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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새벽 첫 햇살이 땅에 닿을 때 주경진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녀를 내려다보는 담담한 그의 눈빛은 빙하처럼 차가웠다. “잘못한 거 알겠어?” 은성미의 목소리는 아주 작았다. “잘못했어요.” 그녀는 정말 잘못했음을 알았다. 주경진을 사랑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그와 결혼하기로 고집했던 순간부터, 모든 것이 잘못이었다. 주경진의 얼굴에 기색이 조금 나아졌다. 그는 앞으로 걸어 나가며 말했다. “가자. 집에 데려다줄게.” 가는 길 내내 말없이 그녀를 집 앞에 내려주었다. 차에서 내릴 때 그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이런 헛된 짓 하지 마. 은성미, 내가 너에게 약속한 것은 변하지 않아. 네가 좋은 아내, 좋은 엄마가 되어주기만 하면 아무도 네 자리를 위협하지 못할 거야.” “알겠어요.” 은성미의 목소리는 매우 담담했다. 그녀는 그대로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주호영과 주민영의 방을 지나갈 때 그녀는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었다. “아림 이모, 우리 계획대로 될까요? 엄마가 정말 이사 가서 다시는 우리한테 잔소리 안 하는 거죠?” “아림 이모, 엄마가 가면 저 다시는 숙제 안 할 거예요. 과자 잔뜩 먹고 TV도 오래 볼 거예요...” 은성미의 발걸음은 잠깐 멈췄을 뿐 이내 입가에 미소를 띠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그녀는 짐을 챙겨 부모님이 계시는 집으로 돌아가서 부모님께 모든 일을 설명하고 작별 인사를 했다. 그녀는 법원에 가서 이혼 서류를 받고 바로 공항으로 갈 예정이었다. 햇살이 눈 부셨다. 그녀가 길을 따라 천천히 걷고 있을 때 주경진의 차가 옆에 멈춰 섰다. 창문이 내려지더니 강아림이 조수석에 앉아 꽃다발을 안고 그녀를 도발적으로 바라봤다. 주경진이 무표정하게 명령했다. “차에 타.” 은성미는 움직이지 않았다. 주경진은 차에서 내려 그녀 곁으로 다가와 미간을 찌푸리며 그녀의 손에 든 짐을 건네받았다. “이 짐 들고 어디 가?” 짐이 차에 실리는 것을 보자 은성미는 뒷좌석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며칠 친정에서 지낼 거예요.” 주경진은 몇 초간 침묵하더니 차에 시동을 걸었다. “그래, 가서 잘 반성하고 마음을 가라앉히도록 해.” 참 우스웠다. 그는 그녀가 집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는 것이다. 은성미는 침묵하며 핑계를 만들어 내려달라고 할까 생각했다. 차가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맞은편에서 택시 한 대가 통제 불능으로 그들에게 돌진해 왔다. 빵빵... 날카로운 경적이 끊이지 않았다. 주경진이 급하게 핸들을 꺾었지만 차는 택시에 부딪혀 날아갔다. 유리 파편이 깨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은성미의 팔과 이마에 격렬한 통증이 느껴졌고 따뜻한 피가 솟구쳤다. 의식이 흐릿해질 때, 그녀는 주경진이 다급하게 차에서 내려 운전석으로 달려가 강아림을 안아 드는 것을 보았다. 그의 목소리는 떨림과 공포로 가득했다. “아림아, 괜찮아?” “괜찮아요.” 강아림이 웃으며 그를 안심시켰다. “유리에 살짝 베였을 뿐이에요. 아주 작은 상처예요.” 그녀는 주경진이 눈물을 글썽이며 강아림을 품에 안는 것을 봤다. 마치 그녀를 뼈와 핏속에 녹여낼 듯했다. “다행이다... 아림아, 이제 너를 더는 잃을 수 없어... 병원에 데려다줄게. 차는 내가 사람 불러서 처리하면 돼.” 그의 입술이 그녀의 이마에 닿았다. 그리고 그녀를 품에 안고 부축하며 걸어갔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는 그녀를 돌아보지 않았다. 아마 이미 그녀를 잊었을 것이다. 은성미가 다시 눈을 떴을 때는 병원이었다. 이마와 팔에는 붕대가 감겨 있었고 캐리어는 그녀 옆에 놓여 있었다.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간호사에게서 사고 운전자가 자신을 병원에 데려다주었다는 사실을 들었다. 은성미는 짐을 들고 의료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퇴원 절차를 밟았다. 급하게 달려, 그녀는 법원 업무 종료 시각 전에 이혼 서류를 받았다. 그녀는 자신의 것만 챙겨서 주경진의 서류와 그의 직장 전화번호를 직원에게 남겼다. “바쁘시겠지만, 시간 나실 때 연락하셔서 받아 가시도록 전해주세요.” 법원을 나설 때 석양이 도시 가장자리에 걸려 있어 거리 행인들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그녀는 입구에 서서 잠시 바라봤다. 퇴근한 젊은 부부가 손을 잡고 책가방을 멘 두 아이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멀리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갑자기 무너져 내려 길바닥에 주저앉아 소리 죽여 울었다. 새벽, 남쪽으로 향하는 비행기가 천천히 이륙했다. 창가에 앉은 은성미는 밤하늘에 검게 물든 도시를 바라보며 가벼운 숨을 내쉬었다. 60년간 그녀를 옭아매던 굴레가, 마침내 이 순간에 풀리고 먼지 속으로 사라졌다. ‘이번 생에는 오롯이 자신만을 위해 살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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