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81화
“밥 먹으러 가자.”
김신걸은 화를 억누르고, 원유희와 삼둥이를 데리고 차에 올랐다.
집으로 돌아가는 차에서 원유희는 삼둥이가 이상하게 얌전하다는 것을 느꼈다. 차를 타고서도 늘 조잘거리던 세 녀석이 웬일로 자기한테 기대어 찍소리하지 않고 있다. 마치 잘못을 저지른 애들처럼 온순하기 그지없었다.
유희는 영문을 몰랐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원유희는 아이들에게 물었다.
세 꼬마가 일제히 고개를 저었다.
김신걸은 검은 눈동자로 매섭게 애들을 째려보았다.
“피곤했나 봐!”
조한은 빨갛게 상기된 작은 얼굴을 하고 말을 꾹 참고 있었다.
다른 두 녀석도 고개를 끄덕이며, 정말 피곤하다는 뜻을 밝혔다.
원유희는 얼굴을 돌려 김신걸을 보았다. 얼굴색은 예전과 별반 다르지는 않았다. 짙게 드리운 어두운 안색은 왠지 모르게 심상찮은 느낌이 들었다.
어전원에 도착한 다섯 식구는 주방에서 밥을 먹었다.
식사를 마친 원유희는 화장실에 갔다.
세 녀석도 따라가려고 하자 김신걸이 불러 세웠다.
“동작 그만.”
원유희는 고개를 돌려 그들을 살펴보았다. 기억을 잃은 뒤 사고력이 예전에 비해 많이 떨어졌다.
“너희들도 화장실에 갈 거니?”
“안 간대.”
김신걸이 대신 답했다.
“다녀와.”
원유희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몸을 돌려 화장실로 갔다.
화장실 문이 닫히자, 검은 그림자가 세 아이에게 다가왔다. 삼둥이들은 벌벌 떨었다.
“아빠…….”
“오늘은 애교 안 통해. 스리슬쩍 넘어갈 생각하지 마.”
김신걸의 위엄이 드러났다.
합죽이가 된 세 꼬마는 작은 입을 꼭 다물고 있다.
“너희 둘, 서재에 가서 벽 보고 반성해.”
김신걸이 조한과 상우에게 말했다.
“우…… 우리 달못 없더요.”
김신걸의 기에 주눅 들지 않고 조한은 승복하지 않는 표정을 지었다.
“내가 너희들에게 표원식 아저씨와 만나지 말랬지? “
김신걸이 위압적으로 물었다.
“아빠, 오늘 우연히 만…….”
상우가 상황 설명을 시도했다.
“우연하게 만났다고 같이 쇼핑하고 놀아?”
김신걸은 엄하게 다그쳤다.
“서재 안 가? 맞고 갈래? 그냥 갈래?”
조한과 상우는 씩씩거리며 서재로 몸을 돌렸다.
멀리서도 쾅, 하는 기분 나쁘게 문 닫는 소리가 들렸다.
확인할 필요도 없다. 조한일 것이다.
요 녀석, 어린 녀석이 성격이 만만치가 않다.
지금 만 두 살 나이 때 잡지 않으면 커서 더욱더 큰일이다.
유담은 귀엽게 고개를 들어 아빠를 바라보았다.
“아빠, 나 까먹은 거 아니지요?”
“너는 방에 가서 씻고 자.”
김신걸이 말했다.
“네…….”
유담은 짧은 다리로 계단을 열심히 올라갔다.
속으로 생각했다.
‘내 벌칙은 오빠들과는 좀 다르구나!’
원유희는 계단으로 올라가는 유담을 보며 물었다.
“유담이 어디 가?”
“졸리대. 자러 간대.”
조한과 상우도 안 보이자, 그들도 방으로 돌아간 줄 알고 말했다.
“그럼 나도 방으로 돌아간다.”
“음.”
원유희는 어둠과 침울한 안색의 김신걸을 살피며 그가 대체 왜 이런지 도무지 연유를 몰라 답답했다.
화났나?
왜? 애들이 심기를 건드렸나?
원유희가 위층으로 올라가자, 김신걸은 몸을 일으켜 서재로 향했다.
문이 열리자, 사무용 의자를 빙글빙글 돌리며 놀던 조한과 소파 테이블에 엎드려 놀던 상우와 곧장 벽 쪽으로 달려갔다.
개구쟁이들을 본 김신걸은 터벅터벅 걸어가 그들의 뒤에 서서 무표정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이리 와.”
조한과 상우는 괜찮은 줄 알고 돌아서서 똑바로 서서 김신걸을 쳐다보았다.
조한은 아직 좀 껄끄러운 눈빛이었다. 마치 지금 나에게 사과해도 나는 당신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김신걸은 서랍에서 종이와 펜을, 책꽂이에서 금융 관련 책 한 권을 꺼내 소파에 앉아 책을 펼쳤다.
“베껴 써.”
빼곡하게 적혀 있는 글씨를 본 조한과 상우의 볼살은 만두처럼 뾰로통해졌다.
“왜, 못하겠어?”
김신걸이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