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5화
비록 박해은이 해외에서 예상치 못한 임신을 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때 고태빈은 그녀를 단 한 순간도 낮춰 본 적이 없었다.
그 시절 그의 눈에 비친 박해은은 더없이 순수했고 신비로웠으며 손끝에 스치기만 해도 깨져 사라질 것 같은 환영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모든 비극은 결국 그의 끝없는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탐욕, 방심, 그리고 가장 소중했던 서규영을 스스로 놓아버린 어리석은 선택...
그 모든 결과가 쌓여 지금의 그는 정말로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빈 껍데기 같은 사람이 되어 있었다.
...
회사 건물을 나서던 고태빈은 문 앞에서 잠시 발걸음을 멈춰 섰다.
정말로... 어디로 가야 할지조차 떠오르지 않았다.
머릿속에는 같은 문장만 수백 번, 수천 번도 넘게 맴돌았다.
‘규영이에게 전화라도 해볼까?’
하지만 현실의 차가운 벽 앞에서 그는 그마저도 감히 시도할 수 없었다.
서규영은 더 이상 고태빈을 사랑하지 않는다.
그녀는 하늘이 그에게 단 한 번 내려준 유일한 행운이었고 그런 행운은 인생에서 단 한 번뿐이었다.
그는 그제야 비로소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가슴 깊은 곳에서 숨조차 쉬기 힘들 만큼 견딜 수 없는 그리움이 밀려왔다.
...
결국 그는 3년 동안 그녀와 함께 살았던 그 집으로 향했다.
다행히 시스템에는 아직 그의 옛 얼굴 정보가 남아 있어 문제없이 단지를 통과할 수 있었다.
그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익숙한 층수를 누르며 깊게 숨을 들이켰다.
버려졌던 기억들, 잃어버린 시간들, 그리고 마음속 깊은 곳에 잠들어 있던 감정들까지 모두 조금씩 되살아났다.
서규영은 몇 달 전에 이 집을 싼값에 팔았다.
해외에서 귀국한 화교 투자자가 샀다는 이야기가 돌았지만 단지 안을 지나며 본 창문들은 모두 불이 꺼져 있었다.
띵동.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그는 천천히 걸어 나와 익숙한 현관 앞에 섰다.
하지만 문은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지문 인식도 잠금장치도 모두 교체된 상태였다.
당연히 그는 들어갈 수 없었다.
‘딱 한 번만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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