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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심유준은 음침한 눈빛으로 그녀를 째려보며 끝까지 비겁한 추측에 나섰다. ‘이 인간이 설마 임다인을 위해서 날 흔적도 없이 죽여버리려는 건 아니겠지?’ 심하윤이 뒤로 한 걸음 물러서자 그의 표정이 더욱 어두워졌다. “역시 그저 날 맞춰준 거네.” 그녀가 바보를 쳐다보듯 한심한 눈길로 쳐다보자 심유준이 갑자기 턱을 확 잡아당겼다. 심하윤은 너무 아픈 나머지 눈물이 찔끔 새어 나왔다. 이에 심유준도 손을 놓아주려 했으나 그녀 때문에 임다인이 혼전임신을 한 걸 생각하면 당장이라도 목을 졸라 죽이고 싶었다. 그의 눈가에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윤아, 너도 다인이처럼 얌전하게 지내면 안 돼?” 심하윤은 눈물을 꾹 참았다. 더 이상 어떻게 얌전해지지? 띵.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는 순간 심유준은 음침한 기운을 싹 걷어내고 누군가가 들어오자 다시 온화한 이미지로 돌아왔다. 하지만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그녀의 손목을 잡아채고 따라오든 말든 신경 쓰지 않은 채 무작정 차에 태우고 시동을 걸었다. 어느덧 차가 교외로 나왔고 심하윤은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뭐 하는 짓이야?” 그녀가 질문을 건넸다. 설마 진짜 생매장이라도 하려는 걸까? 심유준은 불안한 그녀의 눈빛을 보더니 불만 조로 쏘아붙였다. “왜? 내가 죽이기라도 할까 봐?” ‘그럼 아니야?’ 심하윤은 의심에 찬 눈빛으로 그를 째려봤다. 이에 심유준이 입꼬리를 씩 올렸다. “걱정 마, 너 같은 나쁜 년 때문에 콩밥 먹을 짓까진 하지 않아. 너 같은 건 하늘이 알아서 처벌할 테니 굳이 내가 손 쓸 필요는 없어.” 오빠라는 인간이 대놓고 야유를 퍼붓자 그녀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비록 그들을 단념하긴 했지만 심유준의 말에 여전히 상처받는 그녀였다. “그래, 맞아. 나 같은 건 굳이 오빠가 나설 필요 없지.” 3개월 뒤에 곧 엄마 만나러 갈 테니까. 그녀의 눈가에 고인 눈물을 보자 심유준은 또다시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내가 왜 이딴 년 기분을 고려하지?’ “빌어먹을!” 심유준은 핸들을 힘껏 내리치고 액셀을 끝까지 밟았다. 그 시각. 도강우의 사무실 문이 벌컥 열리고 체크 무늬 셔츠에 귀걸이를 달고 빨간 머리로 염색한 남자가 거들먹거리면서 들어왔다. 그 남자는 도강우의 맞은편에 앉아서 책상 위에 두 다리를 척 올렸다. 그러더니 서류 봉투를 툭 내던지며 말했다. “자, 네가 바라던 거.” 도강우는 서류를 건네받고 차분하게 열어보았다. 하지만 곧장 미간을 구기고 섬뜩한 표정으로 돌변했다. 친구의 표정 변화에 상대도 얌전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도강우는 한없이 차가운 눈길로 그를 쳐다봤다. “이거 심하윤 진단서 확실해?” 도강우의 절친 중 한 명이자 전국 최대 규모의 사립병원 상속자 우혁이 한심하다는 듯 두 눈을 희번덕거렸다. “다른 건 몰라도 우리 보스 실력은 절대 의심하면 안 돼. 근데 너 왜 이렇게까지 정색해? 심하윤이 또 얼마나 역겹게 굴었는데?” 그는 목을 내빼며 서류를 훑어보려고 했다. 도강우는 심하윤의 일에 관해 늘 비밀을 유지하는 편이고 또한 우혁도 감히 도강우의 일로 입을 나불거릴 엄두가 안 났다. 도강우는 서류 봉투를 꽉 잡고 우혁을 집어삼킬 듯한 눈길로 째려봤다. “확실한 거 맞아?” 그의 의심에 우혁은 속절없이 양손을 들었다. “이보세요, 도강우 씨, 우리 병원 전국 최대 규모 병원이야. 