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8화

하지만 김하정은 임지효의 기묘한 기색은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 손을 붙들고 쉴 새 없이 물어댔다. “어떻게 됐어? 어떻게 됐냐고... 어젯밤 집에 안 들어온 거 보니 은호 도련님이랑 잘 돼 가는 모양이구나? 이제 너희 둘 사이가 어디까지 진전됐는지 말 좀 해봐. 언제쯤이면 네가 주씨 가문에 시집가서 우리 임씨 가문을 빛내줄 수 있겠니?” 임지효는 지친 얼굴로 눈살을 잔뜩 찌푸리며 대꾸했다. “엄마, 지금 이런 얘기하기 싫어요. 너무 피곤해서 쉬고 싶어요.” “뭘 그렇게 급하니? 나랑 얘기만 끝내면 그때 가서 실컷 쉬면 되잖아!” 김하정의 머릿속엔 오직 임씨 집안과 주씨 집안의 혼사가 성사되는 일뿐이었다. “엄마...” 임지효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김하정을 바라봤다. ‘어찌 됐든 난 엄마의 친딸인데 어떻게 이토록 무심할 수 있을까.’ “엄마는 무슨 엄마야. 분명히 말하지만 이번에도 주씨 가문과의 혼사가 틀어지면 너는 다시는 집에 발 들이지 마.” 그 말은 임지효에게 벼락처럼 꽂혔다. 딸을 걱정하는 엄마의 따스한 정은 어디에도 없었고 그저 주씨 가문에 붙잡아둘 이익을 위한 도구로 취급할 뿐이었다. 가치가 사라진 도구는 버려질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는 걸 뼈저리게 깨달았다. 임지효는 차갑게 웃으며 입술을 달싹였다. “알았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이미 제 계획 안에 있어요. 오래 걸리지 않아 곧 좋은 소식 들려드릴 테니까요. 이제 가서 좀 쉬어도 돼요?” “그럼. 당연하지! 우리 착한 딸, 얼른 들어가. 뭐가 필요하면 엄마한테 말하고.” 김하정의 얼굴은 한껏 흐뭇해 보였지만 임지효는 속이 뒤집힐 듯 역겨웠다. 방으로 들어간 임지효는 이를 악물고 다짐했다. ‘나를 짓밟은 사람들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반드시 뼈저리게 후회하게 할 거야. 박아윤은 물론이고 임씨 가문 사람들조차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야.’ 그 무렵, 회사에 도착한 박아윤은 갑자기 크게 재채기했다. “날씨가 추운 것도 아닌데...” 박아윤은 코를 긁적이며 혼잣말했다. “누가 날 욕하는 건가? 근데 요즘 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