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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심하윤은 눈동자가 흐릿해지고 축축이 젖은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해명하고 싶지만 입안에 피비린내가 감돌아서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이에 도강우도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차 안에 살벌한 기운만 감돌았다. 너무 답답한 나머지 심하윤이 몸을 살짝 떨었다. 그녀는 힘겹게 입안을 가득 채운 피를 삼키고 이제 막 입을 열려고 하는데 도강우가 갑자기 기사더러 차를 세우라고 했다. “꺼져!” 남자는 혐오 가득한 눈길로 그녀를 째려봤다. 밖은 이미 어두컴컴하고 그녀의 가방은 성시완에게 두고 나온 터라 택시 탈 돈도 없는데, 심지어 휴대폰도 못 챙겼는데 이대로 나가라니? 그녀가 꿈쩍하지 않자 도강우는 차 문을 열고 아예 끌어내렸다. 매정하게 길옆에 내던진 후 거만한 눈길로 쳐다보며 쏘아붙이는 이 남자, 심하윤은 눈앞이 캄캄해졌다. “내 차 더럽히지 마.” 심하윤은 떠나가는 그의 다리를 부둥켜안고 겁에 질린 채 시선을 올렸다. “미안해, 강우야, 제발 여기 버려두지 마. 택시도 없고 그리고...” 하지만 도강우는 가차 없이 그녀를 내팽개쳤다.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 그러고는 경멸의 미소를 날렸다. 혹여나 근본도 모를 성시완과 별 짓거리를 해서 도씨 일가의 이미지에 먹칠할까 봐 여기까지 끌어온 거지 안 그러면 이딴 년 따위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는 심하윤을 무시하고 차에 올랐다. 곧이어 마이바흐가 도로를 질주했고 심하윤만 길가에 덩그러니 버려졌다. 찬 바람이 휘몰아치자 사시나무 떨듯 몸이 파르르 떨렸다. 너무 춥고 위가 미칠 듯이 아팠다. 다만 주변에는 인기척조차 없어서 그 누구에게도 도움을 청할 수가 없었다. 부르릉. 문득 뒤에서 오토바이 엔진 소리가 들려왔고 눈 부신 불빛이 반짝였다. 심하윤은 손으로 눈을 가렸다. 잠시 후 오토바이 몇 대가 그녀 앞에 멈춰 서고 알록달록한 염색을 한 건달들이 앞길을 가로막았다. 앞장선 파란 머리 녀석이 그녀를 향해 휘파람을 불었다. “어이, 이쁜이, 혼자야?” 상대의 음흉한 눈빛에 심하윤은 몸을 움찔거렸다. 그녀는 고통을 꾹 참고 겨우 일어나 으름장을 놓았다. “좋은 말 할 때 꺼져. 내 남편 도강우야.” “퉤!” 파란 머리는 시큰둥해서 침까지 내뱉었다. “에이, 왜 그래? 걱정돼서 물어본 거잖아. 혼자 안 무서워? 오빠가 함께해줄까?” 그는 말하면서 심하윤에게 더러운 손을 내밀었다. 이에 심하윤은 식겁하며 뒷걸음질 쳤다. 그녀는 두 팔을 껴안고 눈물이 글썽하게 고인 채 눈앞의 건달들을 쳐다봤다. 순간 파란 머리가 사악한 눈빛으로 변하면서 혀로 입술을 날름거렸다. “우리 오늘 땡잡았네? 이렇게 예쁜 년들은 평상시에 4, 5만 원 정도 뿌려줘야 잘 수 있잖아.” “그러게 말이야. 이 정도 비쥬얼은 업소에서나 봤지... 거기 여자들 엄청 도도하잖아. 손 한 번 잡기도 힘든데.” “하하, 그럼 오늘 제대로 즐겨볼까?” 다들 심하윤을 바라보는 눈빛이 점점 음흉해졌다. 마치 그녀의 발가벗은 몸이라도 본 것처럼 말이다. 심하윤은 겁에 질린 채 도망치려 했지만 파란 머리가 재빨리 붙잡았다. 파란 머리는 그녀를 바닥에 내팽개치고 가차 없이 배를 걷어찼다. “X발, 어딜 도망쳐? 다른 데 말고 그냥 여기서 해야겠다. 넌 오늘 내 노예가 되는 거야.” 