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야옹.”
뾰족한 고양이의 울음이 밤하늘을 가르자, 지승호가 들어 올리던 마대 자락이 우뚝 멈췄다.
하정현이 길게 숨을 내쉬었다.
“길고양이였네.”
어둠 속에서 지연우의 손톱이 손바닥 깊숙이 파고들었다. 붉은 피가 손가락 사이로 흘러 마대에 어두운 얼룩을 남겼다.
...
새벽빛이 커튼 틈을 뚫고 방 안으로 스며들었다.
지연우는 다리에 새로 돋은 멍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이게 뭐야?”
그녀가 처참한 상처를 가리키며 낮고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지승호의 시선이 흔들렸다.
“아마... 어젯밤 잠결에 침대에서 굴러떨어진 거 아닐까?”
하정현이 급히 화제를 돌렸다.
“연우야, 다음 주 생일인데 선물 뭐 받고 싶어?”
그는 몸을 낮춰 옛날처럼 다정히 그녀의 손을 감쌌다.
“엄청 성대한 생일 파티 열어 줄까?”
지연우는 14살 이전의 생일을 떠올렸다.
그때 그녀는 맞춤 드레스를 입고 있었고, 지승호는 손수 다이아몬드 티아라를 씌워 주었으며, 하정현은 한쪽 무릎을 꿇고 크리스털 구두를 신겨 주었다.
그러나 강유림이 나타난 뒤 모든 게 달라졌다. 무도회의 주인공은 늘 강유림이었다.
“필요 없어.”
지연우가 차분히 대답했다.
“말도 안 돼!”
두 남자가 동시에 외쳤다. 눈빛에는 진짜 걱정이라도 되는 듯 열기가 어려 있었다.
하정현이 다시 그녀 손을 꼭 잡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네 생일은 꼭 챙길 거야..”
며칠 동안 지승호와 하정현은 새벽부터 밤까지 외출했고, 강유림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지연우는 그들이 분주히 오가는 모습을 차갑게 지켜보다가 드디어 생일을 맞았다.
“연우야, 내가 준비한 드레스랑 보석이야.”
하정현이 정교한 상자를 내려놓았다.
“차에 안전 좌석도 달고 올게. 옷 갈아입으면 바로 출발하자.”
문이 닫히고, 지연우는 침대 위에 떨어진 하정현의 휴대폰을 발견했다.
화면이 켜지는 순간 그녀의 피가 얼어붙었다.
세 사람의 단톡방. 방 이름은 ‘작은 태양과 두 기사’.
가장 최근 메시지는 강유림이 올린 사진이었다.
[정현 오빠, 승호 오빠, 제가 고른 드레스 예쁘죠?]
지연우의 손이 떨렸다. 그녀는 천천히 위로 스크롤 했다.
해외에서 찍은 강유림의 셀카.
지승호가 강유림의 어깨를 감싸안은 채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진.
하정현이 강유림에게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걸어 주는 영상까지...
며칠간의 준비란, 셋이서 유럽 여행을 가기 위한 핑계였다.
그리고 지금 그녀에게 건네진 드레스 목걸이에는 선명하게 증정품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있었다.
눈물이 화면 위에 떨어졌다. 지연우는 기계처럼 휴대폰을 제자리에 돌려놓았다.
하정현이 돌아왔을 때 그녀가 아직 갈아입지 않은 것을 보고 놀랐다. 그가 입을 열기 전, 지연우가 먼저 낮게 말했다.
“내 다리가 너무 흉해서 갈아입기 싫어.”
“그러지 마.”
하정현은 그녀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 쥐었다.
“넌 언제나 내 마음속의 공주야.”
그는 도우미들에게 드레스와 보석을 입히게 하고 직접 휠체어를 밀어 차에 태웠다.
연회장은 황금빛으로 찬란했다. 그러나 누구도 휠체어에 앉은 주인공을 돌아보지 않았다.
지승호는 한순간도 떨어지지 않고 강유림의 케이크 컷팅을 도왔고, 하정현은 그녀의 드레스 자락을 정성껏 고쳐 주었다.
지연우는 방관자처럼, 자신의 생일 연회가 다른 소녀의 쇼로 바뀌는 장면을 지켜보았다.
이때 바닥이 갑자기 요동쳤다.
“지진이다!”
장내가 한순간 아수라장이 되었다.
지연우는 지승호와 하정현이 동시에 강유림 쪽으로 뛰어가는 모습을 보았다.
그녀의 휠체어가 부딪쳐 뒤집혔고, 천장에서 떨어진 구조물이 내려앉는 순간 멀리서 하정현의 절규가 들렸다.
“연우야!”
곧 어둠이 덮쳤다.
“여진이 오고 있어요! 두 분 모두 잔해에 깔렸는데 누구부터 구조할까요?”
구조대원의 다급한 외침이 터졌다.
“지연우 씨가 더 위험합니다. 늦으면 다리 절단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절단하면 되잖아요.”
지승호의 목소리가 차갑게 퍼졌다.
“먼저 강유림부터 살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