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이 말을 듣자 송연준은 그제야 고개를 돌려 약간 긴장한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뭘 그렇게 스스로 저주해? 난 항상 널 친동생처럼 여겨왔어. 네게 무슨 일 생기는 건 상상도 해본 적 없다고.”
임은우도 어깨가 움찔거려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돌리고 정색하며 말했다.
“서아야, 아무리 화가 나더라도 그렇게 사람 놀라게 하는 건 아니야. 이미 결혼 준비 중인데 너한테 무슨 일 생기면 난 어쩌라고?”
이제 정말 수도 없이 들어온 말들이다.
다들 그녀를 아끼고 그녀 없인 살 수 없다고 한다. 친동생으로, 애틋한 연인으로 여긴다고 하는데 왜 정작 이토록 잔인하게 상처만 주는 걸까?
어떻게 이런 오빠와 남자친구가 있을 수 있을까?
그녀는 눈물을 글썽이며 웃다가 몸을 돌려 방으로 돌아갔다.
핏방울이 바닥에 떨어지며 긴 핏자국을 남겼다.
조용한 방 안에서 송서아는 족집게를 들고 떨리는 손으로 살에 박힌 도자기 조각들을 집어냈다.
이마에서 흘러내린 식은땀이 상처에 떨어져 또다시 찌릿한 통증을 일으켰다.
이때 문밖에서 임은우와 송연준의 다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나야, 아직도 아파? 오빠가 호 불어줄까?”
“손도 멍들었네. 의사 불러야겠다. 흉터 남으면 안 되잖아.”
묵묵히 듣고 있던 송서아는 눈을 질끈 감았다. 눈가에 번지는 감정을 가려야 하니까.
겨우 처치하고 휴대폰을 들어 보니 송이나가 보낸 도발적인 메시지가 눈에 띄었다.
[오빠랑 은우 씨가 너 떠나지 말라고 했다고 설마 널 엄청 신경 쓴다고 착각하는 건 아니지? 단지 익숙해져서 그런 것뿐이야. 두 사람 이제 곧 나한테 마음이 돌아설 거야.]
[네가 내 신분을 뺏어서 몇 년 동안이나 떵떵거리고 살았으니 오빠랑 은우 씨는 있는 힘껏 나를 보상해 줄 거야. 이번 생은 나를 이길 생각은 꿈도 꾸지 마! 네가 가진 모든 걸 빼앗고 말겠어! 두고 봐!]
송이나가 하는 말은 전부 사실이다.
송서아는 양녀일 뿐이니 송씨 일가의 친딸을 이길 수가 없다.
그래서 이제 영원히 임은우와 송연준의 세계에서 물러나기로 결심했다.
그녀가 완전히 사라지고 나면 송이나 또한 이길 수가 없다.
산 사람은 죽은 사람을 이길 수 없으니까.
송서아는 쇼핑 앱을 켜서 모조 시체를 주문했다.
이민 신청 서류가 발급되는 날, 그녀는 가짜로 죽음을 꾸며 떠날 것이다.
그 후, 본래 이름으로 돌아가 새로운 삶을 시작할 것이다.
송서아는 집에 오는 길에 사 온 초소형 카메라를 늘 몸에 지니고 다니는 목걸이에 장착했다.
이제부터 송이나의 만행은 모조리 흔적을 남기게 될 것이다.
다음 날 아침 해가 뜨자마자 가정부가 송서아를 깨웠다.
일어나 보니 임은우와 송연준이 와 있었는데 두 사람은 카메라를 들고 침울한 시선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서아야, 이나 작품 표절 사건이 터져서 사태가 엄청 커졌어. 네가 질투심 때문에 이나 작품을 표절했다고 인정하는 영상을 지금 당장 찍자.”
그들이 휴대폰을 내밀자 송서아는 실검 1위를 달리는 타이틀 몇 개를 바로 확인했다.
