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화 이 사람만은 놔줘!
박민재가 나를 찾아오는 데 걸린 시간은 단 사흘이었다.
그날, 검은 정장을 입은 경호원 몇 명이 병실로 들이닥쳐 한진우를 바닥에 거칠게 눌러 제압했다. 이어 군화가 바닥을 두드리는 소리가 울렸다.
또각, 또각, 또각...
한 걸음 한 걸음이 내 심장을 짓밟는 것만 같았다.
박민재가 들어왔다.
TV에서 보던 모습보다 조금 더 야위어 있었고 눈빛은 한층 더 차가워져 있었다. 그는 바닥에 쓰러진 한진우는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곧장 내 병상 앞으로 다가와 나를 내려다봤다.
“다은아, 이제 놀 만큼 놀았지?”
그의 목소리는 낮게 가라앉아 있으면서도 묘한 흡인력이 있었다. 하지만 그 안에는 살을 에는 듯한 냉기가 서려 있었다.
온몸이 떨려 오며 나는 본능적으로 바닥에 있는 한진우를 감싸려 했다.
“민재 씨, 그만둬! 이 사람은 아무 상관 없어! 이 모든 건 다 나 때문이라고!”
박민재가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더니 마치 자비를 베푸는 듯 한진우에게 시선을 던졌다.
“그래? 이게 그럼 내 대타라는 소리야?”
박민재는 피식 코웃음을 쳤다. 뼛속에서부터 전해오는 경멸이 느껴지는 웃음이었다.
“다은이 네 안목은 갈수록 형편없어지는구나?”
한진우는 건장한 남자 둘에게 눌린 채 얼굴을 차가운 바닥에 붙이고 있었고 안경은 한쪽으로 비뚤어져 있었다.
그러나 그는 저항하지 않으며 다만 힘겹게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다은아... 무서워하지 마...”
“입 닥쳐.”
박민재가 한진우의 손 위에 발을 올리고는 힘껏 짓눌렀다.
“윽...”
한진우가 낮게 신음소리를 냈고 이내 식은땀이 쏟아졌다.
“민재 씨! 그만해! 제발 멈춰 줘!”
내가 울부짖으며 침대에서 내려오려 하자 경호원들이 가로막았다.
박민재는 몸을 낮춰 쪼그려 앉더니 한진우의 뺨을 툭툭 두드렸다.
“다은이를 구해줬다면서? 그건 고맙게 생각할게. 여기 2억이야. 이 돈 들고 제국에서 꺼져. 평생 내 눈앞에 다시 나타나지 말라고.”
그는 품에서 수표 한 장을 꺼내더니 쓰레기를 던지듯 한진우의 얼굴 위로 뿌렸다.
하지만 한진우는 그 수표를 보지 않았고 박민재의 발아래에서 힘겹게 손을 빼내더니 떨리는 손으로 비뚤어진 안경을 고쳐 썼다.
그리고 나와 박민재 모두 예상하지 못한 말을 꺼냈다.
“저기... 사령관님. 다은이는 제 아내입니다. 저희 법적으로 혼인한 사이에요. 그러니... 존중해 주십시오.”
병실 안이 쥐 죽은 듯 고요해졌다.
박민재는 마치 세상에서 가장 우스운 이야기를 들은 것처럼 크게 웃어댔다.
“존중? 네가 나한테 존중을 논해?”
그러더니 한진우의 멱살을 움켜쥐고 그대로 들어 올렸다.
“야, 너 내가 누군지는 알아? 너 같은 놈 하나 죽이는 건 개미 하나 밟는 것보다도 쉬워.”
한진우는 숨이 막혀 얼굴이 시뻘게졌지만 끝내 물러서지 않았다.
평소에는 흐릿하던 그의 눈동자에 그 순간만큼은 미약하지만 분명한 빛이 깃들어 있었다.
“알고 있습니다... 최고사령관이라는 것도요. 하지만... 다은이는 제 아내입니다. 본인이 스스로 원하지 않는 한... 그 누구도 데려갈 수 없어요.”
“죽고 싶어서 환장했네.”
완전히 분노가 폭발한 박민재는 주먹을 휘둘러 한진우의 복부를 사정없이 내리쳤다.
퍽!
몸이 샌드백처럼 날아가 벽에 세게 부딪힌 한진우는 이내 입에서 선혈을 토해냈다.
“진우 씨!”
나는 비명을 지르며 어디서 그런 힘이 나왔는지 경호원들을 밀치고 한진우에게 달려갔다.
“그만해! 민재 씨, 내가 갈게! 민재 씨랑 간다고! 그러니까 이 사람만은 놔줘!”
피투성이가 된 한진우를 끌어안은 채 나는 거의 정신을 잃을 만큼 울었다.
박민재는 서늘한 눈빛으로 그 광경을 내려다봤다.
“좋아, 아주 좋다 이거야. 이런 폐급 인간 때문에 나한테 애원까지 하다니...”
곧 그가 손을 한 번 휘둘렀다.
“데려가.”
나는 내 손톱이 그의 살을 파고들 만큼, 한진우의 손을 힘껏 붙잡았다.
“진우 씨, 미안해... 그냥 나를 잊어. 이 돈으로... 잘 살아...”
한진우는 바닥에 누운 채 피거품을 흘리고 있었다.
그의 손은 끝까지 내 손을 움켜쥐고 있었지만 결국 경호원들에 의해 억지로 떼어내 졌다.
문이 닫히는 순간, 나는 한진우를 보았다.
그는 바닥에서 몸을 일으키려 애쓰고 있었다. 한 번 또 한 번 쓰러지고 다시 일어나기를 반복하면서, 마치 척추가 부러진 개가 그래도 주인을 따라가려는 것처럼 말이다.
그 순간, 내 마음은 산산이 부서져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