거침없는 그의 멘트에 심하윤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가득 맺혔다. 더러운 손이 몸에 곧 닿으려 할 때 그녀가 또다시 협박을 날렸다. “내 남편 도강우야. 건드리기만 해봐!” “참나...” 파란 머리가 고개를 돌리고 일행을 쳐다봤다. “들었냐? 이년 남편 도강우란다.” 다들 겁먹긴커녕 점점 더 흥분했다. 심지어 왜소하게 생긴 한 남자는 잔뜩 흥분해서 두 눈이 번쩍거렸다. “어쩌지? 우리 목표가 바로 도강우 와이프인걸?” 다들 설마 일부러 그녀를 겨냥한 걸까? 심하윤이 더 깊게 생각하기도 전에 파란 머리가 어느새 그녀의 옷을 벗겼다. “풉...” 순간 그는 손등에 내뿜은 피를 보며 비명을 질렀고 다시 한번 심하윤의 배를 걷어찼다. “X발, 더러운 년!” 안 그래도 위가 아파 미칠 지경인데 자꾸 걷어차이니 입안에 피가 점점 더 많이 고였다. 그녀는 서서히 정신이 몽롱해지다가 눈앞이 캄캄해지고 그대로 기절해버렸다. 이를 본 파란 머리는 덜컥 겁을 먹고 연신 뒷걸음질 쳤다. 일행들도 놀라서 어쩔 바를 몰랐다. 영상을 찍으려던 그중 한 명은 불안한 눈길로 파란 머리를 쳐다봤다. “어떡하냐? 우리 일 망친 거 아니야? 이년 이대로 죽으면 어떡해?” “그 입 닥쳐!” 파란 머리는 그를 째려보다가 심드렁한 눈빛으로 심하윤을 쳐다봤다. 그의 눈가에 애석함이 슬쩍 스쳤다. 한참 고민한 끝에 파란 머리는 아쉬움을 뒤로한 채 자리를 떠났다. “안 되겠다. 그까짓 돈 벌겠다고 살인까지 저지르는 것 수지에 안 맞아.” 심씨 일가 별장. 기사가 임다인을 심씨 일가로 데려다주었다. 집에 도착한 그녀는 씩씩거리며 휴대폰을 바닥에 내던지고 창밖을 바라보며 이를 박박 갈았다. “X발 년, 그냥 확 죽어버리지!” 앞서 도강우가 심하윤 그 천한 년 때문에 그녀를 무시하더니 이제 또 병신들 한 무리가 심하윤을 살려주었다. ‘심하윤! 죽어! 왜 자꾸 내 눈에 거슬리는 건데!’ 똑똑. 별안간 노크 소리가 들리자 험상궂은 임다인의 표정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해맑은 미소로 바뀌었다. 다음날. 심하윤은 익숙한 의료기기 소리를 들으며 어렴풋이 정신을 차렸다. 새하얀 천장을 바라본 그녀는 쓴웃음을 지었다. 죽은 줄 알았는데 다시 살아나다니. 눈가에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릴 때 의료기기를 정리하던 간호사가 돌아서서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심하윤 씨, 현재 본인 상태가 어떤지 잘 아시죠? 이참에 병원에 쭉 있어요. 어디도 가지 말고.” 심하윤은 텅 빈 병실을 바라보다가 의아한 듯 간호사에게 물었다. “누가 날 여기까지 데려온 거죠?” “그건 저도 몰라요.” 간호사는 고개를 내저었다. 심하윤은 다시 시선을 떨구고 혼잣말로 구시렁댔다. “착한 분이 선행했는데 오히려 더 괴롭네. 만약...” “심하윤!” 이때 불쑥 문 앞에서 분노에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곧이어 은색 정장 차림의 점잖은 남자가 안으로 들어왔는데 심하윤과 닮은 외모에 그녀를 바라보는 눈빛은 도강우 못지않게 혐오로 차 있었다. “그냥 확 죽어버리지 그랬냐? 종일 다인이 괴롭히는 게 재미있어?” 한편 심하윤은 화내긴커녕 실소를 터트렸다. 자신이 언제 또 심씨 일가의 ‘공주님’을 건드렸는지도 몰랐으니까. 그녀가 아무 말 없자 남자는 이혼합의서를 침대에 내팽개쳤다. “연기 그만해. 이렇게 죽어버려도 우리가 눈물 한 방울 흘릴 것 같아? 다인이 이제 강우 애까지 임신했어. 당장 강우랑 이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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