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4화

나는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직 상황을 다 파악하기도 전에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말소리가 들려왔다. “다 저 빌어먹을 년 탓이야. 이렇게 중요한 때에 무슨 자살극이람. 우리가 집에 일찍 돌아오지 않았으면 집에서 그냥 죽어버렸을 거 아냐. 재수 없는 년!” 날카롭고 신경질적인 여자 목소리였다. ‘저 여자가 말한 재수 없는 년이... 나란 말이야?’ 나는 본능적으로 눈을 감았다. 곧 발걸음 소리가 가까워졌고 누군가 내 곁으로 다가와 몸을 굽혀 살피는 기척이 느껴졌다. 그림자가 드리워졌고 침대 옆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울렸다. “이럴 때 그런 소리 하지 마. 이제는 제대로 사람을 붙잡아둬야 해. 다행히 얼굴은 좀 창백해도 망가진 데는 없어. 얼굴이라도 망가지면 값어치가 떨어지잖아. 방금 의사가 위험은 넘겼다고 했으니 곧 깨어날 거라더군. 그러니 네가 잘 말해 보라고. 우리가 설마 진짜로 해치기라도 하겠어?” “쳇, 그럼 설득은 내가 다 하라는 거야? 돈 받을 때는 나를 안 내세우더니... 게다가 저년은 원래부터 고집이 얼마나 센데. 지난번에도 몇 마디 했다고 바로 자살을 시도했잖아. 또다시 지랄하다가 이번에는 집까지 날려 먹는 거 아니야?” 그러자 남자가 귀찮다는 듯이 대꾸했다. “그럼 어쩌란 말이야?” 여자의 목소리가 잠시 멎더니 낮게 속삭였다. “내 생각엔 말이지 지금 바로 사람을 불러서 이 계집애를 호텔로 보내자고. 기정사실이 되면 그땐 울며 겨자 먹기로라도 따를 수밖에 없을 테니까.” 순간, 나는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인신매매꾼이다!’ “그럼 내가 당장 전화할 테니 넌 퇴원 절차나 밟아.” “좋아!” 그들의 발소리가 멀어지며 문이 닫혔다. 나는 눈을 번쩍 뜨고는 깊이 생각할 틈도 없이 이불을 걷어차고 일어나 문을 열고 뛰쳐나갔다. 복도에는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지만 내 시야는 흐려져 그들의 모습이 아득하게 흔들렸다. 나는 비틀거리며 앞으로 달려가다 어떤 사람과 부딪혔고 힘없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나를 부축해 일으킨 건 흰 가운을 입은 한 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