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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사흘 뒤, 원시아는 정신을 차리자마자 가장 먼저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화면에는 뉴스가 쏟아지고 있었다. [신해 그룹 신임 부대표 고현지, 투자 실패로 수조 원대 손실!] [원씨 가문 가주 급작스레 병세가 악화돼 병원 이송... 생사 불투명!] [신해 그룹 대표 신도운, “이번 실패는 단순한 타격일 뿐, 그룹의 근간에는 영향 없다.”] 하나하나가 가슴을 후벼 파는 기사였고 원시아의 시야는 순간순간 새까맣게 흔들렸다. 그제야 김은애에게서 걸려 온 수십 통의 부재중 전화가 눈에 들어왔다. 눈물이 주르륵 떨어졌다. ‘엄마는 평생을 큰 풍파 없이 살아온 분이신데... 인생에서 가장 큰 시련이 하필이면 나라는 불효한 딸로부터 비롯될 줄이야...’ 떨리는 손으로 전화를 걸자 김은애의 울음 섞인 쉰 목소리가 들려왔다. “원씨 가문 자금줄이 완전히 끊겼어... 네 아빠는 수조 원을 내준 지 고작 사흘 만에 전부 날릴 줄은 꿈에도 몰랐대. 분노가 한꺼번에 올라와서 쓰러지셨고 이제 막 수술실에서 나오셨는데... 아직도 중환자실에서 의식이 없어.” 김은애는 원시아를 한마디도 탓하지 않았고 그저 울먹이며 말할 뿐이었다. “시아야, 우리 회사가 신해 그룹이랑 맺은 프로젝트가 얼마나 많은데... 자금이 없어서 공사를 마치지 못하면 천문학적인 위약금을 물어야 해. 그때는 정말 다시 일어설 길이 없어...” 원시아는 속에서 끓어오르는 분노와 비통함을 꾹 눌러 삼키고 김은애를 달랬다. “걱정 마세요. 제가 해결할게요.” 전화를 끊은 뒤, 그녀는 집으로 돌아왔다. 3층에서 떨어진 사고로 오른쪽 다리가 골절돼 석고를 한 상태라 지금은 휠체어에 앉아 가사 도우미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보름 넘게 비워 둔 집은 싸늘하게 식어 있었고 사람의 온기라곤 느껴지지 않았다. 가사 도우미가 머뭇거리며 말했다. “그동안 대표님께서는 한 번도 집에 안 오셨어요. 아기 보러도요.” 원시아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야근하는 척 몰래 빠져나가던 단계에서 아예 밤을 새우고 돌아오지 않는 단계까지... 신도운이 변하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20일이었다. 평생 원시아만 사랑하겠다고 하던 남자의 약속이 고작 20일 만에 끝나 버린 것이다. 원시아는 아이를 안았다. 작고 따뜻한 체온이 이미 얼어붙은 그녀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데워 주었다. 신도운에게 전화를 걸어 집에 한 번 들르라고 했지만 그는 바쁘다며 돌아올 수 없다고 했다. 결국 원시아는 아이를 안고 찍은 사진 한 장을 보내며 메시지를 남겼다. [부부로서의 정은 더 이상 인정하지 않는다고 해도... 이 애가 신씨 가문의 후계자라는 점을 생각해서라도 원씨 가문이 시간을 벌 수 있게 조금만 여유를 주면 안 될까? 차근차근 자금을 마련해 이 위기만 넘기게 해줘.] 답장은 거의 그 즉시로 왔고 거절도 단호했다. [안 돼, 현지가 반대해. 현지는 원래 공과 사를 철저히 구분하는 사람이야. 너도 좀 배우는 게 좋겠어.] 역시 변심한 남자의 마음은 쇠처럼 차가웠다. 부부의 정을 인정하지 않더니 이제는 부자간의 정마저 외면한 것이었다. 원시아는 눈을 감았다가 마지막 남은 눈물 한 방울을 떨어뜨리더니 조용히 어딘가로 전화 한 통을 걸었다. 신도운과 결혼하기 3년 전, 누군가 그녀에게 했던 약속이 있었다. ‘이제 그 약속을 받을 때가 됐어.’ ... 그 후 열흘 동안, 원시아는 집 안의 물건들을 정리했다. 그동안 신도운이 선물했던 보석, 슈퍼카, 부동산까지 하나하나 목록을 만들어 상자에 담았다. 두 사람은 어릴 적부터 함께 자랐기에 사진첩만 해도 열 권이 넘었고 추억이 담긴 편지와 일기, 작은 메모들도 수두룩했다. 원시아는 단 한 점도 남기지 않고 그것들을 모두 벽난로에 넣어 불태웠다. 마지막으로 정리한 것은 자신의 생활용품이었다. 열흘째 되는 날, 한때 따뜻했던 집은 텅 비었고 그녀와 아이가 살았던 흔적은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게 되었다. 이혼 숙려 기간이 끝나던 날, 신도운이 잠시 집에 들렀다. 그렇게 텅 빈 집과 아이를 안고 나갈 준비를 하고 있던 원시아를 보고 그는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 “시아야, 이게 다 뭐야?” 원시아는 담담하게 말했다. “집을 다시 꾸미려고. 기분 전환도 할 겸.” 누가 봐도 서툰 변명이었지만 신도운은 깊이 생각할 여유가 없었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옷장에서 갈아입을 옷 몇 벌을 꺼냈다. “회사에 급한 일이 있어서... 이번 달에는 집에 못 올 것 같아. 장인어른 일도 너무 상심하지 마. 빚을 당장 갚으라고 몰아붙이지는 않을게.” 자금 부족으로 원씨 가문이 맡았던 신해 그룹 프로젝트는 이미 계약 위반 상태였고 막대한 빚을 지고 있었다. 장인을 궁지로 몰아넣은 장본인이 신도운이건만 이제 그는 태연하게 채권자의 위치에 서 있었다. 아이를 낳고 나서야 원시아는 눈앞의 남자에 대해 완전히 알게 되었다. 그녀는 담담히 고현지의 전화를 받는 신도운을 보았고 또 담담히 그가 신씨 가문을, 그리고 자신의 삶에서 떠나는 모습을 지켜봤다. 마음속에는 더 이상 아무런 파문도 일지 않았다. 신도운이 떠난 뒤, 원시아는 이혼 의사 확인서를 봉투에 넣어 아기 침대 베개 밑에 두었다. 그 아래에는 두 개의 서류가 함께 놓여 있었는데 하나는 고현지가 건넨 이혼합의서였다. 단, 조항 중간에 원시아는 한 줄을 추가해 두었다. [신씨 가문은 아이의 양육권을 영구적으로 포기한다.] 다른 하나는 신도운이 지난달 받은 건강검진 보고서로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생식 능력 극히 미약, 자녀를 가질 가능성 매우 낮.] 이 보고서는 신도운의 아버지 신철호도 이미 본 상태였다. 그러나 이미 손자가 있어 급할 게 없다고 생각했는지 그는 원시아에게 당분간 신도운에게는 비밀로 하라고 당부했었다. ‘아버님도 이 아이가 앞으로 신씨 성을 쓰지 않게 될 줄은 몰랐겠지.’ 원시아는 입가에 냉소를 머금은 채 현관문을 열었다. 길가에는 파란색 마이바흐 한 대가 오래전부터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문이 열리며 사람이 채 내리기도 전에 한 목소리가 먼저 들려왔다. “시아야, 정말 생각 다 한 거야? 나를 선택하면 나중에 가서 후회해도 소용없어.” 원시아는 숨을 고르고 그의 손을 잡았다. “생각 다 했어... 절대 후회 안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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