범법행위야! 싹 다 신고해버리는 수가 있어!”
심하윤의 협박을 들으며 조대성이 허겁지겁 옷을 벗었다. 아예 그녀의 협박이 먹히지도 않은 모양이다.
한편 임다인은 거만하게 웃으며 쏘아붙였다.
“뭐, 신고? 네가 이딴 놈들한테 놀아난 걸 아빠가 알게 되면 어떨 것 같아? 아예 집 밖으로 내쫓을 텐데? 아니지, 그냥 널 죽여버릴 거야. 심하윤 씨, 오늘이 당신 기일이야. 그리고 이 사진들은...”
임다인이 또다시 사악한 미소를 날렸다.
그녀는 이 사진들을 SNS에 올려서 온 세상 사람들에게 심하윤이 얼마나 방탕한 년인지 알릴 계획이다.
그렇게 되면 도강우도 완전히 단념하겠지.
“빨리 옷 벗기라니까.”
그녀의 재촉에 가정부 두 명이 심하윤을 제압하고 조대성은 정면으로 겁탈할 수 있게 됐다.
임다인은 카메라 각도를 잡기 시작했다.
‘안돼, 이대로 당할 수만은 없어. 임다인한테 어떻게 능멸을 당할지 몰라.’
순간 심하윤의 눈가에 독기가 어렸다.
“이년 도망치지 못하게 꽉 붙잡아.”
어느새 임다인도 그녀의 속셈을 알아채고 가정부들에게 명령했다.
하지만 심하윤이 한 발 더 빨랐다.
그녀는 베란다를 뛰어넘고 임다인을 향해 처량한 미소를 지었다.
“넌 이미 많은 걸 가졌음에도 만족을 몰라. 다인아, 욕심이 과하면 조만간 천벌 받게 돼 있어.”
말을 마친 심하윤이 아래로 뛰어내렸다.
“으읍.”
2층에서 뛰어내리면 죽진 않겠지만 상처를 면할 순 없다.
심하윤은 힘겹게 땅을 짚고 일어나려 했으나 복통을 호소하며 눈앞이 캄캄해지더니 그대로 기절해버렸다.
‘내 아이!’
고통스럽게 배를 끌어안고 머리를 들자 인기척 소리에 집사가 달려 나왔다.
“집사님, 얼른 구급차 좀 불러주세요. 아이가...”
그녀는 말끝을 흐린 채 의식을 잃었다.
이에 집사가 놀라서 사색이 되었다.
심하윤의 바지가 피로 빨갛게 물들었다.
한편 2층 베란다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임다인도 식겁하여 뒷걸음질 쳤다.
“망했다. 이러다 사람 죽는 거 아니야?”
누군가가 구시렁대자 임다인이 고개를 홱 돌리고 날카롭게 째려봤다.
집어삼킬 듯한 그녀의 눈빛에 조대성이 겁을 먹고 몸을 벌벌 떨었다.
“다인 씨, 애초에 그냥 심하윤과 한번 자면 된다고 했지 다른 건 없었잖아요.”
“닥쳐!”
그녀가 일그러진 표정으로 뭇사람들을 흘겨봤다.
“저년은 오늘 혼자 뛰어내린 거고 너희들은 여기 온 적 없어. 뭔 말인지 알겠지?”
뭇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임다인은 재빨리 모두를 돌려보내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병원.
심하윤이 겨우 의식을 되찾고 눈을 뜨려고 하는데 귓가에 별안간 누군가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아빠, 쟤 우리 집안 망치려고 작정했어요. 이제 그만 이 집에서 내쫓아야 할 것 같아요. 계속 남겨뒀다가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니까요.”
이 목소리는...
그녀는 또다시 익숙한 고통에 빠져들었다.
이 목소리는 바로 심씨 일가 장남 심지후였다.
문득 누군가가 그녀의 이불을 걷었다.
“깬 거 알아. 연기 그만해.”
심유준이 퉁명스럽게 쏘아붙였다.
그녀는 속눈썹을 파르르 떨다가 눈을 떴다.
한없이 차분한 눈동자에 심유준은 찔린 듯 눈길을 피했다.
곧이어 그녀는 점잖게 생긴 심지후에게 시선을 옮겼다.
혐오에 찬 그의 눈빛을 바라보며 심하윤은 스스로가 너무 하찮아서 실소를 터트렸다.
“웃어? 천한 년이! 네 오빠가 고작 며칠 감금했다고 그새 발정 나서 남자 찾고 난리야?”
심하윤은 순간 사색이 되었다.
그녀는 겁에 질린 눈빛으로 심도운을 쳐다보며 하염없이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에요, 그런 거. 나 그런 짓 한 적 없어요. 다인이가 사람 데려와서...”
“시끄럽다! 변명할 생각 하지도 마. 우리 이미 진실을 다 알게 됐어. 네가 이번 일 들통날까 봐 다인이 베란다 밖으로 밀어 던지려다가 스스로 굴러떨어진 거 아니야?”
심도운이 재차 그녀의 말을 잘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