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fic
더 많은 컨텐츠를 읽으려면 웹픽 앱을 여세요.

제980화

“나도 아빠처럼 키가 많이 클 거예요!” 조한은 까치발을 하고, 한 손을 자기가 들 수 있는 최대의 높이까지 치켜들었다. “그럼 그래야지, 그렇고말고.” 원유희는 이 상황을 멀뚱멀뚱 쳐다보았다. 애들은 지금 이 남자를 뭐라고 부른 거야? 아빠? ‘아빠’는 김신걸인데? 어떻게 된 거지? 유희의 머리 속이 갑자기 복잡해졌다. 그나저나 이 ‘아빠'의 정체는 뭐야? 자리에서 일어선 표원식은 원유희의 아리송한 표정을 보고 몇 걸음 앞으로 걸어갔다. 그녀와 더욱 가까워졌다. 가까이 다가가자 긴장한 모습이 역력한 유희를 보고 바로 안심시켰다. “나, 나쁜 사람이 아니에요. 두려워하지 마요.” 원유희도 이 남자가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다. 나쁜 사람이었다면 삼둥이가 아빠라고 친근하게 부르지 않았을 테니. “죄송해요, 옛날 일에 대한 기억이 없어요. 그런데…… 애들이 왜 아빠라고 부르죠?” “…….” “우리 무슨 사이인가요?” “예전에 김신걸 씨가 아이의 존재를 몰랐을 때, 유희 씨 혼자서 애들 셋 케어하는 게 쉽지 않다 보니, 가끔 애들을 학교에 데리고 왔어요. 그래서 알게 되었고요…….” 낮고 온화한 표원식의 목소리는 듣는 사람에게 편안한 느낌을 주었다. “오랫동안 함께 지내다 보니 애들이 나를 아빠라고 부르기 시작했어요. 아빠가 없다 보니…….” “아, 그랬군요…….” 원유희가 웃었다. 그녀의 얼굴에 비춰진 청아한 미소를 보며 표원식은 살짝 혼을 뺏긴 듯했다. 그 외에도 많은 것들이 있었다. 예컨대 겪었던 감정적 갈등들, 약혼 준비, 많은 추억들……. 하지만 지금 상황에게 그녀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는다면 기억을 잃은 그녀에게 큰 심적 부담을 줄게 뻔했다. “지난번에, 고마웠어요. 전 이제 괜찮아요.” “그럼 됐어요.” “혹시 선생님이신가요?” 원유희가 물었다. 표원식이 입을 열기도 전에 삼둥이가 다가왔다. 조한이 입을 열었다. “엄마, 아빠는 교당 선생님이에요!” “아…… 교장 선생님……” 원유희는 자신이 기억을 잃기 전 교장을 알고 지냈던 거에 의아했다. 그것도 잠시 곧 말을 건넸다. “이렇게 젊은데, 교장 선생님이라니…… 놀랍습니다.” 표원식은 얼굴에 미소를 지었다. 마치 원유희를 처음 만났을 때로 돌아간 것 같았다. “그리고 잘 생겼더요!” 유담이 한마디 거들었다. “아빠, 이거 아빠 꺼 탕후루에요. 드세요.” 그들이 얘기를 나누는 동안, 삼둥이는 뛰어가서 탕후루 하나를 더 사 왔다. “딸, 딸기 맛이에요. 맛있더요!” “고마워.” 탕후루를 받아 든 표원식을 원유희의 앞에서 맛나게 한 입 베어먹었다. “와아, 엄청 맛있네.” 표원식의 칭찬과 인정을 받은 삼둥이는 기뻐서 어쩔 바를 몰랐다. “아빠, 저랑 같이 놀아요!” 조한이 함께 하자고 손을 끌었다. 삼둥이가 교장 선생님에게 함께 하자고 초대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녀는 심지어 그의 이름도 모르는데……. 짐작건대 이 분이 지난날 틀림없이 자기 가족들을 살뜰히 보살펴 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얘들아, 교장선생님 용무가 바쁘신데, 우리가 시간을 뺏어서는 안 돼.” 원유희가 쑥스러워하며 말했다. “오늘 업무는 이미 끝났으니 괜찮아요.” 표원식이 말했다. 원유희는 표원식, 그리고 세 쌍둥이와 함께 거리 구경에 나섰다. 삼둥이는 가끔 우르르 앞으로 달려갔다가 또 잠시 뒤면 어른들과 함께 손잡고 구경에 나섰다. 상우의 손에 아직 탕후루가 쥐어져 있었다. 조한과 유담은 거의 다 먹어갔다. “왜 안 먹어요?” 표원식이 물었다. 원유희는 그제야 손에 있는 탕후루를 한 입 베어 물었다. 새콤달콤했다. 아이들은 고사하고 어른들도 즐겨 먹을 만했다. 표원식은 원유희가 탕후루를 들고 있는 그 손을 유심히 쳐다보았다. 시계, 팔찌, 결혼 반지. 김명화의 말이 맞았다. 원유희는 정말 김신걸과 결혼했다. 탕후루를 한 입 베어 물고 얼굴을 돌렸을 때 마침 옆에 있는 남자와 눈을 마주쳤다. 그의 눈빛에서 이상함을 느꼈다. “왜 그래요? 무슨 일 있어요?”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물었다. 표원식은 애써 웃음 지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단지 예전의 일을 생각하고 있었을 뿐이에요.” 