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92화
원유희는 눈빛이 흔들렸고 가볍게 입술을 깨물더니 말하지 않았다. 그러자 김신걸의 나지막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원유희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김신걸을 쳐다보았다.
“너…… 웃지 마.”
“안 웃었어."
“웃었잖아…….”
“봤어?”
김신걸은 원유희를 놀리기 시작했다.
“들었어…….”
원유희는 갑자기 긴가민가해졌다. 김신걸은 그렇게 쉽게 감정을 다 얼굴에 드러내는 성격이 아니었기에 방금 웃음소리는 그냥 착각인가 싶었다.
김신걸은 큰 손으로 원유희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김신걸의 손보다도 작은 원유희의 작은 얼굴은 지금 눈물범벅이 되어 엄청나게 불쌍해 보였고 김신걸의 가슴을 아프게 만들었다.
“어디 가지 않았고 그냥 먹을 것을 가지러 갔어, 너 좀 먹으라고.”
원유희는 침대 머리맡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무언가 한 그릇이 놓여 있었는데 보양식인 게 분명했다. 오후 되면 디저트와 함께 간단한 보양식이 계속 있었기 때문이다.
“설탕 넣었어?”
원유희는 작은 소리로 물었다.
김신걸은 그릇을 가져와 한 숟가락을 파서 원유희에게 먹어주려 했다.
“먹어봐.”
원유희는 한입 먹었더니 단맛을 느꼈다.
“넣었네.”
“진짜? 나도 한번 먹어볼게.”
원유희는 김신걸이 당연히 보양식을 먹어볼 거라 생각했는데 자기의 입술을 맛볼 거라고 상상도 못 했다.
한참 후에야 김신걸은 원유희의 입술을 놓아주었고 자기의 얇은 입술을 살짝 핥았다.
“넣었네.”
원유희는 시선을 돌리고 얼굴이 엄청나게 빨갛게 달아올랐다.
원유희는 김신걸이 떠먹여 주는 보양식을 한입 한입 먹으면서 방금 그가 웃었다는 것을 확신했다. 자기가 생각해도 조금 전 자기 모습이 너무나도 우스웠기 때문이다.
생각할수록 화가 난 원유희는 손을 뻗어 김신걸의 가슴을 콩 때렸다.
“싫어, 너랑 얘기 안 할 거야…….”
“그럼 누구랑 얘기하고 싶은데? 응?”
김신걸은 원유희의 작은 손을 꼭 잡고 원유희를 쳐다봤다.
“얘기 안 해줄 거야.”
원유희는 입을 삐죽 내밀며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다운된 톤으로 물었다.
“방금…… 누구랑 통화한 거야?”
“고건.”
“일하러 가야 해?”
“내일 다시 얘기하기로 했어.”
김신걸이 나가자 원유희는 참지 못하고 침대 머리맡에 놓인 핸드폰을 쳐다봤다. 원유희는 김신걸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머릿속엔 건드려선 안 된다고 생각하고 손은 저도 모르게 그쪽으로 향했다.
핸드폰엔 비밀번호가 없었기에 원유희는 손쉽게 통화 기록을 확인할 수 있었다.
원유희는 최근 통화 기록을 보았는데 ‘설이’라고 적혀있었다. 이를 보자 원유희의 마음이 철렁했다.
‘김신걸이…… 날 속였네. 좋아하지 않은 사람한테는 사실조차 얘기해주지 않는구나…….’
다음날, 김신걸은 오전에 나가지 않았고 점심을 먹고 드래곤 그룹에 갔다.
원유희는 아이들이 낮잠을 잔 뒤 멍하니 앉아 있었다. 김신걸이 곁에 없자 원유희는 그가 윤설을 찾으러 간 게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원유희는 홀로 외롭게 남겨졌고 마음이 답답하고 쓸쓸했다. 그래서 기분 전환하고 겸사겸사 주의력도 다른 곳으로 돌리려고 밖에 나가 돌아보기로 마음먹었다. 암튼 김신걸이랑 윤설이 계속 같이 있다는 생각에 잡혀 마음고생하고 싶지 않았다.
원유희는 홀로 전에 있었던 동네로 갔다. 그곳엔 이미 다 원래대로 회복되었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 같았다.
원유희는 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갔는데 전에 엉망진창으로 된 모습은 다 사라졌고 먼지 하나 없이 깨끗하게 정리되었다.
‘누가 청소해 준 거야?’
이때 가방에 있던 핸드폰이 울렸고 원유희는 핸드폰을 꺼내자 엄혜정한테서 걸려 온 전화임을 확인했다.
전에도 엄혜정이라고 저장된 번호를 본 적이 있었으나 원유희는 먼저 연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오서진이 얘기해줬기에 원유희는 엄혜정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여보세요?”
“유희야, 나 혜정이야, 집이야?”
“나 지금 외숙모 집이야.”
“우리 지금 가도 돼?”
“응.”
원유희는 정확한 주소를 알려준 후 전화를 끊었다. 원유희는 엄혜정이 어떤 사람인지 기억나지 않았지만 자기 비서를 한 적도 있었고 자기 삼촌의 아내가 된 사람이기에 틀림없이 아주 좋은 여자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근데 왜 우리라고 한거지? 또 누가 같이 오는가?’
원유희는 일어나서 대접할 만한 것이 있나 봤다.
‘아니면 다 온 다음에 같이 어전원에 갈까?’
대접할 만한 것이 없는 것을 보자 원유희는 대충 시간 맞춰 아래로 내려가 기다렸다.
밖에 일하러 온 원봉은 마침 이 동네에 왔고 차에서 내린 후 주위에서 돌아다녔다.
라인은 아직 행방불명인 상태였고 강에 빠졌다고 해서 반드시 죽었다고 장담할 수 없었기에 만일을 대비해 수사를 계속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아파트 아래에 서 있는 원유희와 마주치게 되었다.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아 보였다.
막 걸어가려고 할 때, 벤틀리 차 한 대가 원유희쪽으로 가고 있었는데 엄청나게 익숙해 보이는 차였다.
그러다가 차량번호를 보자 원봉은 얼굴색이 크게 변했고 바로 숨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