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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원씨 가문은 제주를 기반으로 한 오래된 명문가로 재력 면에서는 신해 그룹과도 맞먹는 집안이었다. 하지만 학업을 이유로 원시아는 홀로 서울로 상경했고 신도운과 결혼한 뒤에는 아버지 원태현이 아예 원씨 가문을 이곳으로 옮겨왔다. 하지만 막상 옮겨오고 나서도, 1년에 딸 얼굴을 두 번 보기가 힘들었다. 원시아가 친정에 다녀오겠다고 하면 신도운은 이것저것 걱정과 불안을 늘어놓으며 좀처럼 보내주지 않았다. 결국 원태현은 딸을 조금이라도 더 자주 보기 위해 신해 그룹과 깊은 협력 관계를 맺고 그들의 프로젝트를 대거 맡게 됐다. 이것이 바로 원시아가 지금 당장 신도운의 실체를 폭로하지 않으려는 이유였다. 먼저 집으로 돌아가 아버지에게 상황을 알리고 관계를 깔끔히 정리해 피해를 최소화해야 했다. 원시아가 원씨 가문으로 돌아가겠다고 하자 신도운은 미간을 깊게 찌푸리며 걸음을 재촉했다. “시아야, 아직 이렇게 아픈데 내가 어떻게 너를 보내겠어. 거기 사람들이 널 제대로 돌볼 수 있겠어? 게다가 아기도 널 필요로 하고...” “아기도 데리고 갈 거야. 엄마가 나 돌봐줄 거고.” 파티장을 벗어나 차가운 바람을 맞자 원시아는 정신이 조금 또렷해졌고 이내 차분하게 말했다. 그러자 신도운은 표정이 더 어두워지며 그녀를 안은 팔에 점점 힘을 더했다. 발걸음 역시 빨라졌다. 뒤따르던 고현지가 연달아 그를 불렀지만 신도운은 한 번도 돌아보지 않았다. 이에 표정이 순간 일그러지더니 고현지는 이를 악문 채 갑자기 차량이 오가는 도로 쪽으로 몸을 던졌다. 날카로운 비명이 신도운을 붙잡았다. 돌아보니 고현지는 도로 한가운데 주저앉아 있었고 오토바이 한 대가 빠른 속도로 달려오고 있었다. 그렇게 눈 깜짝할 사이, 신도운은 원시아를 거칠게 내던지고 고현지 쪽으로 달려가 그녀를 끌어안았다. 고현지는 털끝 하나 다치지 않은 채 그의 품에서 흐느꼈다. “이제 와서 왜 챙기는 거야? 그냥 나 치이게 두면 사모님도 화가 풀렸을 텐데...” 신도운은 가슴 아파하며 말했다. “내가 잘못했어. 다시는 이런 일 없을 거야.” 두 사람은 서로를 애틋하게 바라봤다. 그 사이, 힘껏 내던져진 원시아는 길가 화단의 뾰족한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쳐 피를 철철 흘리고 있었다. 겨우 몸을 일으키기도 전에 급히 방향을 틀어온 오토바이에 다시 한번 튕겨 나갔다. 원시아는 찢어진 헝겊 인형처럼 허공에 날아올랐다가 땅에 떨어져 몇 바퀴를 굴렀다. 피가 도로 위에 길게 흩뿌려졌다. 뼈는 으스러지고 살점은 찢어졌으며 그녀는 참을 수 없는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 살려달라고 외치려는 순간, 시야 한쪽에 남편이 고현지를 끌어안고 깊게 입을 맞추는 모습이 들어왔다. 끝없는 고통과 절망 속에서 세상은 완전히 암흑으로 가라앉았다. ... 원시아는 하루 밤낮을 넘겨 응급 처치를 받고 중환자실에서 사흘을 더 보낸 뒤에야 겨우 눈을 뜰 수 있었다. 눈을 뜨자 신도운이 병상 옆에서 턱을 괴고 잠들어 있는 모습이 보였다. 피곤이 역력한 얼굴, 턱에 올라온 푸르스름한 수염 자국을 보니 꽤 오랫동안 그녀를 지켜본 듯했다. 원시아는 그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문득 어린 시절의 신도운을 떠올렸다. 하교 시간마다 교실 뒷문에서 기다리던 모습, 시험 중 창밖에서 쪽지를 던져주던 모습, 누군가 그녀에게 고백하는 걸 보고 분노하던 모습... 그 모습들은 그녀의 청춘을 통째로 함께한 기억이었고 가장 소중하고 아름다운 추억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기억들마저 서서히 흐려지고 일그러지고 있었다. 이제 신도운의 얼굴은 원시아의 눈에 두려운 존재로만 보였다. 원시아가 흐느끼는 소리에 신도운은 화들짝 놀라 깨어났다. “시아야, 울지 마. 어디 아파? 의사 선생님 부를게.” 의사의 검진이 끝나 큰 이상이 없다는 말을 듣고서야 그는 안도한 듯 그녀의 손을 잡고 한숨을 쉬었다. “앞으로 원씨 가문으로 돌아간다는 말 같은 건 하지 마. 봐, 이렇게 큰일이 나잖아.” 원시아의 마음은 채 데워지기도 전에 다시 얼어붙었다.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내가 집에 가겠다고 해서 이런 일이 생긴 거야? 고현지가 소동을 벌여서 내가 오토바이에 치였던 거잖아!” 고현지의 이름이 나오자 신도운은 마치 역린이 건드려진 듯 표정을 굳혔다. “왜 현지를 끌어들여! 그날이 현지에게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 날인지 몰라서 그래? 그런 날에 이런 불길한 일이 생겨서 현지도 꽤 상처받았어. 쓸데없이 시비 걸지 마!” “불길해? 내가 오토바이에 치여 죽을 뻔한 게 불길한 거라고? 신도운, 너 정말 양심이 있기는 해?” 분노와 억울함에 휩싸인 탓에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흘러내렸다. 하지만 이번에 신도운은 더 이상 그녀를 달래지 않았고 오히려 노골적인 짜증을 드러냈다. “걸핏하면 우네. 현지는 울지도 않고 오히려 네 곁을 잘 지켜주라고 나를 설득했어... 너도 현지처럼 마음을 좀 넓게 가지면 안 돼? 신해 그룹 이름으로 공지를 내서 네가 직접 공개 사과하게 할 거야. 이 일은 이쯤에서 끝내도록 하자...” 원시아는 믿을 수 없었다. ‘나보고 사과를 하라고? 남편을 빼앗고 나를 죽을 뻔하게 만든 그 여자한테?’ 분노로 인해 눈앞이 새까맣게 변했고 의료 모니터의 수치가 순식간에 붉게 치솟았다. 하지만 신도운은 알아차리지 못한 채 특정 벨 소리가 울리자 미소를 머금고 병실을 나섰다. “현지야, 발목이 아파? 알았어, 지금 가서 내가 직접 주물러줄게...” 전화를 받으며 멀어져 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사이, 원시아는 30분이 지나서야 회진을 돌던 간호사에게 위급한 상태로 발견돼 다시 응급실로 옮겨졌다. 이번에 그녀의 곁을 지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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