엘리트 의사들이 다 우리 병원에 모였는데 잘못될 리가 있겠어?” “오진 아니야?” 우혁이 또다시 두 눈을 희번덕거렸다. “그런 의사는 바로 해고지. 열 배 배상금도 물어내고!” 이성을 잃은 듯한 도강우의 모습에 우혁이 또다시 참지 못하고 오지랖을 피웠다. “말해봐, 심하윤이 또 무슨 짓 했는데?” 도강우는 서류를 정리하며 문 쪽을 바라봤다. “이만 가봐. 늦었어.” 우혁은 어이가 없어서 앞머리를 어루만졌다. “말하기 싫으면 말고. 어차피 나도 안 궁금하거든.” 그는 코웃음 치며 밖으로 나갔다. 몇 걸음 나갔지만 도강우가 좀처럼 붙잡지를 않았다. 이에 우혁이 뒤돌아봤더니 또다시 서류를 들여다보는 것이었다. 우혁은 궁금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심하윤에게 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걸까? 도강우의 표정만 보면 그녀가 마치 엄청난 일이라도 벌인 것만 같았다. ... 심하윤은 어느 한 별장으로 끌려왔다. 이곳은 큰오빠가 심유준의 18살 생일선물로 준 별장인 것 같은데 여길 왜? 전에 한 번만 데려가 달라고 애원해도 듣는 척 않더니 죽음을 앞두고 소원을 이룬 셈인가? 심하윤은 피식 웃다가 차분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여긴 왜 왔어? 날 여기 가두게?” 심유준은 그녀를 스쳐 지나서 주위를 한 바퀴 둘러보다가 다시 그녀에게 시선을 옮겼다. “네가 순순히 강우랑 이혼할 거라고? 천만에! 분명 또 다른 의도가 있겠지. 강우가 너랑 정식으로 이혼하기 전까지 여기서 잠자코 지내.” “알았어.” 심하윤은 흔쾌히 동의하고 한 마디 덧붙였다. “도강우한테 얼른 사인하라고 말해줘.” 심유준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못 믿겠다는 눈길로 그녀를 쳐다봤다. 왜 꼭 그녀가 도강우보다 이혼이 더 성급한 것 같지? 심유준이 멍하니 넋 놓고 있자 그녀는 손을 흔들어 보이며 물었다. “내 말 듣고 있어?” 그가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네가 재촉하지 않아도 무조건 강우랑 이혼시킬 거야. 그러니까 수작 부리지 말고 여기서 얌전히 있어.” “걱정 말라니까.” 그녀는 웃으며 집사에게 물었다. “제 방은 어디에요?” 집사는 오늘 심하윤을 처음 본 터라 무심코 심유준의 눈치를 살폈다. 그녀를 본 적은 없지만 이 집안 사정을 진작 전해 들었다. 심씨 일가 모든 이가 친혈육인 심하윤을 싫어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오히려 그녀의 부모님이 후원한 가난한 학생 임다인만 예뻐해 주고 있다. 오늘 드디어 심하윤을 보게 되니 집사는 측은지심이 생겼다. 무척 야윈 체구에 바람이 불면 휙 쓰러질 것만 같아서 정성껏 보살펴줘도 모자랄망정 이토록 거칠게 대하다니... “집사님, 오늘부로 얘 별장 밖으로 반 발짝도 못 나가게 꼭 지키세요.” 김성균은 재빨리 정신을 가다듬고 머리를 끄덕였다. “네, 그럴게요.” 곧이어 심유준은 또다시 그녀에게 경고장을 날렸다. “수작 부리는 날엔 뼈도 추스르지 못하고 확 죽어버리는 수가 있어!” 그는 모진 말만 내뱉고는 매정하게 별장을 떠났다. 임다인 홀로 병원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을 테니까 빨리 그녀 곁으로 돌아가야 한다. 한편 심하윤은 그가 떠나든 말든 전혀 신경 쓰지 않았고 심지어 이곳이 꽤 마음에 들었다. 이제부터 아무도 그녀를 방해하는 자가 없다. 죽기 전까지 모든 영감을 그림에 쏟아부어 온 세상을 놀라게 할 보석을 남겨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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