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fic
더 많은 컨텐츠를 읽으려면 웹픽 앱을 여세요.

제9화

이어진 이틀 동안 심하윤이 아무런 연락도 없자 심유준은 또다시 별장으로 찾아왔다. 얌전히 별장에만 있는 그녀를 보자 심유준은 오히려 의심만 켜졌다. 이에 집사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도련님, 하윤 씨는 줄곧 방안에만 있었어요. 근데 음식을 너무 적게 드시니 좀 걱정되네요...” 심유준이 경멸의 미소를 날렸다. “집사님은 몰라요. 쟤가 얼마나 사악한 년인지. 지금 보시는 모든 게 가식이에요. 우리가 저를 안쓰럽게 여기길 바라는 수작일 뿐이죠. 솔직하게 말해봐요, 쟤한테 돈 받았죠? 대신 덕담 좀 해달라고 부탁한 거 맞죠?” 김성균은 그런 심유준이 너무 한심했다. 다만 한편으로는 이 남자가 심하윤을 얼마나 싫어하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김성균이 미처 대답하기도 전에 심유준이 위층으로 올라갔다. ‘오늘은 또 무슨 수작인 건데?’ 그가 속으로 구시렁대며 문을 벌컥 열자 심하윤이 배를 어루만지며 멍하니 넋 놓고 있었다. 심유준은 문에 기댄 채 시큰둥한 얼굴로 말했다. “또 무슨 수작 부리려고? 다인이가 강우 애 가졌다고 어떻게 해칠까 고민 중이야?” 자신만의 세상에 흠뻑 빠져있던 심하윤은 그의 목소리를 들은 순간 차가운 시선으로 돌변했다. 그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덤덤하게 심유준을 쳐다보다가 피식 웃었다. “오늘은 드디어 이혼서류 주려고 온 건가?” 문득 심유준이 몸을 움찔거렸다. 다만 그는 또다시 버럭 화냈다. “아무렇지 않은 척 연기한다고 내가 넘어갈 것 같아? 다인이랑 강우 성대한 결혼식 올릴 거야. 이 말 전해주려고 왔어. 넌 이제...” 심유준이 차가운 미소를 날렸다. “난 더이상 너 같은 동생 없으니까 강우랑 이혼 수속 마치거든 해외로 떠나. 평생 돌아오지 말라고!” 혐오에 찬 눈길로 해외에 꺼지라는 말을 내뱉고 있는 이 남자, 아무래도 하루빨리 그녀를 쫓아버리고 싶은가 보다. 심하윤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야말로 친동생인데, 임다인이 나타나기 전까진 오빠의 사랑을 듬뿍 받았었는데 지금은 왜... 그녀는 곧장 이 감정을 숨기고 아무렇지 않은 듯 웃어 보였다. “여기서 쓸데없는 소리 지껄일 바엔 제발 좀 빨리 도강우 사인 시켜. 그래야 이혼 수속 마칠 거 아니야.” 심유준은 그녀의 말투가 너무 찝찝했다. 왜 꼭 마치 도강우가 이혼을 거부하는 느낌이 들까? ‘말도 안 돼!’ 이건 분명 심하윤의 가스라이팅이다. 생각을 마친 심유준은 경멸의 눈빛으로 그녀를 째려봤다. “닥쳐! 강우 요즘 좀 바빠서 사인을 미뤘을 뿐이야. 볼일 다 보거든 무조건 너랑 이혼해.” “그래?” ‘바쁘다고? 가슴 찔리는 저 꼴 좀 봐.’ 심유준은 문득 그녀가 자신을 얕잡아본다는 느낌이 들었다. ‘젠장, 네가 뭔데 날 깔봐?’ 그는 생각할수록 화나서 주먹을 불끈 쥐고 이를 악문 채 경고장을 날렸다. “나랑 약속해! 강우랑 이혼하고 나서도 절대 다인이랑 강우 사이 방해하지 마. 다인이 해칠 생각도 말고. 넌 이제 우리 가족과는 아예 남남이야.” 심하윤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그녀가 오매불망 그리던 소원이니까. 너무나도 흔쾌히 대답하는 그녀 모습에 심유준은 마음만 더 찝찝해졌다. 특히 그녀의 눈빛은 어떠한 감정도 실려있지 않았다. 심유준은 뭔가 생각난 듯 그녀의 뒤에 있는 책상으로 시선을 옮겼다. 책상 위에 스케치 용지가 몇 장 놓여 있었고 이제 막 가까이 다가가려 하는데 심하윤이 갑자기 당황해하며 가로막았다. “왜 이래?” 