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87화
차에 오르려는 김신걸은 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원유희 앞으로 다가왔다.
원유희는 그가 무슨 일을 당부하려는 줄 알았다. 그런데 뜻밖에도 김신걸은 두 손으로 삼둥이의 눈을 가리고는 얇은 입술로 그녀의 작은 입을 덮쳤다. 달콤한 입맞춤에 원유희는 심장이 멈출 것 같았다.
눈앞이 갑자기 어두워졌다가 밝아진 삼둥이는 이 상황이 어리둥절하기만 했다.
아빠의 차는 떠났는데, 엄마의 얼굴은 발그스레 해졌다. 마치 맛있는 빨간 사과처럼.
원유희는 오전에 아이들과 함께 거실에서 그림을 그리며 놀았다.
핸드폰이 울리자 확인해 보니 김신걸이 걸어온 전화다.
그녀는 핸드폰을 들고 거실 밖을 나가면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오늘은 점심은 집에 안 들를거야.”
“음, 회사에서 먹을 거야?”
원유희가 물었다.
“응, 오후에 별일 없으면 일찍 들어갈게.”
“응, 일 봐.”
“착하네. 말도 잘 듣고…….”
“나…… 아기 아닌데…….”
원유희는 김신걸이 자신을 애 취급하는 것처럼 느꼈다.
“어리진 않지.”
김신걸의 목소리는 낮고 침착했다.
왠지 모르지만, 그의 말이 좀 이상하게 들렸다. 뭐가 이상한지는 잘 모르겠으나.
전화를 끊고 원유희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사모님, 지금 사장님 생각하고 있죠? 보고 싶은가보다…….”
임민정이 다가와 웃으며 물었다.
원유희는 얼굴이 뜨거워졌다.
“아니에요, 보고 싶긴요…….”
“보고 싶으면, 회사에 가면 되죠.”
임민정이 말했다.
“바쁜 사람인데, 내가 가면 방해되죠.”
원유희도 가고 싶지만, 또 한편으로 김신걸의 일을 방해할까 봐 두려웠다.
임민정이 아이디어를 냈다.
“사장님에게 도시락을 챙겨가는 건 어때요? 사장님 일도 바쁘다고 식사 거르면 안 될 텐데…….”
맞는 얘기다. 아무리 바빠도 끼니는 챙겨야 하니, 도시락 챙겨가는 구실이 그럴싸해 보였다.
그런데, 한 번도 간 적이 없으니 덜컥 겁이 나기도…….
“사모님, 가세요! 사장님이 사모님을 보시면 틀림없이 좋아하실 거예요!”
임민정은 그녀를 주방 쪽으로 끌고 갔다.
“정말요?”
원유희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
“물론이죠. 남자의 마음을 잡으려면 먼저 그의 입맛을 잡으라는 얘기도 있잖아요…….”
결국 해림의 도움으로 김신걸에게 줄 점심 도시락을 준비했다. 푹 곤 국이랑, 밥에 정교한 디저트까지 도시락통에 담았다.
“사장님은 위장이 안 좋으니, 집에서 끓인 탕국이 좋을 거예요. 사 먹는 건 아무래도 조미료도 많이 들어가고, 정성도 부족하죠…….”
해림도 덩달아 신이 났다.
사장님과 사모님 사이가 점점 좋아지는 걸 보니 더할 나위 없이 기뻤다.
“아이들을 데리고 갈게요.”
원유희가 말했다. 애들과 함께라면 왠지 용기가 생길 것 같았다.
임민정은 말렸다.
“사모님, 혼자 가셔요. 애들을 데리고 가면 사장님과 어떻게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겠어요?”
해림도 웃으며 말했다.
“맞는 말이에요. 사모님 혼자 가시는 게 좋겠어요.”
원유희는 점심 도시락을 챙겨서 어전원을 떠났다.
30여 분 뒤 드래곤 그룹에 도착했다. 운전기사가 도시락을 챙겨주었다.
“사모님, 제가 가져다드리겠습니다.”
“아니에요, 제가 할게요.”
원유희는 거절했다. 직접 하고 싶었다.
도시락을 들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김신걸의 전용 엘리베이터로 최고층까지 다이렉트로 도착했다.
사무실 입구에 도착해서 노크했는데 아무 응답이 없자, 문을 열고 들어갔다.
김신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도시락을 소파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신걸의 모습을 찾아 기웃거렸다.
“신걸아, 우리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니야? 유희가 알면 속상할 텐데…….”
윤설의 목소리가 휴게실에서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