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내 몸에 손대지 마
강인호는 신지은의 손목을 덥석 잡은 후 그녀의 당황한 눈동자를 빤히 바라보며 점점 더 분노했다.
만약 그가 마침 이 방으로 오지 않았다면 한마디 말도 없이 그 빌어먹을 놈을 따라갈 생각이었을 게 분명했다.
“어디 가게?”
강인호가 물었다.
신지은은 손목으로부터 전해져 오는 강한 통증에 미간을 찌푸리며 어떻게든 빠져나오려고 했다.
“일단 이 손 좀 놔! 나 아파!”
‘놓으라고? 내가 놓아줄 것 같아?!’
강인호는 신지은의 손목을 세게 잡아당긴 후 고개를 숙여 그녀의 입술을 거칠게 탐했다. 분노로 이성이 완전히 마비되어 버려 신지은에게 숨 쉴 틈조차 주지 않았다.
“인호 읍...!”
신지은은 질식할 것 같은 느낌에 그의 가슴팍을 퍽퍽 두드리며 반항했다.
하지만 그녀의 반항과 발버둥은 강인호의 정복욕만 더 불러일으킬 뿐이었고, 이윽고 신지은은 침대에 완전히 눕혀져 버리게 되었다.
“그러게 왜 나를 돌게 만들어! 허락한다고 했잖아. 그런데 왜 그 새끼와 도망가려고 해!”
‘왜 나한테 거짓말까지 해!’
강인호의 눈은 어느새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는 본능만 남은 짐승처럼 신지은의 연약한 피부를 아프게 물고 빨며 억지로 자신의 흔적을 새겨넣었다.
신지은은 반쯤 미친 듯한 강인호의 행동에 순간 외딴섬에 버려진 후 거의 매일 남자들에게 억지로 안겼던 악몽이 떠올랐다.
그 기억은 순식간에 그녀의 온몸을 지배했고 신지은은 몸을 덜덜 떨며 있는 힘껏 외쳤다.
“하지 마! 내 몸에 손대지 마! 부탁이니까 제발... 제발 나 좀 놓아줘...!”
강인호는 신지은의 절규에 그제야 이성을 되찾고 움직임을 멈췄다. 몸을 일으켜보니 눈물범벅이 된 채 두려움에 떨고 있는 그녀가 보였다.
‘미친 새끼... 너 지금 지은이를 억지로 안으려 했던 거야?’
사과의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어째서인지 좀처럼 뱉어지지 않았다.
신지은은 누르는 힘이 사라지자마자 강인호를 밀어내며 고개를 푹 숙인 채 헛구역질을 해댔다.
강인호는 싸늘하게 식은 눈빛으로 그녀의 행동을 바라보며 이를 꽉 깨물었다.
‘헛구역질할 정도로 내가 싫은 거야?’
그는 주먹을 말아쥔 채 자조하듯 웃더니 이내 아무 말 없이 침실을 나갔다.
쾅 닫힌 문소리에 신지은은 심장이 철렁하는 것을 느끼며 몸을 움찔 떨었다.
잠시 후, 가까스로 마음을 진정시킨 그녀는 곧장 강인호의 방 앞으로 걸어갔다. 들어갈까 말까 잠깐 망설였지만 결국에는 천천히 문을 열었다.
어두컴컴한 방 안에서 보이는 거라고는 침대 위에 있는 희미한 인영뿐이었다.
“오빠...”
신지은이 작은 목소리로 불렀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이에 그녀는 한 걸음 한 걸음 침대 쪽으로 다가간 후 아무 말 없이 강인호의 옆에 누워버렸다.
강인호의 몸이 움찔했다.
‘또 무슨 속셈으로...’
신지은은 강인호의 생각을 멈춰버리듯 팔을 뻗어 그의 몸 위에 살포시 둘렀다.
특유의 포근한 냄새와 말랑한 몸에 강인호의 몸은 완전히 굳어버렸고 이제는 숨소리마저 거칠어졌다.
“강인호... 인호 오빠...”
신지은은 강인호의 허리에 두른 손에 힘을 가하며 천천히 말을 내뱉었다.
“나 도망 안 가. 진심이야. 오빠 곁에만 있을 거야. 앞으로도 평생.”
아무런 답변도 돌아오지 않았지만 신지은은 알고 있었다. 강인호가 자신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다는 것을.
‘갑자기 변한 내 태도에 혼란스러워하고 있는 거겠지... 하지만 괜찮아. 기다릴 수 있어. 오빠가 내 진심을 알아주는 그날까지 나는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어.’
잠자리가 편했던 건지, 신지은은 금방 잠들었다.
강인호는 천천히 눈을 뜬 후 복잡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의도가 있는 행동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그는 허리를 감싸고 있는 이 작은 손을 뿌리칠 수 없었다.
다음 날 아침.
잠에서 깬 신지은은 가장 먼저 손을 뻗어 옆자리를 만지작거렸다. 하지만 그곳에는 아무런 온기도 남아 있지 않았다.
“갔구나...”
신지은은 조금 낙담한 채 느릿느릿 침대에서 일어나 다시 자기 방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휴대폰이 울려댔다.
손아영으로부터 걸려 온 전화였다. 받고 싶지 않았지만 좀처럼 끊어지지 않는 벨 소리에 신지은은 결국 전화를 받았다.
“왜?”
짜증이 가득 어린 목소리였다.
손아영은 그녀의 기분을 빠르게 눈치채고는 위로하며 말했다.
“강인호 그 인간이 또 너한테 뭐라고 한 거지? 지은아, 차라리 그냥 그 집에서 나와. 네가 돈이 없어, 뭐가 없어? 아니다. 그냥 이번 기회에 아예 인연을 끊어버려!”
‘이때다 싶어 부추기기는.’
신지은이 차갑게 웃었다.
“참, 지은이 너 오늘 우리 집으로 안 올래? 친구들을 좀 불렀어. 유한이도 온다니까 둘이 얘기 한번 잘 나눠봐.”
“그래, 알았어.”
신지은은 알겠다고 한 후 금방 전화를 끊었다.
“우리 집? 하! 기가 막혀서. 내가 이걸 잊고 있었네. 손아영이 아직 내 집에 있다는 걸.”
신지은은 당시 지방 도시 출신인 손아영을 위해 부모님이 물려준 집을 선뜻 그녀에게 내어주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잠깐 빌려준 것뿐이지 집을 통째로 주겠다는 소리는 아니었다.
그런데 손아영은 마치 집주인이라도 된 것처럼 행동했고 언제부터인가 말할 때도 자연스럽게 ‘우리 집’이라고 표현했다.
“다시 살아 돌아온 내가 그때처럼 멍청하게 집을 빼앗길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