그제야 긴장한 그녀의 모습에 심유준이 음침한 얼굴로 매정하게 밀쳐냈다. “내가 묻고 싶은 말이야. 너 또 무슨 수작인데?” 그는 어느새 스케치 용지를 들어 올렸다. 용지에는 이상한 모양의 나뭇잎이 그려져 있었고 이를 본 심유준이 아예 구겨서 휴지통에 버렸다. “난 또 뭐라고! 더는 그림 그리지 말랬잖아! 네 그림들 다인이가 이해하지 못해서 기분만 잡치니 더는 그리지 말란 말이야.” 심하윤은 휴지통을 바라보다가 찬성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더는 그리지 말았어야 했어.” 원래 그에게 줄 이별 선물로 그리던 중인데 이제 보니 그럴 필요가 없었다. 심유준이 만약 조금만 더 자세히 들여다본다면 그가 가장 좋아하는 디자이너의 사인이 적혀있다는 걸 발견할 수 있는데, 또한 방금 그 나뭇잎도 그가 가장 좋아하는 올리브 나무였다. 아쉽게도 이 그림은 심하윤이 그린 거라 아무리 잘 그려도 임다인이 싫어한다는 이유로 역정을 내고 있었다. 그녀의 표정이 점점 이상해지자 심유준은 왠지 모르게 불안감에 떨었다. 그는 가슴 찔린 듯 심하윤의 시선을 피해 밖으로 나갔다. “알면 됐어. 나중에 사람 불러올 테니까 알아서 여길 떠나.” 말을 마친 심유준은 부랴부랴 별장을 나섰다. 그가 떠난 뒤 심하윤은 휴지통에서 방금 버린 그림을 줍더니 아예 불을 지펴서 활활 태워버렸다. 한편 심유준은 곧게 병원으로 향했다. 임다인의 임신 소식을 알게 된 이후로 행여나 그녀가 잘못될까 봐 줄곧 병원에 입원시켰다. 하지만 별장에서 돌아온 뒤로 줄곧 넋이 나간 이 남자, 임다인이 무슨 얘기를 해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순간 임다인의 눈가에 질투가 어렸다. 고작 별장 한 번 다녀왔을 뿐인데 이렇게 넋 놓게 된다고? 심하윤 그 천한 년이 무슨 마법이라도 지닌 걸까? “오빠.” 별안간 임다인이 그의 손목을 잡았다. 움찔 놀란 심유준은 무심코 그녀를 밀치다가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사과했다. “미안해, 다인아. 난 또 심하윤 그년인 줄 알고...” 임다인은 안색이 창백해졌지만 억지 미소를 지으며 살며시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야, 내가 너무 뜬금없었지. 이 아이 그냥 지우게 해줘. 언니랑 강우가 나 때문에 이혼하는 거 싫어.” “안돼!” 심유준은 고민 없이 바로 거절했다. 그는 임다인의 손을 꼭 잡고 분노 조로 쏘아붙였다. “그 천한 년이 강우더러 빨리 좀 사인하라고 하는 거 있지? 누가 봤으면 강우가 이혼을 거부하는 줄 알겠어. 내가 얼른 강우 사인 시켜서 보여줘야지 안 되겠어. 애가 단단히 착각하고 있더라니까!” “뭐라고? 강우가 하윤이랑 이혼을 거부해?” 임다인은 순간 참지 못하고 언성을 높였다. 그녀가 감정이 격해지자 심유준은 살짝 의심스러웠지만 곧 아닐 거라고 스스로 위로했다. ‘강우를 너무 사랑해서 그런 거겠지.’ 그는 임다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다정하게 말했다. “지금 바로 강우 찾아가서 말할게. 걔 반드시 너 책임져야 하잖아.” “아니야...” 임다인이 말리기도 전에 그가 어느덧 병실을 나섰다. 떠나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임다인의 눈가에 불씨가 활활 타올랐다. ‘이런 멍청이! 제발 머리 좀 쓰라고! 왜 이렇게 쉽게 자극받는 거야?’ 하지만 심유준이 정말 두 사람을 이혼시키면 임다인도 목적을 이루게 된다. 하여 그녀는 딱히 말리지 않고 심유준의 좋은 소식만 기대했다.

© Webfic, 판권 소유

DIANZHONG TECHNOLOGY SINGAPORE PTE. LT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