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화
이 다섯 명의 남자들 중 최예성의 가문이 제일 대단했고 하도하의 가문은 가장 부유했다. 문정우는 그들 중에서 가장 어렸지만 세 사람에게는 문제점이 있었다.
최예성은 하도하처럼 냉철하고 잔인하기로 소문나 있었던지라 그나마 인기가 없었고 문정우는 다리 한쪽을 잃어 인기 순위가 맨 마지막이었다. 여한결과 강은호는 넉살 좋은 이미지라 인기가 제일 많았지만 강은호는 이미 결혼한 상태였고 문정우는 성지원과 약혼한 상태였기에 두 사람은 결혼하고 싶은 남자 순위에서 제외되었다.
성지원은 여한결을 본 적이 몇 번 있었지만 별다른 호감은 없었다. 이상하게도 여한결이 친절한 척 연기하고 있는 듯한 이질감이 들었다. 그녀가 제일 싫어하는 사람이 바로 겉과 속이 다른 가식적인 사람이었다. 다만 성지원의 절친인 하윤은 달랐다. 하윤은 여한결을 오랫동안 짝사랑하고 있었다.
최예성은 성지원이 어릴 때 자주 만나 놀던 사이였다. 그때도 최예성은 인성이 아주 좋았고 성지원과 고작 몇 살 차이였고 잘 챙겨주는 든든한 오빠였다. 하지만 입대를 한 후 연락이 끊기게 되었다. 거의 10년 동안 연락이 없었던지라 최예성의 얼굴을 잊은 지 오래였다. 그런데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최예성은 돌연 제대하고 경영 공부를 시작했다고 했다. 이 소식 또한 최근에 들은 것이다. 어차피 성지원은 하도하에게 목적이 있어 온 것이었지만 아무리 주위를 둘러보아도 하도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무대 위에서 이연자는 감사 인사를 한 후 하도하와 하우주의 이름을 불렀다. 사람들의 박수 소리가 이어지고 하도하는 하우주를 안은 채 등장했다. 하도하에게서는 여전히 범상치 않은 강자의 기운이 느껴져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무대 위에 올라왔을 때 여자들이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그러나 성지원은 달랐다. 하도하에 알고 있는 것이 별로 없었고 그가 줄곧 해외에서만 지내다가 2년 전에 귀국했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 귀국하자마자 할아버지를 회사에서 내쫓은 하도하는 유성 그룹의 대표 자리에 앉았다. 쫓겨난 하도하의 할아버지는 화병으로 쓰러지게 되었다. 심지어 다리에 문제가 생겨 평생 휠체어에 앉아 있어야 하는 처지가 되어버렸다. 게다가 회사 자금을 횡령한 죄로 큰아버지를 직접 경찰에 신고하며 감방에 보냈다고 했다. 그러면서 파산을 앞둔 유성 그룹을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고작 2년 만에 해성에서 엄청난 권력을 손에 넣게 되었다.
하도하의 수법은 냉정하고 무자비하며 철저히 계산적이었다. 그러나 그 무자비한 하도하는 귀국한 후 좀처럼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오늘 밤 파티에 모인 사람들도 대부분 재계에 발을 담그고 있는 사람들이었고 재벌 2세가 가득했다. 그들도 소문으로 듣기만 했을 뿐 하도하의 얼굴을 직접 본 적은 없었다.
오늘 생일 파티에 참석한 여자들은 애초에 하도하의 얼굴을 기대하고 온 건 아니었다. 하지만 하도하의 얼굴을 본 순간 마음이 바뀌어버렸다.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귀티가 흐르고 신이 조각한 것처럼 잘생긴 그의 얼굴을 보니 여자들의 시선이 뜨겁게 변했다. 해성의 염라대왕이라고 불리는 사람이 이렇듯 잘생긴 사람일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설령 해성 5대 미남 중 탑인 여한결이 하도하의 옆에 있어도 빛이 바랠 정도였다.
아마 해성시에서 하도하보다 더 빛나는 남자는 없을 것이다. 하도하의 품에 안긴 작은 아이는 조금 전만 해도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지만 이제는 완전히 관심 밖이 되었다.
하도하가 입을 열자 파티에 참석한 여자들은 더욱 술렁이기 시작했다. 하도하의 목소리는 다소 차갑기는 했지만 너무도 감미롭고 매혹적이어서 듣는 사람의 귀마저 녹여버릴 정도였다.
‘저 사람이 정말로 냉철하고 잔인한 사람이라고?'
남희수는 잔뜩 흥분한 얼굴로 사촌 언니인 조가현의 손을 잡았다.
“언니, 저 사람 목소리가 여한결보다 더 감미로운 것 같아. 하씨 가문 어르신도 분명 언니를 손주 며느릿감으로 택할 거야. 진짜로!”
