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2화
임준호는 얼굴에 짙은 주름을 새기며 저도 모르게 거실 쪽을 돌아보았다. 나도 함께 고개를 돌려 보았으나 박진섭은 정말 깊이 잠든 듯 아무런 인기척도 들리지 않았다.
잠시 정적이 흐른 뒤, 임준호는 다시 몸을 돌려 김경애의 말을 들었고 김경애는 담담히 말을 이어갔다.
“지연이는 예전부터 시후를 좋아했어. 하지만 한 번도 적극적으로 다가선 적이 없지. 그러다 어느 날 두 사람 사이에 그 일이 생겼고 강씨 가문에서는 원래 시후의 혼약자가 강씨 가문의 친딸이라고 주장했어. 그러니 결국 지연이와 시후가 맺어지는 게 맞다며 밀어붙였지. 이미 일이 벌어진 이상 물릴 수 없었고 나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어. 그런데 혼약이 막 정해졌을 때 내가 알아본 바로는 그 모든 게 강유나의 손에서 비롯된 일이었어. 나는 이 사실을 시후에게도 귀띔했지만 시후는 전혀 믿지 않았어. 잠시 마음이 흔들린 듯 보였지만 시후가 어딜 다녀온 뒤부터는 태도가 돌처럼 굳어버렸지. 그 순간 나는 눈치챘어. 분명 강유나가 무슨 말을 한 거야. 그 뒤로는 아무리 말해도 전혀 통하지 않았어.”
임준호는 잠시 생각하다가 물었다.
“그런데 이해되지 않습니다. 제가 알기로 강유나 씨는 집안에서 귀하게 자랐습니다. 강지연 씨와 비교하면 하늘과 땅 차이 나요. 그런 사람이 나중에는 송시후 씨와도 얽히게 되었는데 그렇다면 시후 씨에게 마음이 있었다는 뜻일 겁니다. 부모님의 전폭적인 지지도 있었을 테니 말이죠. 그런 상황에서 굳이 그런 일을 꾸밀 이유가 있었을까요?”
“나도 그게 지금까지 이해되지 않아. 아마 시후 역시 그 사실이 이해되지 않을 거야. 그러니 내가 알아낸 결과를 믿기보다 강유나의 말에 귀를 기울인 것이겠지.”
임준호는 더 묻지 않고 말을 바꾸었다.
“그러니까 어르신께서는 그 일을 근거로 이번 사건 또한 강유나가 개입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의심하시는 말씀입니까?”
“그래. 강유나는 겉으로는 해맑고 무해한 척하지만 속은 그렇지 않아. 음험하고 독한 수를 쓸 줄 아는 여자야.”
그러자 임준호도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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