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1화
샤워하면서야 비로소 지금의 내 모습을 제대로 확인할 수 있었다.
예전의 모습과 조금 비슷하긴 했지만 완전히 똑같지는 않았다. 볼살은 더 빠져서 눈이 퀭해 보였고 온몸에서 병약한 기운이 풍겼다. 눈 밑에는 짙은 다크서클이 드리워져 있었다.
몸 여기저기에는 새것과 옛것이 뒤섞인 상처 자국들이 남아 있었다. 자주 맞아온 흔적이 분명했다. 그중에서도 손목의 자국이 가장 두드러졌다. 심하게 멍들어 보랏빛이 짙었고 몇몇 곳은 속살이 드러날 정도였다.
머릿속에는 어렴풋이 몇몇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좁고 어두운 방 안, 덩치 큰 두 사람이 내 앞에 서 있었고 나는 벽 모서리에 웅크린 채 뒤로 손이 묶여 있었다. 그들은 성난 얼굴로 내려다보며 무언가를 말했지만 내 귀에는 윙윙거리는 소리만 들렸다. 그런데도 나는 기묘하게도 그들의 의도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들은 나를 묶어 팔아넘기려 했고 지금은 나를 혼내는 중이었다.
이윽고 그들은 방문을 걸어 잠그고 떠났다. 나는 구석에 숨겨둔 작은 칼로 줄을 갈라냈지만 문은 밖에서 잠겨 있었다. 우리 집은 20층이 넘는 고층 아파트였다. 나는 창틀에 올라섰다가 다시 내려왔다. 그리고 결국 집에 있는 가스 밸브를 열어 두었다.
나는 고요히 죽음을 기다렸다. 그때의 짙고 무거운 절망감이 내 안에 그대로 남아 있는 듯했다. 마치 지금도 내 마음속 어딘가에 또 다른 내가 살고 있으며 소리 없는 울음을 터뜨리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거울 앞에 서서 무의식적으로 가슴을 움켜쥐었다.
“네가 너를 위해서 울고 있는 거야?”
나지막하게 중얼거렸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걱정하지 마, 우리 이제 도망쳐 나왔으니까.”
샤워를 마친 뒤, 유은수가 챙겨둔 옷으로 갈아입고 거실로 나갔다. 유은수는 이미 약상자를 준비해 두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나를 보자마자 다급하게 다가와 소파에 앉히고는 조심스레 상처를 치료해 주었다.
“아가씨는 이름이 뭐예요?”
나는 지금의 내 이름을 떠올렸다.
“강연아예요.”
“참 예쁜 이름이네요. 그런데 이 손목 상처는 분명

링크를 복사하려면 클릭하세요
더 많은 재미있는 컨텐츠를 보려면 웹픽을 다운받으세요.
카메라로 스캔하거나 링크를 복사하여 모바일 브라우저에서 여세요.
카메라로 스캔하거나 링크를 복사하여 모바일 브라우저에서 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