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89화
“사모님, 다른 사람한테 말씀하시는 건 아니겠죠? 사장님이 절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
임민정이 말했다.
심장이 찢어질 것 같았지만, 임민정의 처지를 고려해 살며시 얘기했다.
“걱정하지 마요. 얘기하지 않을 거예요. 어전원에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데 나에게 이런 얘기를 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요. 고마워요. 솔직하게 얘기해줘서…….”
“저도 말하면 안 되는데……. 사모님이 속고 있는 게 너무 딱해서…… 더 이상 보고만 있을 수 없었어요.”
임민정은 말했다.
“사장님은 윤설 아가씨를 사랑하면서, 왜 사모님과 결혼했는지 저는 도무지 이해가 안 돼요. 이러면 두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셈인데…….”
원유희는 슬픈 표정으로 먼 곳을 바라보았다.
왜 그녀와 결혼했을까?
사무실에서 똑똑히 들었다. 김신걸은 윤설의 핍박에 못 이겨 자신과 결혼했다고.
처음에는 그래도 애들 때문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녀의 결혼은 그들의 시주품이다. 내키지 않으면 언제든지 빼앗아 갈 수 있는…….
“사모님, 괜찮으세요?”
임민정은 관심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아니요…….”
거실에 들어서니 아이들은 지금 밥 먹는 중이라고 임민정이 말해주었다.
그래서 곧장 방으로 올라갔다.
마음이 어지럽고 아팠다.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자신을 끌고 땅속으로 깊숙이 들어가는 것 같았다. 지옥까지.
멍때리고 있는데 삼둥이가 방으로 뛰어 들어왔다.
“엄마!”
“엄마!”
“엄마!”
원유희는 정신을 가다듬고 억지웃음을 지으며 애들과 장난쳤다.
“밥은 다 먹었어?”
“엄마 밥 먹었더요?”
조한이 물었다.
유담은 약삭빠르게 말했다.
“엄마가 아빠 도시락 배달 갔다고 해림 아더씨가 얘기해줬닪아. 그러니까 틀림없이 아빠랑 같이 밥 먹었지…….”
“맞아!”
상우도 동조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원유희는 그의 작은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래, 먹었어.”
아무 것도 먹지 않았지만, 충격으로 인해 밥 생각도 없었다.
자신이 보고 들은 것들은 말하고 싶지도 않았다. 남편에게 무시당한 걸 얘기해 봤자 자기 얼굴에 침 뱉기다. 오히려 더욱 큰 굴욕만 줄 뿐이다.
“엄마, 식사 마쳤으면 나가서 산책해요!”
“응, 엄마, 우리 나비 잡으러 가요!”
“정원에 있더요!”
원유희는 애들에게 끌려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그러고는 그들과 함께 정원에서 나비 잡기 놀이를 했다.
오빠들은 동생에게 나비를 잡아주고, 유담은 엄마의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나비에게 렌즈를 맞추고 막 촬영 버튼을 누르려는 순간 나비가 훨훨 날아가 버렸다.
“아! 가지 마, 나비야…….”
유담은 큰 눈을 동그랗게 부릅떴다.
“가까이 가지 말고, 여기 서서 카메라를 렌즈를 당기면 나비가 도망가지 않을 거야.”
원유희가 그녀에게 가르쳤다.
“엄마, 알겠더요.”
유담은 곧잘 따라 했다. 한 손에는 휴대전화를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렌즈를 조절해 가며 나비를 렌즈 안에 담았다.
새끼손가락이 촬영 버튼을 누르려고 할 때, 영상전화가 걸려 와 단번에 수신 버튼을 눌러 버렸다.
화면이 번쩍이고 김신걸이 영상에 나타났다.
순간 깜짝 놀란 유담이 아빠인 걸 확인하고 곧 상기된 목소리로 불렀다.
“아! 아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