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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아니면... 네가 내 욕구라도 채워줄래?” 백연은 장난스러운 눈길로 백진우의 부어오른 얼굴을 훑고 천천히 그의 아랫배로 시선을 내리자 백진우의 동공이 움찔했다. 그녀가 이런 말을 할 줄은 상상도 못 한 표정이었다. 그가 몸을 뒤로 물릴 때 백연은 그의 옷자락을 잡아 위로 살짝 올렸다. 마른 몸이 그대로 백연의 눈앞에 드러났다. 허리와 배에는 얽히고설킨 상처가 가득했다. 어떤 건 아물었고, 어떤 건 아직 살이 벌어져 있는 상태였다. 이 흉측한 상처들은 모두 ‘그녀’, 바로 그 악독한 양누나가 남긴 흔적이었다. 백연은 눈빛을 어둡게 내리깔며 낮게 말했다. “추하다.” 손을 놓자 옷자락이 다시 떨어져 추한 상처를 가렸다. 백진우는 주먹을 꽉 쥐며 당장이라도 폭발하고 싶은 충동을 억눌렀다. 무슨 자격으로 ‘추하다’라고 말하는지, 무슨 자격으로 그의 몸을 품평하는지 몰랐고 너무 어처구니가 없었다. 하지만... 자신의 계획을 떠올린 순간 백진우는 다시 침착해졌다. 이 잔인하고 오만한 여자는 그를 역겹고 하찮은 존재로 여길 뿐이다. 어제 그녀가 말한 대로 그녀 따위 때문에 자신의 인생을 망칠 필요는 없었으니 백진우는 방식을 바꿀 것이다. 그녀를 자신이 살던 더러운 진흙탕 세계로 끌어내려 자신이 겪었던 고통을 백 배, 천 배로 되갚아줄 것이다. 밤이 되었다. 백연은 유준의 팔짱을 끼고 블랙의 프라이빗 룸으로 들어섰다. 오늘은 주재현의 절친 최도영의 생일이었다. 이들만의 모임이니 원래 백연 같은 외부인은 들어올 수 없는 자리였다. 백연이 정보를 캐낸 결과 최도영의 주변에서 가장 접근하기 쉬운 인물이 바로 유준이었다. 유준은 바람기 많고 스포츠카와 여자를 좋아하는 플레이보이였다. 백연이 먼저 유혹하자 거절할 이유는 없었던지라 결국 백연과 함께 등장했다. 룸 앞에서 유준은 그녀의 귀에 가까이 입술을 대며 남이 보기에는 언뜻 다정해 보이지만 낮게 경고했다. “백연 씨, 나한테 접근한 목적이 뭐든... 안에서는 조용히, 조심히 행동해요.” 남자주인공 친구 무리에는 멍청이가 없다. 백연의 뜨거운 숨결이 그의 볼을 스치며 입술이 거의 닿을 듯한 거리에서 말했다. “근데 왜 허락했어요?” 유준의 목젖이 스르르 움직이며 솔직하게 말했다. “예쁘니까요. 데리고 들어가면 내가 체면이 서잖아요.” 게다가 그는 궁금했다. 몰락한 백씨 가문의 금지옥엽이 무슨 이유로 이곳까지 기어온 건지 말이다. 유준을 따라 안으로 들어서자 여러 시선이 순간 백연에게 향했다. 백연의 등장에 모두가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과거 백씨 가문이 건재했을 때 그녀는 모두의 주목을 받던 재벌가 딸이었지만 배경이 사라진 순간 빛도 함께 사라졌고 결국 이 무리에서 완전히 멀어졌었다. “유준, 너 능력 좋다?” 누군가 장난스럽게 떠들었다. “이렇게 예쁜 사람을 꼭꼭 숨겨놓고!” 유준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최도영을 향해 말했다. “생일 축하해.” 그가 준비한 선물은 글로벌 한정판 슈퍼카의 키였다. 도영은 키를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며 낮은 음성으로 말했다. “고마워.” 백연도 옆에 앉으며 최도영을 슬쩍 훑어보았다. 압도적인 얼굴이었다. 백진우의 피폐하고 섬세한 미모와는 또 달리 최도영은 선이 굵고 존재감이 강했다. 