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화
박진섭은 거의 몸을 가누지 못했다.
한참 동안 침묵한 후, 그는 법의관에게 물었다.
“모발로 감정을 할 수 있습니까?”
“가능합니다. 하지만 모낭이 있어야 합니다.”
“좋습니다. 그건 제가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
박진섭은 목이 멘 듯한 목소리로 대답하고 몸을 돌려 밖으로 향했다. 나는 그의 꼿꼿했던 어깨가 힘없이 축 처지는 것을 똑똑히 목격했다. 마치 그를 지탱해주던 마지막 기운마저 빠져나간 듯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그의 곁을 지키며 차에 올랐고 무표정한 얼굴로 운전대를 잡은 그의 핏발 선 손을 보았다.
나는 줄곧 박진섭을 따라 강 씨 저택에 도착했다. 그가 이곳에 올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지만 병원에서 박진섭이 법의관과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리자 그의 속셈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현재 내게는 그 어떤 증거도 남아 있지 않으므로, 내 신분을 증명할 유일한 방법은 내가 부모님과 친자 관계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과연 응해줄까?
박진섭이 차에서 내리자 나는 그를 뒤따라 내렸다. 강 씨 집안의 가정부가 우리를 맞이했고 눈앞에 가까워진 대문을 보자 갑작스러운 불안감이 몰려왔다. 그러면서도 은밀하게 설레는 마음이 꿈틀거렸다.
나는 부모님이 나의 죽음을 알아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하지만 그 사실을 마주하는 것은 두려움 그 자체였다.
나는 그들이 내 죽음을 알고 가슴 아파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내가 그토록 그리워했던 부모님, 그들이 나를 위해 눈물 한 방울이라도 흘려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나는 두려웠다. 혹여 그들이 내 죽음을 그저 무덤덤하게 받아들일까 봐, 내가 살아있을 때도 죽었을 때도 아무렇지 않아 할까 봐 두려웠다.
나는 피할 틈도 없이 박진섭을 따라 거실로 들어갔다. 가정부는 정중하게 따뜻한 차를 내오며 말했다.
“박 대표님, 잠시만 기다리세요. 지금 강 대표님은 집에 안 계시고 사모님은 낮잠을 주무시고 계세요. 제가 지금 깨워드리겠습니다.”
박진섭은 찻잔을 건네받지 않고 주변을 둘러보더니 갑자기 물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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