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83화
“아빠, 설마 지금 질투하는 거에요? 다음에는 아빠라고 부르지 않을게요!”
조한이 패기 있게 말했다.
“우리도 알고 있더요. 우리 아빠는 한 명뿐이에요.”
상우가 말했다.
김신걸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부르지 마. 앞으로 그 아저씨 만나면 안 돼!”
“아빠, 억지쟁이!”
조한이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
“계속 베끼고 싶어?”
김신걸이 협박했다.
조한과 상우의 작은 얼굴이 공포에 질려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요. 싫어요!”
김신걸이 이 녀석들을 못 잡을 리 없다.
“방에 들어가 자.”
꼬마 녀석들이 부리나케 서재를 빠져나와 짧은 다리를 빨리 움직였다.
원유희는 아이들이 처벌받은 것에 대해 전혀 몰랐다.
삼둥이도 유희에게 입도 뻥긋하지 않았다. 결국 그들도 아빠가 두려웠기 때문이다!
어쩌면 또 그렇게 어려운 글자를 베껴 써야 할지도 모르니!
……
김신걸은 요 며칠 비교적 바빴다. 원유희는 대부분 시간을 어전원에서 보냈고 외출은 전혀 하지 않았다.
표원식을 찾아 지난 일을 물어보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때로는 모르는 것이 오히려 속이 편하다.
다만 이런 일상의 평온함이 또 무언가가 부족한 것 같았다. 그녀를 우울하게 했다.
원유희는 아이들이 즐겁게 노는 것을 보고 혼자 거실로 돌아갔다.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켜고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다가 한창 방송되고 있는 연예계 뉴스를 보았다. 피아노 옆에 우아하게 서 있는 윤설은 여러 매체의 인터뷰와 사진에 응하고 있었다. 조명 속에 비친 그녀의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고 고아해 보였다.
새로 구입한 피아노와의 대면식 같은 이벤트였다.
“윤설 씨, 갈수록 점점 더 아름다워지고 있네요. 연예계 비주얼의 끝판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미모면 미모, 재주면 재주, 뭐 하나 부족한 게 없네요. 다음 주에 A시에서 연주회가 있다고 들었는데, 그런가요?”
환하게 웃고 있는 윤설의 모습이 유난히 눈부셨다.
“호호, 역시 일간지 기자님들이라 그런지 소식이 참 빠르시군요. 아직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윤설 씨, 옆에 있는 이 피아노, 새로 구입하신 겁니까? 이 피아노의 가격이 천문학적이라고 하던데요…….”
윤설은 손으로 피아노를 쓰다듬었다.
“네. 맞아요. 새로 샀어요.”
“설마 누군가의 선물은 아닐까요?”
한 일간지 기자가 다소 애매한 질문을 던졌다.
윤설은 신비롭게 웃었다.
“맞혀봐요.”
“누군가 선물한 게 틀림없죠? 듣자니 전에도 피아노를 선물한 사람이 있다던데…… 혹시 남자친구인가요?”
“약혼했다는 얘기도 들었는데, 혹시 약혼자가 준 선물인가요?”
윤설의 개인 사생활에 대해 좀 캐내고 싶은 게 분명했다.
“제가 말씀드린다고 해도 보도 안 될걸요.”
윤설이 웃으며 말했다. 기자들도 윤설의 말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별이 안 되는 모양인지
그녀의 말에 대꾸하거나 추가 질문하는 기자들은 없었다. 모두 한동안 멍하게 있었다.
텔레비전을 끈 원유희는 손발이 차가워지는 걸 느꼈다. 일어서서 밖으로 나가 가드레일에 기대에 서 있었다.
윤설이 말한, 피아노를 선물한 사람은…… 아마도 김신걸일 것이다.
어전원에 있던 피아노랑 똑같았다.
게다가 윤설은 김신걸과 약혼까지 했었으니…….
멍하니 있는데 멀리서 롤스로이스 한 대가 들어와 계단 아래에 멈추는 것이 보였다.
그녀는 차에서 내린 김신걸이 한 걸음 한 걸음 계단을 밟으며 차분하게 올라오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집에 돌아온 김신걸은 멀리서 놀고 있는 아이들을 보지 못한 듯했다. 검은 눈동자는 지척에 있는 원유희로만 꽉 찼다.
“날 기다리고 있었어?”
원유희는 시선을 떨구었다.
“잠깐 여기에 서 있었을 뿐이야…….”
김신걸은 그녀의 가녀린 허리를 거칠게 껴안아 자기의 탄탄한 아랫배 쪽으로 눌렀다. 검은 눈동자는 원유희의 모든 것을 훤히 꿰뚫어 보는 듯했다.
“정말 그런 거야?”
원유희의 얼굴이 약간 뜨거웠다.
“누가 보면 어쩌려고…….”
“누가 감히 본다고?”
김신걸은 거칠게 다가가 그녀의 말랑말랑한 작은 입술을 깨물었다. 원유희는 아파서 자기도 모르게 신음소리를 냈다.
이로 인해 얼굴이 더욱 빨개지고 가슴도 쿵쾅 두근거렸다.
곧 김신걸이 말을 꺼냈다.
“내일 A시에 다녀와야 해.”
원유희는 흠칫 놀랐다.
“며칠이나…… 갈 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