예전의 일을 꺼내자 원유희도 관심 있는 듯 말을 이었다. “교통사고를 당했어요. 그 사고 이후 기억을 잃었어요. 혹시 저에게 옛날 일 좀 얘기해줄 수 있나요?” “사실 뭐 별로 특별한 것도 없어요…….” 표원식의 마음속에 숨겨둔 감정은, 마치 효모가 발효되듯 가슴에서 팽창하여 폭발할 것만 같았다. 그의 표정을 보며 원유희는 아리송했다. ‘정말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걸까? 아니면 차마 꺼내기 어려운 일인가?’ “어떤 일들은…… 차라리 기억을 안 떠올리는 게 나쁜 일만은 아닌 거 같아요.” 표원식은 숨을 깊이 들이마시며,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는 말을 애써 삼켰다. ‘그녀에게 얘기해, 김신걸이 그녀를 갖고 놀고 있다고, 속이고 있다고…… 현재 이 모든 것이 다 허상이라고! “어떤 일이요?” 표원석의 말에 더욱 뭔가가 느껴져 유희는 저도 모르게 발걸음도 멈추었다. 앞의 삼둥이는 노점상 곳곳을 살피며 깡충깡충 신나게 뛰어다녔다. 천진난만한 그들의 모습은 뒤에 복잡한 어른들의 세계와 선명한 대조를 이루었다. 그녀의 절박한 눈빛을 보는 표원식은 마음속에 고이 숨겨두었던 감정들이 마구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어떤 여자가 길거리에서 절친의 남편이 다른 여자와 바람피우는 장면을 보게 됩니다. 여자는 분노하지만, 절친에게 말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게 되죠. 말하지 않으면, 절친은 계속 행복하게 결혼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데, 만약 알려주면 절친은 지옥을 경험할 테니까요. 심지어 결혼 파탄이라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고요. 유희 씨라면, 절친에게 사실대로 얘기해줄 건가요?” 표원식은 판단의 잣대를 그녀에게 떠넘겼다. 원유희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방금 이야기 속의 주인공을 도와 선택하라는 거야, 아니면 자신더러 선택하라는 거야? 머릿속으로 바로 그 상황에 자기, 김신걸, 윤설 세 사람을 대입시켰다……. 절친은 자신이고, 남편은 김신걸, 바람 핀 여자는 윤설이다. 원유희의 마음은 칼로 도려내는 것처럼 쓰리고 아파왔다. 괴로운 나머지 몸을 웅크렸다. 김신걸과 윤설 사이에 썸씽이 있다는 걸 그녀는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 입을 통해 전해진 이야기는 잔인한 화면이 되어 자기 앞에 생생하게 펼쳐지는 듯했다……. “무슨 얘기를 하는 거야?” 느닷없이 들려온 남성의 낮고 차가운 목소리가 경직된 화면을 끊고 분위기마저 압박해 왔다. 원유희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김신걸의 그림자가 다가와 그녀의 가느다란 허리를 끌어안은 뒤였다. 그녀의 내려다보는 그의 눈빛은 친근하면서도 카리스마가 넘쳤다. 김신걸이 여기에 나타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그녀는 무의식중에 표원식을 살폈다. 표원식은 눈빛은 당당했고 냉담했다. 김신걸의 모든 신경은 표원식에게 쏠려 있었다. 검은 눈동자에는 넘볼 수 없는 포악한 기운이 서려 있었다. 하지만 목소리는 애써 침착했다. “무슨 용무가 있어 내 아내를 찾아온 거지?” 안경 뒤에 숨겨진 표원식의 눈빛이 날카롭게 번뜩였다. 양손의 주먹을 불끈 쥔 그는 대놓고 사실을 왜곡하는 김신걸이 가소로웠다. 도대체 언제까지 사기극을 계속할 셈인가? 하지만 이 자리에서 할 수 없는 말들이 있는 걸 알기에 그는 꽉 쥐었던 주먹을 놓았다. “그냥 우연히 만났어.” 표원식은 원유희에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달려오는 세 쌍둥이를 향해 몸을 낮췄다. “아빠 먼저 갈게. 꼬맹이들 우리 또 보자.” “아빠 안녕!” 세 쌍둥이는 손을 흔들며, 표원식의 뒷모습이 인파 속에서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았다. 아빠 김신걸의 무서운 눈빛을 느끼고서야, 공포에 질린 놀란 표정으로 손을 내려놓았다.

© Webfic, 판권 소유

DIANZHONG TECHNOLOGY SINGAPORE PTE. LT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