편하게 기대어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방 안의 모든 남자들을 누를 만큼의 기세였다. 하지만 그는 책 속에서는 여자주인공을 향한 깊은 짝사랑을 보여주는, 즉 서브 남자주인공 캐릭터였다. 최도영은 그녀의 시선을 느끼고 눈을 들어 그녀를 보았다. 그의 까만 눈동자에는 약한 비웃음이 스치고 곧 다시 시선을 돌렸다. 사람들이 하나둘 떠들기 시작하며 분위기는 더 뜨거워졌다. 백연은 조용했다. 이상하리만큼 지나치게 조용한 정도로 말이다... 오늘 그녀는 일부러 무릎까지 오는 흰 원피스를 선택했고 최대한 청순하게 메이크업을 했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여주 하지윤과 비슷할 정도로 청순했다. 잔을 들고 가만히 음료를 한 모금씩 마시는 그녀는 눈길을 끌지만 또 묘하게 튀지 않았다. 유준은 본래 여자에 흥미가 많은 타입이었으나 백연이 너무 조용하자 금세 흥미를 잃고 다른 여자들과 신나게 놀기 시작했다. 분위기가 한창 무르익을 무렵 문이 열렸다. “미안. 오는 길에 좀 막혔어.” 모두가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했고 오직 최도영만 편히 앉은 채 손만 가볍게 흔들었다. 백연은 고개를 기울이며 그를 보았다. 드디어 남자주인공, 주재현을 만나게 되었다. 남자주인공이라서 그런지 역시 기세가 달랐고 들어서는 순간 공기가 바뀌었다. 최도영이 먼저 말했다. “늦은 만큼 벌주 세 잔.” 다른 사람들도 장난스럽게 거들자 주재현은 그들의 장난을 받아들이며 셔츠 단추를 푼 후 가볍게 웃었다. “좋아. 마시면 되지.” 그가 앉으려는 순간 백연은 잔을 들고 다가갔다. “주재현 씨, 술 따라드렸어요.” 부드러운 목소리가 모두의 움직임을 멈추게 했다. 유준의 얼굴이 굳었고 그제야 백연의 목표가 주재현임을 알게 되었다. 주재현은 그녀를 대충 훑어보기만 할 뿐 잔을 받지 않았다. 그저 최도영이 직접 따라준 잔만 받아 들었다. 백연은 주재현에게 완전히 무시당한 것이다. 그러자 누군가 비웃음을 터뜨렸고 그녀를 무시하는 기류는 순식간에 번졌다. “유준, 네가 데려온 여자, 뭐냐? 너무 설치는데?” 조롱이 이어졌고 백연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웃었다. 이제 사람들은 대놓고 그녀를 무시했다. 주재현은 잠시 앉아 있다가 바로 일어났다. 바쁜 사람이니 오래 있을 틈이 없었으니까. 그가 나가자 백연도 바로 뒤따라 일어났다. “저도 같이 나가도 될까요?” 주재현은 대답조차 하지 않았다. 냉담한 기류였지만 백연은 더 뻔뻔하게 뒤를 이어 걸어 나갔다. 밖으로 나오자 공기가 훨씬 시원했다. 그녀가 나가자 방 안은 즉시 비웃음으로 가득 차올랐다. “유준, 네가 여자한테 버림받는 꼴을 다 보네?” “눈치도 없네, 그 여자. 재현 형이 노골적으로 싫어하는데 계속 들러붙고.” “백씨 가문 재산 다 말아먹고 돈 많은 남자나 잡으러 다니나 보지.” “예쁘긴 하지. 나한테 오면 용돈은 줄 의향 있음.” 사람이 없으니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더 독해졌다. 최도영은 생각을 읽을 수 없는 얼굴로 잔을 만지작거리며 홀짝였다. 그러더니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난 누굴 좀 배웅하고 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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