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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77화

점점 또렷해진 시선 사이로 멀리서 다가오다가 멈칫하는 해림이 보였다. 얼굴이 발그스름해진 원유희는 가볍게 김신걸을 밀치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김신걸은 차가운 눈빛으로 해림을 힐끗 쳐다보았다. 해림은 울며 겨자 먹기로 다가왔다. “사장님,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김신걸은 검은 눈동자를 멈추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돌려보내. 안 만나.” “중요한 일이 있다고 합니다.” 해림이 말했다. 김신걸의 냉정하고 음침한 시선을 느낀 해림은 별말 없이 고개를 숙이고 물러났다. 원유희는 방문자가 누구인지 묻지도 않고 거절하는 김신걸에게 의아한 듯 물었다. “누군데? 안 가봐도 괜찮은 거야?” 김신걸은 눈썹을 치켜뜨고 그녀를 보았다. “나를 만나려면 사전 예약은 필수지. 예약해도 내 기분에 따라서 만날까 말까 하는데…….” 세 꼬마가 깡충깡충 뛰어오더니 유담이 물었다. “무슨 기분이요?” “아빠, 엄마랑 무슨 비밀 얘기하고 있었더요?” “나도 알고 싶어!” 원유희는 옆에 있던 수건으로 땀이 송골송골 맺힌 애들의 얼굴과 손을 닦아주며 다정하게 말했다. “비밀 얘기는 아니고, 그냥 수다 중인데…….” 삼둥이의 주의력은 곧 테이블 위에 꽂혀 있었다. 그들은 의자에 올라가 고사리 같은 손을 내밀어 디저트를 입에 한 조각씩 넣고 맛있게 먹었다. 오물오물 먹는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 원유희는 입가에 흐뭇한 웃음을 띠며 애들을 넌지시 바라보았다. “방금 다 봤떠요. 엄마 아빠 뽀뽀했잖아요!” 조한의 갑작스러운 발언에 원유희의 얼굴이 수줍음으로 새빨갛게 물들었다. 애들이 봤다니! 화가 난 유희는 김신걸을 째려보았다. 얼굴이 뜨거운 건지 김신걸의 얼굴에는 전혀 어색함이 없었다. 심지어 천연덕스럽게 말을 꺼냈다. “어른들의 일에 꼬마들은 신경 쓰지 마세요.” 원유희는 철면피의 김신걸에 다시 한번 놀랐다. 삼둥이는 정말 자신과 무관한 일인 듯 촵촵거리면서 디저트를 맛있게 먹었다. 이때 김신걸의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슬쩍 발신자번호를 확인한 그는 한쪽으로 가서 전화를 받았다. 원유희는 김신걸이 전화를 받는 뒷모습을 보고 또 어전원 입구 방향을 바라보았다. 이쪽에서 저쪽이 안 보이니 ‘손님'이 누군지는 모르겠다. 김신걸에게 전화한 사람은 누굴까……? 설마, 윤설일까……. 전화로 무슨 얘기를 하는지 전혀 들리지 않았지만, 통화는 바로 끝났다. 자리로 돌아온 김신걸은 아무 일도 없는 듯했다. 이런 모습을 보니 오히려 자꾸 쓸데없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머릿속으로 별의별 막장 드라마들 다 구상해 냈다. 심지어 구치소에서 당했던 일까지 생각나니……. 마음속의 공포가 무의식적으로 용솟음치면서 자신도 모르게 몸서리쳤다. “왜 그래?” 그녀의 안색을 살핀 신걸이 그녀의 손을 잡았다. “손이 좀 차네.” 아직 추위를 느끼기에는 이른 날씨이다. “별것 아니야. 차가운 주스를 마셔서 그런가 봐.” 원유희가 대충 둘러댔다. 주스를 만져보니 확실히 차갑긴 했다. 주스를 옆으로 옮겨 놓더니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얘기했다. “마시지 마.” 그러고는 가정부에게 우유를 데워 오라고 했다. “엄마, 내가 호호 불어 줄게요. 호, 호, 호 춥지 않죠?” 유담이 작은 고사리손으로 엄마의 손을 잡고 작은 입을 삐죽 내밀면서 호호 입김을 불었다. 유담의 귀여운 모습에 원유희는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지었다. “고마워, 유담아.” 그녀의 표정이 좀 좋아진 것을 보고 김신걸은 다소 안심했다. 따뜻하게 데워온 우유를 몇 모금 마신 원유희가 우유잔을 막 내려놓으려고 할 때였다. 유담이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말했다. “엄마, 나도 우유 마시고 싶어요!” 원유희는 컵을 들어 먹였다. 몇 모금 마시고 유담이 머리를 흔들었다. “엄마의 우유만큼 맛있지가 않아요!” “…….” 김신걸의 시선을 의식한 원유희는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집 안으로 들어와서 원유희는 무의식중 입구를 바라보았다. ‘손님’의 모습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아마 갔겠지?’ …… 다음날 김신걸은 볼일이 있어 드레곤 그룹에 갔다. 오후에 잠도 안 오고 김신걸도 집에 없으니 웬지 휑하게 느껴졌다. 유희는 삼둥이가 낮잠을 자자 차 타고 회사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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