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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뭇사람들은 화들짝 놀라서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보았는데 구석에서 수수한 옷차림의 여자가 카드를 들고 있었다. “누구지?” “처음 보는 얼굴인데?” 다들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조롱, 경멸, 무시로 가득 찬 눈빛, 또 대부분은 구경거리로 여기고 있었다. 심하윤이 돈만 많은 멍청이라 좋고 나쁨도 구분할 줄 모른다고 생각하는 듯싶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런 것들을 전혀 개의치 않았다. 컬렉터는 물건의 가치뿐만 아니라 그 속에 담긴 의미도 중요하게 생각하니까. 이 깨진 유리는 그녀에게 아주 의미 있는 물건이다. 도강우가 예전에 그녀의 생일선물로 손수 만든 작품이지만 화재가 일어나면서 둘의 끈끈했던 감정과 함께 훼손돼버렸다. 순간 심하윤은 위가 타들어 갈 듯이 아팠다. 그녀는 긴장된 마음으로 화장실에 뛰쳐가 세면대에 엎드린 순간 선홍빛 핏물을 내뿜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위장의 통증에 안색이 다 창백해졌다. 가방에서 허겁지겁 약을 꺼내 용량을 늘리고 한꺼번에 삼킨 후에야 통증이 조금 누그러졌다. 심하윤은 떨리는 손으로 물을 틀어 세면대의 핏자국을 씻어내고는 비틀거리면서 화장실을 나섰다. “언니? 여기서 또 만나네?” 문득 뒤에서 야유 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자 순백의 이브닝드레스를 입은 임다인이 피에로를 쳐다보듯 그녀를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그녀의 종아리에 묻은 피를 보더니 임다인이 쓴웃음을 지었다. “언니 설마 유산한 건 아니지?” 심하윤은 미간을 찌푸리고 종아리를 내려다보다가 피식 웃었다. “뭐 눈엔 뭐만 보인다고, 생각 좀 고쳐 써.” 임다인은 안색이 확 어두워졌다. 이제 막 뭐라 쏘아붙이려 할 때 훤칠한 체구의 실루엣이 두 여자를 향해 다가왔다. 임다인은 차오르는 분노를 꾹 참고 눈물을 머금으며 도강우를 쳐다봤다. 오늘 도강우는 핏이 예쁜 고급 맞춤 정장을 입고 훤칠한 키에 잘생긴 얼굴로 임다인 옆에 다가왔다. 블랙 앤 화이트의 두 남녀는 유난히 잘 어울렸다. 그는 외투를 벗어서 자상하게 임다인의 어깨에 걸쳤다. “괜찮아?” 이에 임다인이 고개를 내저으며 연체동물처럼 그에게 기댔다. 한편 도강우는 심하윤을 쳐다볼 때 다정한 온기는 다 사라지고 한없이 차가운 시선으로 변했다. “넌 또 무슨 수작이야? 저번에 경고했지, 다인이 존중해주라고!” “존중? 내가 언제 얘를 막 다뤘어? 네가 봤냐고?” 심하윤이 쓴웃음을 지었다. 뜻밖의 반박에 도강우는 놀란 기색이 역력하더니 안색이 어두워졌다. “발뺌하지 마. 경고하는데 다음에 또 우리 다인이 괴롭히다 걸리면 그땐 정말 인정사정없어.” 말을 마친 후 임다인을 껴안고 매정하게 자리를 떠났다. 임다인은 거들먹거리는 미소를 지으면서 심하윤을 째려봤다. 두 사람이 떠난 후 심하윤도 옷매무새를 정리하고 떠나가려 했지만 문득 바닥에 떨어진 종잇장을 발견했다. 가까이 다가가 주워 올렸더니 그 위의 내용을 보고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임신진단서? 임다인이... 임신했다고?’ 둘의 관계가 순결하지 못하단 건 알고 있지만 빼박 증거를 직접 보게 되니 여전히 가슴을 후벼 파듯 아팠다. 심하윤은 질식할 것만 같아서 겨우 벽을 짚고 서 있었다. 어쩐지 도강우가 임다인과 하루빨리 결혼하지 못해서 안달이라더니... 바로 이것 때문이었다. 아이러니하면서도 웃긴 이 상황에 심하윤은 눈물이 앞을 가리고 위의 통증이 점점 심해졌다. “하윤아.” 이때 성시완이 홀로 우는 그녀에게 다가왔다. “왜 그래? 무슨 일이야?” 그는 재빨리 달려와서 몸을 파르르 떠는 심하윤을 부축했다. 이에 심하윤은 진단서를 꽉 잡고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야, 아무것도.” 성시완은 그녀가 암 판정 때문에 슬퍼하는 줄로 여겼다. “억지로 버티지 말고 나랑 같이 가서 치료받자. 적극적으로 치료받고 약을 꼬박 챙겨 먹으면 증상을 완화할 수도 있어.” “약이라니? 무슨 약?” 별안간 뒤에서 차갑고 쌀쌀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발정 나는 병 고쳐주는 약인가? 하윤아, 대체 언제까지 불쌍한 척 연기할 건데?” “불쌍한 척?” 성시완이 시선을 올리고 싸늘한 눈길로 도강우를 쳐다봤다. 이 남자가 심하윤에게 이토록 무례하게 구니 그도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도강우 씨, 말 좀 가려서 하죠. 하윤이는...” “시완아!” 심하윤은 그에게 절대 말하지 말라고 곁눈질했다. 이에 성시완도 미간을 구기며 도강우를 째려볼 뿐이었다. 그는 속절없는 눈길로 다시 심하윤을 쳐다봤다. “저 사람은 네가 안중에도 없는데 왜 숨겨?” 둘 사이에 비밀이 생긴 걸까? 애틋한 둘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도강우는 짜증이 확 밀려왔다. 그는 당장 나아가서 두 사람을 갈라놓고 싶었다. 이를 지켜보던 임다인은 주먹을 불끈 쥐고 눈가에 불씨가 활활 타올랐다. 그녀는 심하윤을 죽일 듯이 노려보더니 또다시 서글픈 눈동자로 변했다. “강우야, 나 속 쓰려...” 순간 도강우는 어쩔 바를 몰랐다. 그는 임다인의 손을 꼭 잡고 관심 조로 말했다. “조금만 참아. 지금 바로 병원 가자.” 이에 심하윤이 실소를 터트렸다. 임다인만 언급되면 이 남자는 항상 이성을 잃고서 무작정 그녀를 지켜주려 한다. 심하윤은 더 이상 쳐다보기도 싫었다. “늦었어. 우리도 이만 가자.” 그녀는 성시완에게 말하며 무심코 배를 눌렀다. 위에서 차오르는 통증에 이마에 식은땀이 맺히고 두 다리에 힘이 풀리기 시작했다. 그녀의 안쓰러운 모습을 지켜보다가 성시완이 손목을 꼭 잡았다. “그래.” 심하윤은 도강우와 임다인에게 이상한 낌새를 들키고 싶지 않아서 성시완에게 기댄 채 겨우 걸음을 내디뎠다. “으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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