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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화

“진형문 씨, 아직 좋아하긴 일러요.” 성지원은 마치 모든 걸 걸고서라도 진형문을 끌어내리고 말겠다는 눈빛을 하고 있었다. “잘 들어요. 지은이한테 작은 상처 하나라도 생기는 순간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고 그쪽도 지은이와 함께 묻히게 될 거예요. 난 뱉은 말은 전부 지키니까 알아서 행동해요.” 말을 마친 후 성지원은 진씨 가문을 나서려 했다. 박철민은 당연히 그녀를 보낼 리가 없었다. 성지원의 앞으로 달려가 길을 막으며 말했다. “지원 씨...” 짝! 성지원은 망설임도 없이 손을 올려 박철민의 뺨을 때렸다. 그러고는 사뭇 싸늘해진 얼굴로 말했다. “누구 마음대로 내 이름을 부르는 거죠?” 박철민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순간 성지원의 기세에 억눌리고 만 것이다. 문밖에 대기하고 있던 경호원들은 소리를 듣고 바로 달려 들어왔다. 정신을 차린 박철민은 성지원에게 뺨을 맞았다는 사실에 잔뜩 화가 노려보았다. “하, 좋게 넘어가려고 했더니 선을 넘네요.” 여러 명의 건장한 남자들이 성지원을 노려보며 위협적으로 다가왔다. 그럼에도 성지원은 두려워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들보다 더 싸늘한 눈빛을 했다. “우리 아빠가 지금 혼수상태이긴 하지만 성씨 가문은 아직 망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잊었나 본데 지금 밖에 강은호가 있어요. 어디 한번 내 몸에 손끝이라도 대기만 해봐.” 성준혁이 혼수상태이긴 했지만 아직 성준혁의 힘은 사라지지 않았다. 성씨 가문은 인맥도 많고 해성에서 손꼽히는 가문이었던지라 지금 이 상황에서 성지원을 건드린다면 누구든 쉽게 다치는 거로 끝나지 않을 것이었다. 박철민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쉽게 다가가지 못하고 있었다. 두 사람이 대치하고 있던 와중에 진형문이 손을 저으며 끼어들었다. “그냥 보내.” 성지원은 그제야 표정을 풀며 성큼성큼 밖으로 나갔다. 그런 성지원의 모습을 보며 박철민이 물었다. “정말로 이대로 보내실 겁니까?” 진형문은 차갑게 픽 웃었다. “보내야지 어쩌겠어. 어차피 입만 살았을 뿐이야. 이틀도 지나지 않아서 다시 날 찾아오게 되어있어. 그땐 나한테 무릎 꿇고 빌게 될 거야.” 성씨 가문이 빠져나갈 수 있는 길은 이미 진형문이 다 막아놓은 상태였다. 해성의 인맥도 전부 자신의 인맥으로 돌려놓았으니 성지원이 설령 문정우를 찾아간다고 해도 소용이 없을 것이었다. ‘독 안의 든 쥐 처지인데 발버둥 쳐봤자 뭘 할 수 있겠어?' 돌아가는 길에서 누군가 강은호의 차 바퀴로 뾰족한 것을 던져버린 탓에 하마터면 다리 아래로 추락할 뻔했다. 성지원은 이 모든 것이 진형문의 짓임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강은호는 터져버린 바퀴를 보다가 짜증스럽게 담배를 꺼내 태우고는 성지원에게 말했다. “진형문의 수단이 참 비열하네. 아니면 내가 사람을 시켜서 그 인간한테...” 강은호는 목을 돌리며 몸을 풀자 성지원은 미간을 구겼다. “그러다가 남은 인생 감방에서 보내게 되면 어쩌려고?” 강은호는 침묵하고 말았다. 오늘따라 밤바람이 유난히도 서늘하게 불어왔다. 성지원은 하나둘 켜진 가로등을 보았다. 너무도 막막한 기분이 들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누가 좀 알려주면 안 되나?' 병원으로 돌아온 성지원은 오늘 일을 김희영에게 말해줄 수도 없었고 결국 잠을 이루지 못했다... 다음 날 오전, 아침을 먹고 난 성지원은 바로 강은호의 여동생인 강아린에게 연락해 하씨 가문의 초대장을 받았냐고 물었다. 역시나 성지원의 예상대로 강아린에게도 초대장이 있었다. 성지원은 강아린에게 생일 선물로 무엇을 준비해갈 것이냐고 물었지만 강아린은 그저 자신이 태어난 날을 적어 가겠다고 답했다. 곧이어 무언가 떠오른 강아린이 성지원에게 물었다. “지원이 너도 이 생일 파티로 위장한 맞선 파티에 가려고?” 성지원의 눈빛이 어두워지며 강아린에게 부탁했다. “응. 다른 사람한테는 말하지 말아줘.” 이건 성지원이 밤새 고민해 내린 결론이었다. 홍유빈이 알려준 방법을 제외하고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성씨 가문의 우환을 해결하려면 반드시 그 늙은이들보다 권력이 강한 사람을 찾아가 부탁해야 했다. 