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화
원시아가 병원에 거의 열흘 가까이 입원해 있었지만, 그동안 신도운은 단 한 번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예전에는 끊임없이 울리던 휴대폰도 이제는 죽은 것처럼 고요했다.
대신 고현지의 메시지만 간간이 도착했다.
[내일이 결혼기념일이라면서? 미안해. 도운 씨가 꼭 나를 홍콩으로 데려가서 보석을 사주겠다고 해서... 시간 맞추기 힘들 것 같네.]
[이 ‘영원한 사랑’ 사파이어 예쁘지? 도운 씨가 사준 거야... 화내지 마. 너한테도 하나 사주긴 했으니까. 다만 조금 작을 뿐이지.]
[그냥 살짝 키스했을 뿐인데 그 사람이 너무 급하게 호텔로 돌아가자고 하더라고. 원래 이렇게 열정적인 사람이었어? 좀 버거울 정도야.]
곧이어 동영상이 전송됐다. 썸네일만 봐도 눈을 더럽힐 만큼 노골적인 영상이었다.
흔들리지 않겠다고 마음먹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가슴 깊숙이 찔리는 듯한 고통을 피할 수 없었다.
원시아는 재빨리 영상을 삭제하고 고현지를 차단하려 했다. 그러나 그보다 빠르게 새 메시지가 튀어나왔다.
[요즘 해외 금융 프로젝트에 좀 관심이 생겼는데 도운 씨가 원씨 가문에서 투자하게 해주겠다고 하더라? 미리 감사 인사 전할게.]
원시아는 벌떡 상체를 일으켰다.
‘안 돼!’
고현지는 부대표가 되기 전까지만 해도 평범한 사무직 직원에 불과했기에 리스크가 큰 해외 금융 프로젝트를 감당할 능력이 전혀 없었다.
‘그럼... 원씨 가문은 망해!’
원시아가 다급히 원태현에게 전화를 걸어 보았지만 아무리 해도 연결되지 않았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어머니인 김은애에게 전화를 걸었다.
김은애는 웃으며 말했다.
“네 아빠 계약하러 나가셨어... 우리한테 자식은 너 하나뿐인데 사위 돕는 게 당연한 거 아니겠니? 사양하지 마. 어차피 원씨 가문 재산도 언젠가는 다 네 거잖아.”
평소처럼 딸을 아끼는 마음에 하는 말이었지만 이제는 오히려 원시아의 마음을 불 위에 올려놓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부모님은 그녀를 위해 평생을 살아온 제주를 떠났고 그 후로도 신해 그룹에 적지 않은 돈을 계속 투자해 왔었다.
이 모든 건 단 하나, 딸이 신씨 가문에서 고개 숙이지 않고 살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었다.
만약 원씨 가문이 파산한다면 원시아는 평생 자신을 용서하지 못할 것이었다.
전화를 연결할 수 없자 그녀는 병든 몸을 이끌고 직접 신해 그룹으로 향했다.
하지만 건물 앞에 도착하자마자 프런트에서 가로막혔다.
“부대표님 지시로 관계자 외 출입은 불가합니다.”
불과 보름 전까지만 해도 그녀에게 친절하던 프런트 직원의 눈빛에는 이제 노골적인 경멸과 조롱이 담겨 있었다.
원시아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저 아무 관련 없는 사람 아니에요... 저 안에 있는 사람은 제 남편이라고요. 신도운을 불러주세요!”
“신 대표님도 부대표님 말씀을 따르셔야 합니다. 이미 회사 정관에 명시된 사항이라 다들 알고 있어요.”
직원은 비웃듯 덧붙였다.
“그냥 집에 가서 아이나 돌보시죠.”
원시아는 급하고 창피한 마음에 건물 앞에서 신도운에게 전화를 33번이나 걸었다.
그러나 단 한 통도 연결되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신도운의 비서, 운전 기사에게까지 하나하나 애원했지만 그 누구도 그녀를 위로 데려다주려 하지 않았다.
그날 연회와 공개 사과 이후, 원시아는 신해 그룹 안에서 완전히 설 자리를 잃은 상태였다.
결국 계약은 막지 못했다.
엘리베이터에서 신도운과 나란히 걸어 나온 고현지는 계약서를 들고 원시아를 내려다보며 득의양양하게 웃었다.
“사모님, 여기는 사모님이 올 곳이 아니에요.”
신도운 역시 그녀를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현지 말이 맞아. 넌 집에 잘 있어야지.”
그는 자신의 아내가 아직 병원에서 퇴원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그때 원태현이 원시아를 보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시아야, 왜 이렇게 살이 빠졌니? 도운이랑 다퉜어?”
아버지의 걱정 어린 말에 원시아는 목에 돌이 걸린 듯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원태현에게는 심장병이 있었으니 말이다.
이미 일이 이렇게 진행된 이상, 원시아는 진실을 말할 용기가 나지 않았고 결국 원태현을 달래 집으로 돌려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 후 원시아는 거의 매달리다시피 신도운에게 부탁했다.
“부부로 산 지 3년이야... 그 정도 정은 있잖아. 이 프로젝트, 네가 직접 맡아주면 안 돼? 원씨 가문만은 망하게 하지 말아줘... 제발...”
그러나 돌아온 건 신도운의 불만 섞인 한숨뿐이었다.
“또 소심한 소리 하네. 손해 보면 다시 벌면 되잖아. 현지의 경험을 쌓는 게 더 중요해.”
고현지는 그 말을 듣고 달콤한 미소를 지었다.
“도운 씨, 나한테 정말 잘해줘서 고마워...”
하지만 신도운이 등을 돌리는 순간, 그녀는 원시아에게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걱정 마. 원씨 가문 돈 전부 고위험 프로젝트에 넣을 거니까... 크게 한 번 놀아보고, 네 아빠 장례비나 벌어줄게.”
“고현지! 너 일부러 그러는 거잖아!”
원시아는 끝내 참지 못하고 달려들어 고현지의 손에 든 계약서를 잡아챘다.
그렇게 몸싸움 끝에 두 사람은 3층 난간 밖으로 함께 밀려나 그대로 아래로 떨어질 듯했다.
위급한 순간, 원시아는 공포에 질린 신도운의 얼굴과 미친 듯이 달려오는 그의 모습을 보았다.
“도운아... 나 좀 살려줘!”
원시아는 필사적으로 손을 뻗었다.
그러나 신도운은 잠깐 망설이더니 그녀의 손을 외면한 채 고현지에게로 향했다.
그는 또다시 생사의 갈림길에서 원시아를 버린 것이었다.
이 사실을 깨닫는 순간, 원시아의 눈빛은 완전히 꺼져버렸다.
그녀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3층 아래로 추락했다. 오른쪽 다리에서 선명한 ‘우두둑’ 소리가 났고 다리는 기괴한 각도로 꺾였다.
아물지도 않은 옛 상처 위에 새 상처가 더해지며 원시아는 다시 한번 정신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