조가현은 입꼬리를 올리며 도도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조심스레 속삭이듯 말했다.
“크게 말하지 마. 그러다가 누가 들으면 욕할지도 몰라.”
그러나 남희수는 더 당당하게 말했다.
“누가 욕한다고 그래? 이 자리에 있는 여자 중에 언니만큼 하씨 가문에 어울리는 사람은 없어. 언니 말고 누가 선택받는 다고 그래?”
조가현은 남희수의 말에 옅은 미소를 짓기만 할 뿐 더는 말을 하지 않았다. 뒤에 있던 진유미는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서 조용히 피식 비웃었다.
조가현과 진유미는 해성에서 손꼽히는 미녀였다. 만약 성지원이 없었더라면 분명 두 사람이 해성을 대표하는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다만 유감스럽게도 진유미의 가문은 그다지 좋지 못했고 늘 조가현에게 밀리고 있었다.
간단히 인사한 후 하도하는 하우주의 신분을 밝혔다.
사람들은 대부분 하도하가 반년 전에 레이국에서 혼외자를 데려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아이에게 심각한 자폐증을 앓고 있으며 네 살임에도 말을 할 줄 모른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성지원은 멀리서 하도하가 안고 있는 하우주를 보았다. 얼굴에 아무런 상처도 없어 마음이 놓였다. 팔과 다리는 하얗고 포동포동했던지라 보면 볼수록 너무도 귀여웠다. 아무래도 자신이 하도하를 오해한 것 같았다. 아이는 너무도 얌전해 전혀 학대당한 아이로 보이지 않았다.
백 집사는 커다란 케이크를 카드로 밀고 들어왔다. 무대 구석에 있는 고가의 피아노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발견한 성지원은 피아노 쪽으로 다가가 경쾌한 곡을 연주했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경쾌하고도 따스한 노랫소리가 화려한 저택 홀 안에 퍼져나갔다. 청아하고도 맑은 그녀의 목소리는 사람들의 귀를 사로잡았다. 하지만 사람들의 시선은 무대 위에 있는 하도하와 하우주에게 쏠려 있었다. 그랬기에 그들은 이 생일축하 노래가 그저 녹음된 배경 음악이라 생각하고 자연스럽게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홀 안의 사람 중 단 몇 명만 피아노 앞에 앉아 조용히 연주하고 있는 성지원의 존재를 눈치챘다. 그리고 그들 중에는 하우주도 있었다. 하우주 덕에 하도하도 그녀를 발견하게 되었다. 다만 그저 담담하게 흘끗 보기만 할 뿐 시선을 돌려버렸다. 아무리 노래를 부르는 성지원의 모습이 눈부시고 아름다워도 말이다.
성지원의 노랫소리를 들으며 하도하는 하우주의 손을 잡은 채 케이크를 자르기 시작했다. 이내 사람들의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하도하가 하우주를 안은 채 무대로 내려오자 본격적인 ‘맞선 파티'가 시작되었다. 하도하가 내려오자마자 기회를 엿보던 세 명의 여자가 얼른 달려가 인사를 했다. 그들 중 선두에 선 여자는 성지원에게도 익숙한 얼굴이었다. 바로 진형문의 딸 진유미였다.
진유미는 외모가 아름다웠고 커다란 백합꽃을 연상시키게 하는 청순함을 소유하고 있었다. 아마도 하도하의 ‘악명'을 잊은 것인지 두 명의 친구와 함께 다가갔지만 하도하의 근처로 가기도 전에 싸늘한 시선에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
하도하는 하우주를 안은 채 무표정한 얼굴로 진유미를 지나쳐갔다. 하도하의 압도적인 기운에 진유미는 억눌리고 말았다. 심지어 입을 열기도 전에 쌩 지나쳐버렸던지라 진유미는 너무도 창피했다. 그런 진유미의 모습을 지켜보던 다른 여자들은 진유미처럼 나서지 않아 다행이라 여기며 속으로 조용히 비웃었다.
남희수도 차갑게 코웃음을 치며 비웃었다.
“어머, 내가 봐도 창피하네. 그러게 주제를 알고 갔어야지. 거지 주제에 무슨 용기로 다가간 건지 몰라. 얼굴 좀 예쁘다고 다 되는 줄 아나 봐. 거봐, 결국 창피당하고 말았잖아.”
“희수야.”
조가현은 조용히 남희수의 이름을 부르며 입을 다물라는 표정을 지었다.
진유미는 기고만장한 남희수와 그저 가만히 서 있는 조가현을 보며 얼굴을 찡그렸다. 곧이어 코웃음을 치면서 자리를 옮겨버렸다.