[골든디스크 신인상 수상자 작품 표절 의혹]
[송이나 표절 혐의]
송서아는 그제야 일의 전말을 이해했다.
실은 송이나가 그녀가 감옥에 간 틈을 타 전에 그녀가 창작한 작품들을 가지고 대회에 참가했지만 일부 작품은 이미 그녀가 부계정에 올려놓았다는 사실을 간과했던 것이다. 이제 송이나의 명성이 높아지자 누군가 주시하고 있었고 마침내 표절 사실이 폭로되어 온 세상이 표절을 비난했다.
송서아는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거절했다.
“애초에 이나가 내 작품 표절한 거잖아. 베클리 음대도 나를 사칭해서 간 거 아니야? 네티즌들이 표절을 비난하는 게 무슨 문제 돼?”
이에 임은우가 버럭 화를 내며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서아야, 사실이 그렇긴 하지만 이나가 쏟아지는 악플 때문에 자살 충동까지 느끼고 있어. 네가 조금만 도와주면 안 될까?”
송연준도 그녀의 앞을 막아서며 갖은 이유를 둘러댔다.
“이나 지금 한창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데 표절 시비가 터지면 인생 망쳐! 네가 대신 뒤집어쓸 수는 없는 거야?”
그들이 아무리 설득해도 송서아는 동의하지 않았고 그저 이 상황이 어이가 없을 따름이었다.
잘못은 송이나가 저질렀는데 왜 그녀가 짊어져야 한단 말인가?
고작 감옥에 갔다 온 전과자라서? 명성이 다 무너져도 괜찮을 거라고?
오전 내내 세 사람은 거실에서 팽팽하게 맞섰다.
이때 송이나가 내려와 퉁퉁 부은 눈으로 송서아에게 말했다.
“언니, 예전에 있었던 일은 다 내 잘못이야. 언니랑 단둘이 얘기 나누고 싶어.”
송서아는 전혀 그러고 싶지 않았지만 임은우와 송연준이 그녀를 방으로 밀어 넣었다.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송이나가 하는 속 보이는 말들을 참고 들어야 했다.
“5년 전에 내가 언니를 계단에서 밀어뜨려서 다치게 해놓고 언니한테 누명을 씌웠어. 그때 물에 빠진 것도 다 내가 꾸민 일인데 언니 탓으로 돌렸지... 알아, 내가 얼마나 밉겠어? 하지만 난 단지 언니가 내 자리를 빼앗은 것만 생각하면 증오가 차올라서 그랬을 뿐이야. 내 마음 충분히 이해할 수 있잖아? 이번에도 언니 작품을 써서 표절 시비가 터졌는데 나 한 번만 도와주면 안 될까?”
송서아는 더 이상 들어줄 수가 없어 자리를 박차고 나가려 했다.
하지만 이제 막 문을 열려던 순간, 뒤에서 비명이 들려왔다.
곧이어 문이 거세게 걷어차였다.
송이나의 손목에 깊게 팬 상처와 송서아 발치에 떨어진 과도를 보자 송연준과 임은우는 분노를 억누르지 못했다.
그들은 더 이상 송서아를 봐줄 수가 없어서 곧장 경호원을 불러와 그녀를 방에 가두었다.
이후 사람을 시켜 그녀의 AI 사과 영상을 제작하여 SNS에 게시했고 많은 유명 인사들에게 공유하도록 했다.
곧 네티즌들은 송서아의 계정으로 몰려와 맹비난을 퍼붓기 시작했다.
[그럼 그렇지. 송이나가 표절할 리 없잖아. 그 집 양녀가 몰래 작품을 훔쳐서 미리 공개했던 거였어.]
[어디서 굴러온 걸레 년인지 감히 이나님 노래를 표절해? 뻔뻔하기 짝이 없네!]
[창작곡 못 쓰면 그냥 죽어. 표절하는 놈은 온 가족이 죽어버려야 한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