그렇게 생각해보고 나니 하도하보다 대단한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어젯밤 하도하를 직접 보았던 성지원은 하도하가 자신에게 관심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녀에게 반감을 느끼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다행히도 그녀에게만 차갑게 구는 것은 아니었다. 하도하는 여자에게 대부분 쌀쌀맞게 굴었던지라 한때 동성애자가 아닌가 하는 소문도 돌았었다. 하지만 이 소문보다 집안일을 해결하는 것이 우선이었던 성지원은 망설일 시간도 없었다. 회사의 주주들은 또 김희영에게 연락해 압박하고 있었고 김희영은 더는 버틸 수 없는 상태였다. 성지원은 그런 김희영에게 하루만 더 버텨달라고 했다. 자신이 어떻게든 이 일을 해결하겠다면서 말이다. 이날 오후, 성지원은 백화점에 가서 아이가 좋아할 만한 선물을 고른 후 본가로 돌아갔다. 성준혁이 교통사고를 당한 뒤로 성지원은 본가로 돌아온 적이 없었다. 성지원과 문정우의 결혼을 위해 꾸며두었던 저택은 도우미들이 전부 치워버려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성지원은 피곤한 몸을 이끌고 방으로 올라갔다. 방은 일주일 전 모습 그대로 남아 있었다. 다른 사람이 자신의 물건을 만지는 것을 싫어했던지라 그녀의 방은 항상 그녀가 청소했었다. 침대 맡과 서랍 위에도 문정우와 찍은 사진들로 가득했다. 눈앞에 있는 모든 것이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심장을 푹푹 찌르는 것 같아 성지원은 너무도 고통스러웠다. 결국 안색이 창백해진 채로 방으로 들어가 문정우를 연상시키게 하는 물건들을 전부 버렸다. 웨딩사진마저 성지원은 전부 쓰레기통 옆에 던져두었다. 사진 속 행복하게 웃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더니 이내 몸을 굽혀 그 얼굴을 만졌다. 시선이 점차 문정우에게로 향했다. 전에는 몰랐지만 지금 보니 문정우의 눈빛은 차갑기만 했다. 그러다가 문득 돌아오는 길에 강은호가 자신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지원아, 정우를 원망해?” 그때 성지원은 대답하지 않았지만 지금 다시 물어본다면 당연히 원망한다고 대답할 것이었다. 문정우는 그녀를 6년 동안 이용하고서는 처참하게 버렸는데 어떻게 원망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성지원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자신을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왜 자신과 결혼하려고 했는지. 결혼하기로 했으면서 왜 취소하겠다고 했는지 말이다. 이 모든 건 문정우 탓이라고 여겼다. 문정우가 그런 짓을 하지 않았더라면 성씨 가문은 절대 이렇게 되지 않았을 테니까. 현재 그녀는 어떻게든 하도하를 유혹해 하씨 가문에 시집을 가야 했다. 그것도 보는 사람마다 악마라며 두려워하는 낯선 사람과. 그러니 어떻게 미워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문정우를 미워하고 원망할 뿐만 아니라 성지원은 자신도 원망했다. 성씨 가문이 이렇게 된 것에는 성지원의 책임도 있었다. 성씨 가문의 딸로서 부모님이 주는 사랑과 재산을 누리기만 했을 뿐 효도를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만약 자신이 문정우에게 모든 기대를 걸지 않고 스스로 뭔가를 해냈더라면 성씨 가문이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았으리라 생각했다. 아버지는 아직도 혼수상태이고, 어머니는 막 출산을 하여 몸조리가 필요한 상태였다. 동생은 갓난아기라 성씨 가문의 장녀인 성지원은 반드시 이 일을 책임지고 해결해내야 했다. 한참 후 성지원은 몸을 일으키며 눈물을 닦았다. 이내 도우미를 불러 쓰레기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주머니, 저것들 전부 버려주세요. 집안에 문정우와 연관되는 게 있으면 그것들도 전부 다 치워주세요.” 도우미는 빠르게 물건들을 밖으로 옮겨갔다. 성지원은 어느새 텅 빈 방을 보았다. 방 안 곳곳에 더는 존재하지 않는 문정우의 흔적을 보니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다. 그동안 성지원은 오로지 문정우의 곁에만 맴돌았고 자신보다 문정우을 더 소중하게 대하면서 어떻게든 기쁘게 해주려고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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